[애착이론] 관계가 흔들리는 순간, 사람을 이해하는 4가지 프레임
사람을 오래 관찰하다 보면 흥미로운 장면을 만나게 된다.
평소에는 꽤 합리적이고 침착했던 사람이 관계가 흔들리는 순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는 상대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한다.
누군가는 갑자기 연락을 끊고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모순된 행동을 한다.
"나를 떠나지 마."
라고 하면서도,
막상 상대가 가까이 다가오면
"나에게 너무 가까이 오지 마."
라고 밀어낸다.
왜 사람들은 관계의 위기 앞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심리학에는 이 질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이론이 있다.
바로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이다.
애착이론의 출발점은
영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존 볼비(John Bowlby)의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볼비는 인간에게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고 보았다.
이후 성인의 연인관계와 대인관계로 연구가 확장되면서,
심리학자 킴 바솔로뮤(Kim Bartholomew)와 레너드 호로비츠(Leonard Horowitz)는
1991년 성인의 애착을 네 가지 범주로 설명하는 모델을 제안했다.
이 모델의 핵심에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나는 사랑받고 지지받을 만한 사람인가?"
→ 자기 모델(Self-model)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있고 나를 받아줄 사람인가?"
→ 타인 모델(Other-model)
쉽게 말하면,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라는 두 가지 질문이다.
이 두 가지 인식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에 따라
네 가지 애착 유형이 만들어진다.
이를 일반 독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조금 다르게 표현해보자.
나는 이 네 가지 유형을
그리고
라는 두 가지 행동적 축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이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친밀감/거리두기'와 '자율성(독립성)/의존성'이라는 표현은
Bartholomew와 Horowitz가 사용한 원래 축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다.
원래 모델은 '자기 모델'과 '타인 모델'을 중심으로 네 유형을 설명한다.
이 글에서는 그것을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관계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행동의 언어로 필자가 재구성한 것이다.
그리고 현대 애착 연구에서는 사람을 딱 네 개의 상자에 넣기보다는
애착 불안(attachment anxiety)과 애착 회피(attachment avoidance)라는
연속적인 두 차원으로 이해하는 접근 역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아래의 네 유형은 사람에게 붙이는 영구적인 꼬리표라기보다
관계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지도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 사람은 사건, 상황, 상대방에 따라 한 사람에게서도 위 4가지 유형의 행동 패턴이 모두 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기에, 늘 이런 종류의 이론 및 배경 내용을 적용할 때는, 다층적 입체적 관점에서 다각도로 분석 접근해야 함을 밝힌다.
"나는 나를 믿을 수 있고,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있다."
안정형의 가장 큰 특징은 친밀감과 자율성(독립성) 사이의 균형이다.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군가와 항상 붙어 있어야 안심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곧바로 거절이나 배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상대방이 잠시 연락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갈등이 생겼을 때도 상대를 공격하거나 관계를 끊는 대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연인이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고 한다.
안정형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재미있게 다녀와.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그리고 상대가 몇 시간 동안 연락하지 않아도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고
친구를 만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상대를 사랑하지만 상대가 자신의 삶 전체가 되지는 않는다.
안정형의 핵심은,
가까워질 수 있지만 매달리지 않는다.
혼자 있을 수 있지만 고립되지 않는다.
어쩌면 건강한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일 수 있다.
"나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
몰두형은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 확신을 자신의 내면에서 만들어내기보다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 확인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메신저 답장이 늦어진다.
평소보다 말수가 줄었다.
전화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그러면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관계의 위기로 해석할 수 있다.
"나한테 마음이 식은 건가?"
"내가 뭘 잘못했나?"
"혹시 다른 사람이 생긴 건 아닐까?"
그래서 사랑을 확인하려는 행동이 반복될 수 있다.
연인의 답장이 10분 늦었다.
한 번의 메시지로 끝내지 못한다.
"어디야?"
잠시 후,
"왜 답이 없어?"
그리고 다시,
"나한테 화났어?"
상대를 통제하려는 의도가 처음부터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그 밑바닥에는 관계가 끊어질 것에 대한 불안이 있을 수 있다.
몰두형의 핵심은,
나는 혼자서 관계의 안전을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니 당신에게서 계속 확인받고 싶다."
그래서 사랑을 원하는 마음이 오히려
상대를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혼자서도 괜찮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
거부-회피형은 타인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을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보다는 혼자 해결하려 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약함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상대가 걱정하며 다가오면 오히려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무슨 일 있어?"
라는 질문에
"아무 일 없어."
라고 대답하고 대화를 닫아버리는 식이다.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연락을 끊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선택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말한다.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해. 같이 해결하자."
하지만 C형은 오히려 이렇게 반응할 수 있다.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이들에게 혼자 있는 것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일 수 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모두 회피형인 것은 아니다.
내향적인 사람일 수도 있고,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일 수도 있다.
현재 관계에서 실제로 갈등이 있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혼자 있는 게 좋아."
라는 한마디만으로 C형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반복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거리를 두는가이다.
거부-회피형의 핵심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줄어든다."
"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사람도 결국 나를 상처 입힐 것 같다."
네 유형 가운데 가장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유형이다.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지면 두려워진다.
상대가 멀어지면 불안하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다시 도망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한 사람 안에서 서로 반대되는 욕구가 충돌할 수 있다.
"나를 떠나지 마."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에게 너무 가까이 오지 마."
라고 말한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
처음에는 행복하다.
"드디어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겼다."
그런데 관계가 진지해지기 시작하면 갑자기 불안해진다.
"이 사람도 언젠가는 나를 떠나겠지."
그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관계를 끊어버릴 수도 있다.
상대가 떠날까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이 먼저 떠나는 방식으로 상처를 피하는 것이다.
D형의 핵심은,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는 순간 상처받을까 두렵다."
노파심에서 몇 마디 더하자면,
이것을 반드시 정신질환이나 병리적인 인간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애착유형은 정신질환의 진단명이 아니다.
또한 특정 유형이라고 해서 반드시 특정 행동을 한다는 뜻도 아니다.
본 글을 너무 극단적으로 모든 사례에 적용하면 위험하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늘 한결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상황과 여건, 그리고 상대방에 따라서 달리 행동하기 때문에 본 내용들은
자신과 주변인들의 관계에서 참고로 활용할 뿐, 일반화시켜서는 안 됨을 주의해야 한다.
반복적인 관계 패턴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관계를 어떻게 경험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 번의 행동으로 사람을 분류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원칙이 있다.
사람은 한 번의 행동으로 유형을 판정할 수 없다.
연락이 늦었다고 B형이 아니다.
혼자 있고 싶다고 C형이 아니다.
연애를 하다가 잠시 거리를 두었다고 D형인 것도 아니다.
누구나 피곤할 수 있고, 화가 날 수 있으며, 상처받을 수 있다.
때로는 건강한 사람도 관계를 피한다.
때로는 안정적인 사람도 불안해한다.
중요한 것은 특정 상황에서 한 번 나타난 행동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다.
그리고 그 패턴을 해석(프로파일링)할 때에는 그 사람의 성격뿐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 관계의 역사, 현재 상황과 스트레스 수준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사람은 혼자서 관계를 만드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범죄 사건 등과 관련해서 정보 수사기관에 자문할 때도
늘 상기와 같은 내용들을 준거로 분석하지만,
매우 다층적 입체적으로 그리고 절제해서 적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착이론의 네 가지 유형은
그 복잡한 인간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지도가 될 수 있다.
사람을 네 종류로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Bartholomew, K., & Horowitz, L. M. (1991). Attachment Styles Among Young Adults: A Test of a Four-Category Mode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1(2), 226–244.
Bowlby, J. Attachment and Loss. Basic Books.
성인 애착 연구에서는 이후 애착을 불안(attachment anxiety)과 회피(attachment avoidance)의 연속적인 두 차원으로 측정·연구하는 접근이 발전했다.
※ 본 글의 A~D 분류는 바솔로뮤와 호로비츠(Bartholomew & Horowitz)의 성인 애착 4유형 모델을 바탕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친밀감/거리두기'와 '자율성(독립성)/타인 의존'이라는 행동적 개념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단순하게 적용하거나 일반화하는 것은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