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종결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된다
명절 연휴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중 상당수는 부부싸움, 가족 간 갈등, 인간관계의 분쟁 때문에 지쳐 있었다.
어떤 사람은 체념했고, 어떤 사람은 “원래 인간관계가 그런 것”이라며 포기했다.
그래서 한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부부싸움을 끝내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방법의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나는 상대방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대부분의 분쟁은 상대방을 몰라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인간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 ‘안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는 상대방의 행동을 보면 곧바로 그 이유를 해석한다.
“저 사람은 나를 무시하는 거야.”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야.”
“분명히 일부러 저러는 거야.”
“원래 저 사람은 이기적이야.”
문제는 이것들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실제로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물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심지어 나 자신도 내 감정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배우자의 마음은 너무나 쉽게 단정한다.
“당신 마음 내가 다 알아.”
사실 이것만큼 위험한 말도 없다.
내 마음도 내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는데, 어떻게 타인의 마음을 완벽하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아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인식’과 ‘인지’를 조금 다르게 구분해 보자.
지식은 알고 있는 것이다.
인지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별하고,
주어진 정보를 서로 연결하여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보자.
바카라상과 밥상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면 그것은 지식이다.
하지만 두 물건의 용도와 상황을 구별하고,
누군가에게는 바카라상이 밥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이해한다면 그것은 한 단계 더 나아간 인지적 이해다.
가난해서 바카라상에서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다른 사람은 바카라상과 밥상을 철저하게 구분하며 살아왔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틀린 것인가?
그렇지 않다.
경험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살아온 세계가 다를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자신의 경험을 보편적인 기준으로 착각하는 순간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으니 이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다르게 행동하면,
“저 사람은 이상하다.”
라고 결론 내린다.
바로 이것이 갈등의 시작이다.
부부싸움에서도 똑같다.
남편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내에게는 그것이 오랫동안 쌓여온 상처의 마지막 한 방일 수도 있다.
반대로 아내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말 한마디가
남편에게는 오랜 시간 무시당해왔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누가 맞을까?
사실관계는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의 크기까지 제3자가 쉽게 재단할 수는 없다.
그래서 상대방의 감정을 함부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인질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극도로 흥분한 사람에게
“진정하세요. 당신 마음 제가 다 압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다.
“지금 굉장히 화가 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제가 아직 모릅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듣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감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대화가 시작된다.
부부싸움의 진짜 문제는 ‘사실’과 ‘해석’이 섞이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사실 하나에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해석과 추측이 사실처럼 변해버린다.
“당신이 늦었다.”
이것은 사실관계의 문제다.
그런데 곧바로
“당신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라는 해석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다시
“당신은 원래 자기밖에 모른다.”
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로 발전한다.
사실 → 해석 → 추측 → 과거의 기억 → 인격에 대한 평가
이렇게 진행되면 이제 싸움의 대상은 처음의 사건이 아니다.
서로의 존재 자체가 공격 대상이 된다.
따라서 분쟁을 해결하려면 먼저 이들을 분리해야 한다.
(팩트체크-사실관계) 무슨 일이 있었는가?
(예단/속단 오류여부-이해관계)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주관적 판단오류-감정인식) 그때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역지사지) 그리고 상대방은 실제로 무엇을 의도했는가?
이 네 가지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준비물은 간단하다.
칠판 하나면 좋고, 없으면 스케치북도 좋다.
가운데 선을 긋는다.
각각 한 쪽에 싸움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일을 시간순으로 기록한다.
각자 자신의 기억대로 쓴다.
그러고 나서 서로의 기록을 대조해본다.
이때 대화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한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것이 드러난다.
“나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당신은 저렇게 기억하고 있었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첫 번째 변화가 시작된다.
각자 10분씩 발표한다.
상대방은 끼어들지 않는다.
반박도 하지 않는다.
변명도 하지 않는다.
판사에게 사실관계를 설명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몇 시에 무엇이 있었고, 나는 이렇게 말했고,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필요하면 그림도 그리고 시간표도 그린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설명한다.
단, 중요한 원칙이 있다.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그게 아니잖아’를 금지한다.
왜냐하면 지금 필요한 것은 판결이 아니라 정보의 수집이기 때문이다.
이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자신의 기억과 비교한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발견될 수 있다.
내가 몰랐던 사실이 있었을 수 있다.
내가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그렇게 큰 상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상대방 역시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처음 알게 될 수 있다.
분쟁의 상당 부분은 악의가 아니라 정보의 부족과 서로 다른 해석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을 발견하는 순간 싸움은 조금씩 분쟁 해결의 과정으로 바뀐다.
마지막 10분은 ‘인정의 시간’이다.
상대방의 설명을 듣고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이 있다면 인정한다.
내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화를 낼 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인정한다.
그리고 사과한다.
“그건 내가 몰랐어.”
“그 부분은 내가 잘못 생각했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
이 몇 마디가 때로는 긴 논쟁보다 훨씬 강력하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비로소 싸움은 끝날 가능성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다.
처음보다 서로가 조금 더 많이 알게 되었느냐이다.
여기에는 냉정한 문제가 남는다.
상대방의 설명을 듣고도 사실을 확인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무조건 부정하고,
모든 바카라임을 상대방에게 돌리고,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면,
그 관계는 단순한 의사소통 기술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모든 관계를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와 자식도, 친구도, 동료도, 부부도 마찬가지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의 존재와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부부싸움 종결’은 반드시 ‘화해’를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고,
때로는 서로의 차이를 확인한 뒤 적절한 거리를 선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싸움 속에서 사실과 해석, 앎과 모름을 구별하는 것이다.
결국 인지능력이란 ‘내가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능력’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과 다른 사람을 쉽게 틀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이 훨씬 많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살아온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은 “내가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다”라고 주장하는 방식이 아니다.
관찰하고, 측정하고, 검증하고, 다른 사람이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논증하면서
현재 가장 타당한 설명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주장만으로 사실을 확정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서로 다른 주장과 증거를 비교하고,
무엇이 확인되었고 무엇이 확인되지 않았는지를 구분한다.
인간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다른 문제다.
그리고
“나는 상대방이 왜 그랬는지 안다”와 “상대방에게 실제로 물어보았다” 역시 전혀 다른 문제다.
상대를 설득하려고 하지 말자.
상대를 이기려고도 하지 말자.
먼저 이렇게 물어보자.
“내가 지금 모르는 게 무엇이지?”
그리고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당신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였는지 처음부터 이야기해줘. 이번에는 내가 듣기만 할게.”
그 순간부터 싸움은 달라질 수 있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하나 발견하고,
내가 잘못 해석했던 것을 하나 인정하고,
상대방이 몰랐던 내 마음을 하나 설명한다.
그것만으로도 30분은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부싸움 30분 안에 끝내는 법’은 바로 이것이다.
싸움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싸움의 방식을 바꾸는 것.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결국,
인지능력이란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부싸움이 시작되면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해보자.
“혹시 내가 지금 화가 난 이유는, 상대방을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상대방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 질문 하나가 때로는 오랫동안 반복해온 부부싸움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
자, 이제 싸우기 전에 서로의 ‘모르는 것’부터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