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일까, 변명일까?

내해남변:내가 하면 解明(해명), 남이 하면 弁明(변명)

by혜준

딸아이가 놀란 토끼 눈으로 가방을 들고 묻는다.

"여기에 넣어 둔 건강검진 수첩을 못 봤어?"

그 가방은 딸이 한동안 들다가 가방 자체가 무겁다고 해서 방 한쪽 구석에 버려지듯 놓여 있었는데,

며칠 전 아이들 방정리를 하면서 가방에 쌓인 먼지도 털고, 안에 있는 아코디언처럼 꼬깃꼬깃해진 프린트와 과자 봉지 등의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옷장 안에 잘 걸어 두었던 기억이 난다.

아! 가방 안에 손바닥만 한 수첩이 있었는데 그걸 말하는 건가?

팸플릿처럼 보이는 인쇄물이라서 필요 없는 건 줄 알고 버렸는데...

딸아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파르르 떨면서 왜 자기 물건을 엄마 맘대로 버리냐고 화를 낸다.

미안해... 엄마가 얼른 찾아볼게

하면서 종이를 모아 놓은 곳이며, 버릴 바카라을 쌓아 놓은 곳을 샅샅이 뒤져 봐도 없다.

어떡하지...

아무 주저 없이 휙 던지듯이 버린 그 순간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서 더 미안하다.

새 학기의 첫날 건강검진을 하고 나서 그 수첩에 적어 제출을 해야 한다는데, 중학교부터 고2가 될 때까지 엄마라면서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허둥대며 너무 미안해해서일까, 원래 뒤끝 없는 털털한 성격 탓일까, 딸은 괜찮다며 이젠 나를 위로한다.

"내일 담임 선생님께 엄마가 모르고 버렸다고 말씀드리면 안 될까?"

혹시나 선생님께 꾸중 들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딸에게 제안하자,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 핑계대기 싫어"(ママ を [mamawo]言い訳に [iiwakeni]使いたくない [tsukaitakunai])

딸아이의 말 속에 찬바람이 쌩한다.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잖아...

네가 그런 게 아니라고 선생님께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설명하면 선생님이 용서해 주지 않으실까...

했더니 딸이 날 딱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변명하기도 싫고, 무엇보다 자기 물건을 아직도 엄마가 정리해 주는 사람으로 생각되는 게 더 싫다며 그냥 혼나는 게 낫다고 한다.


아들과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딸 생일이라 넷이서 식사를 같이 하기로 한 날과 아들의 친구들과의 약속이 겹쳐서, 식사 후에 아들은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사정이 있어서 식사가 늦어졌다. 친구들과 만날 약속 시간은 다가오고 식사는 아직인 상황이 되자, 아들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조금 늦을 이유를 설명하는 게 어떠냐 했더니 펄쩍 뛰면서 "변명하기 싫어"(言い訳 [iiwake] したくない [sitakunai])란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사과를 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나 같으면 잠시라도 친구들에게 약속 시간을 어기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싫어서 해명을 할 것 같은데...


내 탓일까?

내가 너무 단순하게 세상을 가르쳐 온 걸까?

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잘못을 하면, "だって([datte](그게 아니라))"나 "だけど([dakedo](그렇지만))"이라는 말로 변명하지 말고 먼저 확실히 인정한 후에 사과부터 하라고 가르쳤던 것 같다.

듣는 입장에서는 구구절절 자기 입장을 설명하는 게 오히려 자기 잘못을 부인하려는 태도로 비쳐서 비겁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의 행동을 보니, 해명을 해야 할 상황에서도 그걸 변명한다고 생각해서 자기 입장을 설명하지 못한 채, 오해를 받고 손해(?)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해명과 변명....

해명은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고, 변명은 바카라임을 피하려는 것으로 들린다.

똑같은 상황과 설명이라도,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에 의해 갈려지는 이 두 개념이 새삼 어렵다.

내가 하면 해명이 되고, 남이 하면 변명으로 들리는 미묘한 상황들이 살아갈수록 복잡하게 느껴진다.

내로남불처럼 내해남변(내가 하면 해명, 남이 하면 변명)이라고나 할까?

4월 6일 발행 이후, 나는 개강을 이유로 며칠 째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

하루 24시간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작가님들은 나보다 더 바쁘고 힘든 일상 속에서도 꾸준하고 묵묵히 발행하고 계시는 걸 지켜보면서도 발행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면,

아직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처리해야 마음이 놓이는 이 구질구질한 바카라임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렇게 살다가 죽기 싫다).

이건 결국 나의 해명일까,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까?


오늘도 나는 이 "내해남변"의 굴레 속에서, 해명 같은 변명, 변명 같은 해명을 적어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