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치의 절대음감
일본어에는 "音痴(おんち[onchi] :음치)"라는 말을 접미사처럼 뒤에 붙여서 특정 분야에 감각이 없거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일컫는 표현이 있다.
예를 들어 기계 조작이 서툰 기계音痴, 운동 신경이 없는 운동音痴, 방향 감각이 없는 방향音痴 등등...
나는 위의 세 가지 音痴를 다 가지고 있지만, 슬프게도 요즘 또 하나의 音痴를 발견한 것 같다.
혹시 난 음식音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미각(味覚)音痴와는 좀 다르다.
미각音痴는 맛을 잘 구별 못하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만 찾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니, 나같이 아예 맛을 찾지 않는 사람은 미각音痴의 나카마(仲間:같은 편, 동료, 친구)에도 낄 자격이 없을 것이다.
난 기본적으로 음식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나에게 있어서 음식은 그저 배를 채우면 되는(배가 좀 커서 많이 채워야 하므로 양은 좀 많음).
생존을 위한 물질과 같다고나 할까...
갓 조리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떤 요리도 나에겐 그저 컵이나 접시, 휴지 등과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다"라든지
"와아~입안의 보석상자야" 등등 음식에 대한 찬사와 감상이 다양하고 현란하기까지 하지만
난 엄청 분발해도 영혼이 별로 없는 "와아~ 맛있겠다"혹은 "음, 맛있네"가 끝이다.
미식가나 요리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 들으면 뭐 저런 저질(低質)이 있나... 싶으시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니 부끄러워도 어쩔 수 없다.
한국에 가면 뭐가 제일 먹고 싶니, 일본에서는 뭐가 제일 맛있니, 우리 다음에 뭐 먹으러 갈까, 넌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니,라는 음식에 관련된 질문에도 난 말문이 막힌다.
딱히 별생각이 없다. 아니, 그냥 뭐든 다 좋다.
아니 사실은 싫지 않은 거다.
엄마는 음식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80년대 초에 하선정(멸치액젓 유명하지 않나?)요리학원에 다니며 조리사 자격증을 딸 정도였는데, 초등학생 연년생 사 남매를 키우면서 요리학원에 자격증까지......
외출하고 돌아온 엄마를 우리 사 남매가 쪼르륵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번개처럼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서 금세 칠첩반상, 구첩반상을 차려 줄 수 있을 만큼 냉장고에는 늘 기본(?)이 구비되어 있었다.
식재료나 양념에도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서 주말에는 투덜대는 아빠랑 차를 타고 멀리 시골 장터 같은 곳에 가서 채소를 한가득 사가지고 와서는 부엌에 신문지를 펴고 예쁜 손톱에 흙이 들어가 새카매지도록 다듬어서 데치고 볶고 무치고 하느라 긴 시간 서서 작업을 했다.
힘드니까 쉬라고 해도 요지부동 고집불통, 더운 부엌에서 땀을 흘리며 서 있는 엄마를 보는 게 싫었다.
TV에서 유명 산지(産地)의 뭐가 있다고 하면, 방송국에 전화까지 해서 그곳의 연락처를 받아 주문을 해 동네 아줌마들에게 나눠 주는 오지랖마저......
당시 난 그게 너무 싫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 수고를 해야 하는가.
몇 시간 공을 들여도 길어야 30분이면 뱃속으로 사라지는 이 허무함이 나에겐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언제나 한상 가득 맛있게 차려 줘도 그게 고마운 줄 몰랐다.
음식에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먹으면 살로 가는 저주받은 체질이라서 어릴 땐 다이어트한다고 엄마의 음식을 돌 보듯 했고, 국을 젓가락으로 먹고 밥을 깨작거리는 날 엄마는 "일본 가시나"라며 늘 못마땅해했다.
일본에 와서 혼자 생활할 때에도 난 엄마가 보내 준 밑반찬으로 미소시루만 끓여서 대충 먹고 살았다.
내가 식재료를 직접 사서 해 먹는다는 발상자체가 없었다.
기숙사에서 살 때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엌에서 외국 유학생들 틈에 끼여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고, 혼자 살 때는 부엌 공간이 너무 좁았다.
하지만, 이런 나도 너무나 맛있게 음식을 먹은 적이 딱 한 번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 은 아닐 수도 있으니 단언은 피하지만, 처음은 처음이다.
첫 애를 갖던 해, 어느 날 뜬금없이 짜장면이 생각났다.
난 짜장면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일본에도 짜장면(ジャージャー麺)이 있고, 탕수육(酢豚)도 있지만, 한국의 맛이 아니었다.
고국의 그리운 맛을 찾아 약 40분간 전철에 흔들려가며 신주쿠로 향했다.
먹기 위해 이동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기적은 또 한 번 일어났다.
너무 맛있지 않은가!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지금도 세상에서 태어나 제일로 맛있었던 음식을 묻는다면, 신주쿠반점의 짜장면과 탕수육(엄마, 미안).
아이들이 초등학생 무렵, 딸에게 에피소드를 들려 주며 신주쿠반점을 다시 찾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의 그 맛이 아니었다.
신주쿠반점의 요리사가 바뀌었는지, 뱃속에 있는 딸아이가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그때만 내 입맛을 변화시켰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젠 추억 속의 짜장면과 탕수육이다.
그렇다고 다시 먹고 싶다는 절실한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난 음식에 대한 관심은 없지만 음식을 함부로 다루는 것에는 민감하다.
아마도 나에게 음식은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한 사치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라서일까.
요즘은 한국에서도 요리 프로그램이 많다고 들었는데, 일본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요리나 음식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많이 있었다.
특히, 내가 불편했던 것은 누가 더 많이, 빨리 먹는가 내기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지구의 어느 한 편에서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하고 많은 것 중에 먹는 걸로 장난을 치는지 분노마저 느끼곤 했다.
내가 착한 척을 하는 걸까?
나는 일본어 중에서 "いただきます([itadakimasu])"라는 말을 참 사랑한다.
이 말은 식사를 하기 전에 "잘 먹겠습니다"라는 의미의 말인데, 직역하면 "잘 받겠습니다"가 된다.
맛이 있든 없든 푸짐하든 초라하든 가족과 있든 혼자 있든 두 손을 모아 "いただきます"라고 예의를 갖춘다.
그 짧은 말에는 내 앞에 음식이 오기까지 수고한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음식에 대해 흥미도 관심도 없는 음식音痴이지만, 음식에 대한 감사만큼은 절대음감처럼 몸에 장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