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팡팡 피어난다. 어느새 팝콘 같은 꽃들이 만개하여 사람들 마음에 설렘을 선물한다. 벚꽃의 시간은 짧아서 화사한 봄꽃을 누리느라 분주하다.
우리나라는 전국이 벚꽃 명소이다. 벚꽃 도시 진해(창원)는 물론, 부산에도 달맞이 언덕, 동백역 아파트, 남천동 아파트, 개금의 골목 등 굵은 벚꽃 나무가 있는 곳은 동네 사람, 관광하러 온 사람 등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조금만 멀리 나가면 울산의 서생 왜성과 작천정도 오래된 수령을 자랑하듯 별처럼 셀 수 없는 벚꽃 잎이 떨어져 땅바닥조차 연분홍 융단이 된다. 문득 아주 오랫동안 즐기지 못한 고향 익산의 벚꽃이 그리웠다. 특히 중간고사를 앞두고 공부하기도 바쁜 우리를 잡아당기던 원광대학교의 수덕호 벚꽃이 생각났다. 삼십 년 전에도 예뻤는데 벌써 환갑이 훨씬 넘었을 그 나무 둥치는 얼마나 더 굵어졌을까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고향을 떠나면 고향의 돌멩이조차 그리운 법이다. 보고 싶은 열망이 짙어졌고, 마침 대중없이 정해지던 대학 동창 모임이 사월 첫 주이길래 익산에서 만나기로 했다.
각각 서울, 익산, 동탄(화성), 부산에 살다 보니 그동안은 항상 고속열차 호남선과 경부선이 만나는 천안에서 모였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우리가 처음 만났던 익산으로 돌아왔다. 만개한 벚꽃철을 맞아 원광대학교는 굉장히 분주했다. 익산시립무용단 공연도 보고, 익산의 상징인 마룡이 인형과 사진도 찍으며 수덕호의 벚꽃을 만끽했다. 역시 기대 이상으로 두꺼운 나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꽃을 흔들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파란 수덕호의 호숫물을 보니 성년식에 동아리 선배들이 나를 호수에 던졌던 기억도 나고, 계단에 앉아 새우깡 한 봉지에 여러 병의 맥주를 마시던 친구들도 생각났다. 벚꽃처럼 연분홍 색깔을 가진 청춘의 시절. 나이 든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때 그 장소에서 되살아난다. 해마다 만발하는 벚꽃처럼!
많은 상춘객으로 시끌시끌 북적북적한 수덕호를 벗어나 원불교익산성지를 향해 걸었다. 최근에 어떤 연속극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졌길래, 그곳이 궁금했다. 학교와 길 하나를 두고 활짝 열려 있는 대문을 들어서니, 그동안 금단의 영역 같아서 한 번도 찾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고향인 영광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에 익산에서 원불교를 선포하셨다. 원불교 성지에서 잘 보존된 근대의 집들을 만났다. 화려함보다 소박함, 근엄함보다 포근함, 높음보다 낮음을 보여주는 그곳에서 생활 종교 원불교를 잠시 생각했다. 상징인 둥근 원처럼 백여 년 동안 원불교는 원만하게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우리나라 4대 종교의 한 축이 되었다. 해방 후 원광대학교의 첫 문을 열었다던 파란 지붕의 집을 보니, ‘일만 육천 원광대 학우님’을 외치던 시절이 생각나면서 지방대학의 위기 속에서도 글로컬(GLOBAL + LOCAL)을 내세우며 성장하는 학교가 자랑스럽다. 학교를 자랑하자면, 원광대학교는 내가 꼬꼬마이던 시절에도 어린이날에 큰 잔치를 하며 오늘처럼 시민과 함께 즐거움을 나눴다. 또, 원광대학교 대학박물관에 근무하던 시절에 나는 익산 시민을 모집하여 전국으로 역사 답사를 떠나고, 방학이면 초등학생들을 위한 탁본 찍기 과정을 준비하거나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을 안내하곤 했다. 또한 익산에 있는 백제 유적을 발굴하고 그 가치를 알려 당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로 인정받게 한 마한백제문화연구소도 원광대학교의 부설 연구소이다. GLOCAL, 지역 시민과 함께하며 세계로 뻗어나가는 원광대학교에 딱 맞는 수식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왕궁리 유적에 있는 벚꽃 군락지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이 환상적이다. 익산에서 백제 부흥의 새 시대를 열려던 무왕(서동)의 꿈은 백제 멸망으로 좌절되고, 왕궁은 사찰이 되어 명맥을 이어갔다. 고대의 어떤 시간에 만들어진 오 층 석탑은 벚나무들을 내려다보며 탑신에 간직한 천년을 보여준다. 위풍당당 굵은 둥치를 자랑하는 벚나무들과 달리 왕궁리 유적의 벚나무는 밑동이 짧고 중간 가지들이 길게 자라 마치 춤추는 선녀처럼 보인다. 마치 수덕호 앞에서 보았던 부채춤을 추던 무희들처럼, 기다란 팔을 내밀어 꽃춤을 춘다. 오천여 명이 하루에 이용할 수 있었다던 공중화장실 유적을 보며 그 시절에 반半수세식으로 만들어 오물을 정화하던 과학기술에 탄복했다. 왕궁터 끄트머리에 있는 화장실에 달려가기 위해 애쓰던 고대인들이 상상되면서 ‘뒷간과 처가는 멀리하라’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요즘은 뒷간과 친정(처가)이 가까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익산에서 누린 벚꽃의 시간이 추억의 실타래에 감긴다. 그녀들은 스무 살에 첫 번째로 만난 인연들이다. 결혼 후 타지에서 각자의 길을 가면서도 언제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그녀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시간에 따라 굵어지는 벚나무처럼 우리의 우정도 서른셋이라는 시간의 나이테가 겹겹이 진해진다. 무수한 꽃잎처럼 이어진 친구들의 대화, 맛있는 음식 앞에서 저절로 나오는 감탄, 입안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커피의 신맛, 눈처럼 내리는 벚꽃잎에 터져 나오는 탄성. 풍성한 개화도 이쁘지만, 꽃비처럼 흩날리는 낙화도 이쁜 벚꽃. 손바닥으로 떨어지는 꽃잎에 오늘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