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우리는 국가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내부의 적(무능과 부패, 정쟁)'을 직시했다.
그 비겁함과 정략은 이제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명줄을 조이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3단계('대법원장의 제청 → 국회의 동의 → 대통령의 임명') 절차마저 건너뛴 채,
유신의 낡은 관행인 '사전 조율'을 핑계로 삼권분립을 파괴하려는 위헌적 시도...
후보자가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적법하게 국회 동의를 거친 뒤 반려하면 될 일이다.
이에 맞서 배수진을 친 대법원장의 결기는,
사법부를 권력의 시녀로 꿇리려던 맹동을 멈춰 세웠다.
삼권분립의 본질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권력의 오만을 살펴보자. ▶
ALTUS SOLUM 2026.9.25.(금)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
19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액턴 경(Lord Acton)이 남긴 이 명제는, 권력이란 끝없이 비대해지려는 관성을 지니고 있기에 반드시 구조적으로 분할하여 견제해야 한다는 '삼권분립(Gewaltenteilung)'의 당위성을 증명한다. 우리가 92번 글. <대한민국의 카틸리나들>에서 살펴보았던 몽테스큐(Montesquieu)는 <법의 정신>에서 "동일한 사람이나 동일한 관직 기구 안에 입법권이 행정권과 결합될 때, 자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썼다. 삼권분립은 근대 공화국을 지탱하는 절대적 근간이다.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본질적인 지반(Altus Solum)은 물리적 국경선이 아니라, 권력의 독주를 차단하는 이 헌법적 척추에 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전례없이 폭주하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야합하여 사법부의 목을 조르는 사상 초유의 헌정 위기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틀 연속 입장문을 내어 청와대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를 일축한 사건은 단순한 인사 갈등이 아니다. 대법원을 청와대의 '꼭두각시'로 전락시키려는 정권의 삼권분립 파기 시도에 맞서, 사법부 수장이 헌법 수호의 배수진을 친 거대한 헌정사적 사건이다.
사태의 전말을 살펴보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후보자를 제청하자, 청와대는 "대통령과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구실로 임명동의안 국회 제출을 거부하고 '재제청'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을 대변하는 사람은, 국가의 뼈대인 삼권분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는 끔찍한 무지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의 임명권이 올바르게 행사되도록 뒷받침하는 권한'이라며 '선출된 권력과 임명된 권력' 운운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행정부의 임명권이 사법부의 제청권 위에 군림한다는 이 발상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의 핵심 가치를 짓밟는 독재적 망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 임명에 대해 '대법원장의 제청 → 국회의 동의 → 대통령의 임명'이라는 명확한 3단계 권력분립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이 의도적으로 이러한 3단계 구조를 둔 것은 △행정, △입법, △사법이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맞추도록 설계한 고도의 법치주의적 기획이다. 그러나 이 세 권한 사이의 서열을 정하거나 '사전 협의'를 강제하지 않는다. 일선 법관들이 내부망을 통해 "사전 조율은 오히려 임명권자가 가하는 압력", "관행은 법이 아니며, 제청 반려나 재제청 요구는 초법적 발상"이라며 청와대의 억지에 문제제기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초 유신헌법 이전에는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무조건 임명'해야 하는 명시적 의무 조항이 있었다. 훗날 유신헌법이 이 의무 조항을 삭제하고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쥐여주자, 제청이 반려당하는 굴욕을 피하기 위해 대법원장이 미리 청와대의 허락을 구하던 치욕적인 굴종이 바로 저들이 말하는 '사전 협의' 관행의 진짜 실체다. 이후 국회 동의 절차가 추가된 현행 헌법에서도, 제청권의 본질은 '대통령이 입맛대로 사법부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최후의 방어막'이다. 제청권이 임명권의 하수인이라는 헌법학적 근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최재형 전 의원의 지적처럼 이를 강요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존중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의 통치에 순치된 결과일 뿐이다.
역대 과거 정부의 전례를 보아도 청와대의 몽니는 명분이 없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최종영 대법원장이 제시한 후보군에 대해 '개혁성 부족'을 이유로 거부 의사를 내비쳤으나, 최 대법원장이 소신대로 김용담 후보자를 제청하자 결국 이를 존중해 받아들였다.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도 진보 성향의 이용훈 대법원장이 "청와대 카드를 받는 것은 사법권 독립 침해"라며 반발하자 결국 갈등을 매듭짓고 제청안을 수용했다. 심지어 2023년 윤석열 정부와 김명수 대법원장 간의 갈등 역시 '정치적으로 편향된 특정 후보를 배제'하는 선에 그쳤을 뿐, 이번처럼 대통령실이 특정인을 콕 집어 점지하려 들지는 않았다. 1957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김동현 대법원장 후보를 거부하고 측근인 이우익 변호사를 요구했다가 법관회의의 반발로 무산된 이래, 70년 만에 가장 졸렬한 사법부 개입이 벌어진 셈이다.
백번 양보해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안이 그토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해법은 아주 간단하다. 헌법에 정해진 절차대로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보내고, 정당한 사유를 들어 '임명 거부(반려)'를 행사하면 될 일이다. 대통령이 헌법적 권한으로 거부를 선언하면, 대법원장은 그에 승복하고 새로운 후보를 다시 제청하여 절차를 이어가면 된다. 절차를 지키는 것, 그것이 헌법이 규정한 견제와 균형의 정상적인 프로세스다.
그러나 작금의 청와대는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없는 유신 독재의 망령인 '사전 협의'를 부활시켜,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예 국회 제출 공문 자체를 중간에서 가로채 버렸다. 국민이 납득할 위헌적·위법적 사유 하나 제시하지 못한 채 "남은 3명 중에서 골라오라"며 범위를 제한하는 행태는, 대통령이 사실상 대법관을 직접 지명하겠다는 사법부 장악의 노골적인 선언이다.
그렇다면 왜? 왜 이토록 무리수를 두며 사법부를 길들이려 하는 것일까? 이 폭력성의 기저에는 현재 권력의 심장부를 짓누르는 거대한 '사법 리스크의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
사태의 본질은 참담할 정도로 단순하다. 현재 행정부 수반은 헌정 사상 초유로 대장동, 대북 송금, 공직선거법, 법인카드, 위증 교사 등 무려 다섯 건의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이다. 그런데 여당의 '사법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추진되는 변화로 그는 자신의 임기 중 무려 22명의 대법관을 새로 임명하게 된다. 이 재판들이 3심까지 간다면, 대통령이 직접 '간택'한 대법관들이 그 사건의 최종 판결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형사 피고인으로서 제척 사유이자 거대한 이해충돌"이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자신을 심판할 최종심 판사를 입맛대로 고르는 것은 민주주의의 파괴를 넘어 사법 시스템 전체에 대한 능욕이다.
이번 사태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조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의 남다른 상징성 때문이다. 그는 고법 부장이 아닌 지방법원 소속 판사 최초로 대법관에 제청된 이른바 '향판(지역법관)'이자 비(非)서울대 출신이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확보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완벽히 부합하는 파격적이고 건실한 인사다. 국회 청문회에 세운다면 여당도 그를 낙마시킬 뚜렷한 흠결을 찾지 못할 테니 아예 국회로 보내지도 않은 것이다.
퇴임 이후의 안전보장에 혈안이 되어, 흠결 없는 꼿꼿한 법관을 배제하고 오직 자신을 지켜줄 '정치 판사'를 최고 법원에 꽂아 넣겠다는 속셈이 바로 이번 사태의 흑막이다. 현 정권이 선호하는 후보자는 이미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어 애초에 걸러졌어야 할 인물이다. 그는 수원고법 재직 당시 대장동 사업과 관련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와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의 뇌물 사건에서 1심의 실형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던 재판부의 배석판사였다. 게다가 그의 남편은 현 정부에서 직접 임명한 헌법재판관이다. 대법원 판결을 헌재가 뒤집을 수 있는 재판소원제가 도입된 마당에, 부부가 최고 사법기관을 나눠 맡는 사상 초유의 이해충돌마저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이 헌법적 원칙에 따라 거부 의사를 밝히자, 청와대 정무수석은 '임명권 침해' 운운하며 사실상 반려를 시사했고, 여당은 즉각 규탄대회를 열어 사법부 수장을 향해 "사법 내란", "정신을 잃은 것"이라는 섬뜩한 언어폭력을 쏟아냈다.
여당은 탄핵 카드를 들고 다음 달 국정감사에 대법원장을 증인대에 세워 인민재판식 추궁을 하겠다고 벼르고, 대법원장의 '업무추진비와 근태 조사'까지 들먹이며 치졸한 뒷조사를 예고했다. '검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형사사법 시스템을 붕괴시켰던 그 무지와 오만이, 이제는 기본권 수호의 마지막 방파제인 법원마저 짓밟으려 하고 있다. 조대법원장의 퇴임(27년 6월)까지 시간을 끌면서 사태를 흐지부지 하겠다는 것이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36번 글. <마음의 습관>에서 다루었던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인 동력은 법률 조문이 아니라, 승리에 도취해 선을 넘지 않는 절제와 관용, 즉 '마음의 습관(habitudes du cœur)'이다.
'직(職)'의 숭고함에 대한 최소한의 두려움도, 헌법기관에 대한 자발적 존경심도 증발해 버린 이 천박함이야말로 대한민국 정치의 '마음의 습관'이 얼마나 철저히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끔찍한 방증이다.
더구나 조희대 대법원장이 그들이 말하는 '정치 판사'였다면, 과거 이재명 지사의 선거법 위반 사건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그에게 회생의 기회(파기환송)를 주는 대신, 대법원이 직접 유죄를 확정 짓는 '파기자판(破棄自判)'을 결정했을 것이다.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엄정한 법리주의자를 향해 "대통령 후보를 죽이려 했다"며 핏대를 세우는 여당의 적반하장은, 그저 한 편의 '비루한 희극'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다짜고짜 거부한 궁극적인 목적은 사법부 수장을 길들여 행정부 앞의 굴종적 거수기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민주당의 주장은 완벽히 틀렸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재제청 요청을 거부한 것은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하거나 무력화한 것이 아니다. 헌법과 법률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재제청 요청에 대법원이 응한다면, 대법원장 스스로가 헌법적 근거 없는 위헌적 행위에 동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조 대법원장은 단지 "대통령의 임명권을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맞게 합헌적으로 행사하라"고 촉구한 것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은 법치의 훼손임을 명백히 함으로써,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직무에 완벽하게 충실했다. 사법부를 꿇리려던 권력은 도리어 스스로 파놓은 덫에 걸려 굴욕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이 추악한 권력 투쟁 속에서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되면 수천 건의 상고심을 기다리는 힘없는 국민들의 권리가 박탈된다. 조 대법원장이 "국민 불편에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정작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할 자들은 헌법에도 없는 억지를 부리며 사법부를 멈춰 세운 권력자들이다.
어제 우리는 "진짜 주적은 내부에 있다"는 라종일 교수님의 일갈을 통해, 내부의 비겁함이 어떻게 국가를 무너뜨리는지 경고했다. 그 진단은 지금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도 완벽하게 증명되고 있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덮기 위해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숨통을 끊겠다는 선전포고 앞에, 대법원장은 권력의 사유화에 맞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상기시키고 있을 뿐이다. 모질게도 외로운 헌정 수호의 싸움에서, 헌법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은 이제 오롯이 주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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