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역설

byAltusSolum

◀ 자신을 무대에 올린 후견인을 베어내는 배신의 역학은,

권력 독점을 기정사실화(Fait Accompli)하려는 인간의 생존 본능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것이 치명적인 역사적 오판(Hamartia)으로 전락하는 순간은,

정작 자신을 지탱할 생태계마저 잿더미로 만들 때 발생한다.

스스로 딛고 선 흙을 파헤치는 이 권력의 비극적 색채를 나폴레옹의 궤적을 통해 해부해 본다. ▶

ALTUS SOLUM 2026.9.21.(월)





우리는 48번 글. <하늘에서 내린 몇방울의 물>에서 영국의 사학자 앤드류 로버츠(Lord Andrew Roberts)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에 대해 살펴본적이 있다. 로버츠 경이 최근 피터슨 아카데미(Peterson Academy) 강연에서 인용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독백이 내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이 주제를 다뤄보려고 한다.


"비극의 영웅이 우리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유죄여서도, 전적으로 무죄여서도 안 된다.

(The hero of a tragedy, in order to interest us, should be neither wholly guilty nor wholly innocent.)

모든 나약함과 모든 모순은 불행히도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며, 이는 대단히 비극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All weakness and all contradictions are unhappily in the heart of man, and present a colouring eminently tragic.)

-Napoleon Bonaparte-


이 깊이 있는 통찰은 1805년,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극작가 프랑수아쥐스트마리 레누아르(François-Just-Marie Raynouard)의 비극 희곡 <성전기사단(Les Templiers)>을 관람한 후 남긴 비평에서 유래했다. 단순한 전술가를 넘어 문학과 역사에 조예가 깊은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기반한 고전주의적 비극의 본질을 짚어내며 다음과 같은 프랑스어 원문을 남겼다.


"Le héros d'une tragédie, pour nous intéresser, ne doit être ni tout à fait coupable, ni tout à fait innocent... Toutes les faiblesses et toutes les contradictions sont malheureusement dans le cœur de l'homme, et présentent une coloration éminemment tragique."


이 문장은 극중 인물의 대사를 차용한 것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거울을 통해 예술과 인간 본성의 근원적 딜레마를 꿰뚫어 본 나폴레옹 본인의 육성이었다.


로버츠의 지적처럼, 이 문장은 단순한 희곡 평론이 아니라 철저한 '자전적 투사(Projection)'였다. 혁명의 혼란을 끝내고 제국의 인프라를 세운 창조자(무죄)이면서, 동시에 권력의 팽창욕을 주체하지 못해 유럽을 불바다로 만든 야심가(유죄)라는 자신의 모순된 실존을 '비극적 영웅'이라는 무대 장치를 빌려 고독하게 항변한 것이다. 스스로 치명적 결함(하마르티아, Hamartia)을 인지하면서도 파국을 향해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권력의 속성은, 오늘날 우리 정치의 지형을 해독하는 가장 명징한 렌즈를 제공한다.





□ 능력주의의 역설과 26명의 맹수들

올 11월 미국 출간을 앞둔 로버츠의 신간 <나폴레옹과 그의 원수들: 승리, 경쟁, 배신(Napoleon and his Marshals: Victory, Rivalry, Betrayal)>은 이 비극적 색채가 권력의 역학구조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추적한다. 스스로 권력의 룰을 제정한 나폴레옹은 제국을 통제할 권력의 척추로 26명의 '제국 원수(Maréchal d'Empire)'를 임명했다.


이 집단은 혈통이 아닌 실력이 지배하는 시대의 파격적인 혁신이자, 신뢰의 증명이었다. 비단 장수의 아들(장바티스트 주르당), 술통 제조업자의 아들(미셸 네), 여관 주인의 아들(조아생 뮈라) 등 평민의 자식들이 맹렬한 야심 하나로 공작과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이들은 황제를 위해 기꺼이 진흙탕을 뒹굴며 피를 흘렸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비극은 바로 이 완벽한 실력을 토대로 한 능력주의 시스템 안에서 잉태되었다. 가난한 군인들이 천문학적인 하사금과 거대한 영지라는 자신만의 단단한 영토을 부여받는 순간, 이들은 잃을 것이 너무나 많은 '거대한 기득권'으로 변모했다. 권력의 톱니바퀴 속에서 맹수들의 욕망은 '성취'에서 '보존'으로 기어를 바꿨다.










□ 창조주를 멈춰 세운 피조물의 딜레마

전통적 핏줄이나 확고한 기득권 없이 오직 '승리'만으로 정통성을 구축한 나폴레옹은 '자전거의 역설'에 갇혀 있었다. 페달을 밟아 팽창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감과 권력이 붕괴한다는 실존적 불안 때문에 그는 끝없는 전쟁을 멈추지 못했다. 연합군의 평화 타협안마저 걷어차고 폭주하자, 26명의 원수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1814년 퐁텐블로 궁전에서 황제에게 총구를 겨누며 퇴위를 강요한 것은 다름 아닌 이 원수들이었다. 그들은 뼛속까지 악당이어서 배신한 것이 아니었다. 폭주하는 기관차(나폴레옹)를 그대로 두면 자신들이 획득한 모든 영지와 자산이 잿더미가 될 것이 명백했기에, 오직 그것을 지키겠다는 실용적인 나약함이 작동했을 뿐이다. 자신의 부를 보존하기 위해 자신을 그 자리에 올려준 창조주를 베어내야만 하는 끔찍한 모순, 이것이 바로 권력이 뿜어내는 비극의 민낯이다.




□ 현대 정치의 생태계 파괴와 주권의 논리

이러한 권력의 잔혹한 섭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도 동일하게 변주된다. 1799년 에마뉘엘 조지프 시에스(Sieyès)가 나폴레옹을 '자신의 검'으로 기용했다가 단숨에 집어삼켜진 것처럼, 권력의 무대를 기획한 원조 설계자들은 항상 대리인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진영의 본류를 자처하며 변방의 아웃사이더를 쉽게 다룰 수 있을것이라 착각하고 옹립한 세력이나, 파격적인 기수 타파로 권력의 집행자를 발탁해 놓고도 정작 그 칼날이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최고 권력자의 안일함 역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2인자가 대중적 폭발력을 획득하고 완벽한 1인의 주권자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수혜를 준 과거의 후견인을 도려내고 낡은 껍데기를 부숴야 한다. 은혜를 입은 자가 대리인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 그림자를 부정하는 것은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권력 독점을 기정사실화(Fait Accompli)하려는 기계적인 생존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단절의 방식이 국가적 대의와 명분과 연계하여 합리적인가? 아니면 노골적인 사적 권력욕의 발현인가? 에 따라 역사의 평가는 냉혹하게 엇갈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대리인들이 범하는 가장 어리석은 오판(하마르티아)은, 후견인을 쳐내는 데 매몰된 나머지 정작 자신을 지탱해 줄 거대한 생태계마저 잿더미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나폴레옹은 시에스를 무력화한 뒤 민법전과 중앙은행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국가의 인프라를 새롭게 주조해 냈다. 반면,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자전거의 역설에 쫓겨 오직 자신의 사법적, 정치적 생존만을 위해 헌정 질서와 생태계 전체를 땔감으로 소비하고 있다.


로버츠 경이 출연한 후버 연구소의 <언커먼널리지(Uncommon Knowledge)> 대담에서 인용했던 것처럼,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사건은 거대한 조류 위를 떠도는 표면적 물거품(Events are mere surface disturbances, crests of foam on the tides of history, 1949)"이라 했고,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역사는 위인들의 궤적(The History of the World is but the biography of great men, 1841)"이라 했다. 진정한 국가이성(Staatsräson)을 갖춘 리더는 이 거대한 조류(구조)를 냉철하게 해독하면서도 그 위에서 자신만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자다.


과거의 후견인을 도려낼 수는 있어도, 그 자리에 흔들리지 않는 새로운 시스템(Altus Solum)을 조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주권자의 결단이 아니라 자멸을 향한 '바보들의 행진(110번 글)'에 불과하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배신이라는 구조를 담담하게 인정하고 일부 예측해 가면서, 그 속에서 얄팍한 스펙터클이 아닌 공화국의 뼈대를 구축해 내는 역량. 그것이 폭풍우 치는 지정학의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문해력의 진짜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피터슨 아카데미 강의>

https://youtu.be/w6alxigIzq4?si=cIW8az0V5clrlU8N



<Uncommon Knowledge 대담>

https://youtu.be/h_jfFYBZcLo?si=52U3u5Nub862u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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