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연합훈련은 과거엔 평화를 핑계로 중단되었고, 지금은 청구서를 이유로 축소되었다.
우리의 안보가 강대국의 정치적 땔감으로 소비되는 것을 불평하는 것은 무력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미국은 우리의 미래를 대신 고민해 주지 않는다.
변해버린 제국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지켜야 한다.
어차피 치를 비용이라면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해 명분을 살려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내재화한 중견국 답게
'제도적 예측 가능성(Institutional Predictability)'을 높여야 한다.
대체 불가능한 상수(Constant)를 쥐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허락된 슈필라움(전략적 운신의 폭, Spielraum)은 갈수록 더 좁아지기만 할것이다. ▶
ALTUS SOLUM 2026.9.16.(수)
지난달 17일 한미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합훈련이 반토막으로 축소된 직후, 미국 하원 외교위 민주당 의원 21명이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는 서한(9.9)을 보냈다. "훈련 중단은 동맹을 훼손하고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을 부추긴다"는 것이 골자였다. 특히 이 서한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사전 통보조차 없이 훈련을 중단했을 뿐 아니라, 한반도의 사드(THAAD) 자산을 빼내고 이란전을 위해 핵심 탄약마저 고갈시켰다는 폭로가 명시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동맹의 복원력을 기대하지만, 이는 권력정치(Realpolitik)의 현실을 읽지 못한 감상주의다. 이미 종료된 훈련을 두고 3주나 지나 띄운 이 서한은 물론 한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가올 중간선거와 미중 정상회담을 겨냥한 미국 내 정쟁용 카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서한은 살펴볼 가치가 충분하다. '가치 동맹'이라는 환상이 걷힌 자리에, 강대국의 셈법에 따라 언제든 무기와 훈련이 뜯겨나갈 수 있는 종속 변수의 서늘한 민낯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미 연합훈련이 권력의 입맛에 따라 재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회담한 직후 일방적으로 연합훈련 중단을 선언했을 때, 당시 문재인 정부 역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명분으로 이에 호응했다. 그 결과 UFG(을지프리덤가디언)가 중단되었고, 2019년에는 키리졸브(KR)와 독수리훈련(FE)까지 연이어 폐지되었다. 대규모 야외 기동훈련은 바이든-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에야 비로소 재개되었다. 이처럼 한미 양국 정부의 정치적 성향과 선호, 그리고 암묵적 동의 하에 우리의 국가 안보는 이미 수차례 위태롭게 덜컥거렸다.
과거에는 '평화'를 이유로 안보의 스위치를 아예 껐고, 지금은 '이란전 파병 거부'라는 징벌적 이유로 그 볼륨을 줄였을 뿐이다. 명분만 다를 뿐, 우리의 방어 훈련은 결코 건드릴 수 없는 '상수(Constant)'였던 적이 없다. 워싱턴과 서울의 정치적 셈법에 따라 언제든 조절할 수 있는 '가벼운 변수(Variable)'에 불과했다는 비루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진짜 전략은 시작된다.
문제는 미국의 변덕에 분노하거나 서한의 타이밍을 두고 불평하는 데 있지 않다. 동맹이 피로 맺은 73년의 '제도'에서 철저한 기브앤테이크(Give-and-Take)의 '거래'로 변질되었다면, 우리 역시 빈틈을 메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확보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인센티브 구조의 역전(Reverse Incentive)'이다.
찰리 멍거의 통찰대로 인간과 국가는 철저히 인센티브에 따라 움직인다. 미국이 이란전에 피를 흘리지 않았다며 훈련을 축소하는 거래적 징벌을 가했다면, 우리는 도의적 섭섭함을 토로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우리를 배제했을 때 치러야 할 비용'을 청구서로 들이밀어야 한다.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노드, 우주·사이버 인프라 등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대체 불가능한 '기술적·물리적 레버리지'를 인질로 삼아야 한다. 우산을 임의로 접는 것이 곧 그들의 패권 유지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이는 자해 행위가 되도록, 철저한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에 기반한 '한국형 거래의 룰'을 재설계해야 한다.
우리가 틈새를 메우기 위해 쥐어야 할 궁극의 해법은 민주당 의원들의 서한 속에 이미 명시되어 있다. 그들은 서한에서 훈련 축소가 "한국 내 자체 핵무장 능력 추구를 대담하게 만들 것("...adversely affecting regional security and nuclear nonproliferation by emboldening the pursuit of independent nuclear capabilities in South Korea.")"이라고 경고했다. 제네바 군축회의 대표부 대사를 지낸 로버트 우드(Robert Wood) 역시 "한국이 핵무기만이 유일한 보증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We also don’t want South Korea to draw the conclusion that a nuclear weapons capability is the only guarantee it has to ensure its security.)"며 우려했다. 또한 매튜 크로닉(Matthew Kroenig) 애틀랜틱 카운슬 부회장은 미국은 한국이 보호받고 있음을 납득시키기 위해 그동안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는데, 그 메시지를 잠재적으로 근본부터 무너뜨린다(“The United States has been working really hard to try to persuade South Korea that they are protected,” Scaling back the exercises “potentially undermines that message.”)고 강조했다.
이 신경질적인 반응의 이면에는 매우 구체적인 현실이 얽혀 있다. 지난 6월, 한미 양국은 우리 군의 숙원인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 확보'를 위한 안보 합의 이행 협상의 첫발을 뗐다. 워싱턴 주류 엘리트들이 진정으로 염려하는 것은, 트럼프의 일방적 훈련 축소로 '명분'을 쥔 한국이 현재 진행 중인 이 협상의 지루한 실무 줄다리기를 엎어버리고 강경하게 판을 흔들 가능성이다. "우리가 지켜줄 테니 핵을 갖지 마라"는 심리적 마취가 풀리는 순간, 전후 80년을 지탱해 온 미국의 비확산 패권은 뿌리째 흔들린다.
독일어 '슈필라움(Spielraum)'은 타인의 간섭 없이 온전히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는 주체적 공간, 즉 '전략적 운신의 폭(Room for maneuver)'을 뜻한다. 무정부 상태의 국제정치에서 슈필라움은 동맹의 선의로 주어지지 않는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의 만기는 2035년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10년 가까이 미국의 '건별 통제'라는 족쇄를 차고 있어야 한다. 당장 100%의 핵무장이 어렵다면, 우리도 일본처럼 언제든 핵무기를 조립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 즉 '핵 잠재력(Nuclear Latency)'을 쟁취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올인해야 한다. 99%의 상수를 손에 쥐고 언제든 문지방(Threshold)을 넘을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할 때, 미국의 일방적 변덕은 멈추고 비로소 거래의 장이 열린다.
그러나 여기서 뼈아픈 자각과 통찰이 요구된다. 일각에서는 "일본도 가졌으니 우리도 달라"는 식의 감상적인 형평성을 주장하지만, 권력정치는 떼를 쓴다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일본이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아시아 유일의 '포괄적 사전 동의(Programmatic Consent)'를 따낸 것은 미국의 시혜가 아니었다. 물론 우리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IAEA의 사찰과 통제를 성실히 수용해 왔다. 기술적 투명성만 놓고 보면 일본에 뒤질 것이 없다. 결정적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적 신뢰'에 있다. 일본은 정권이 바뀌어도 미국의 글로벌 대전략과 비확산 레짐을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고 완벽히 동기화된다는 '제도적 예측 가능성(Institutional Predictability)'을 수십 년간 증명해 냈다.
반면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대북·외교 기조의 급변 탓에, 워싱턴의 눈에 여전히 '충동적으로 레버리지를 당길 수 있는 잠재적 위험 변수'로 분류되어 있다. 정부 스스로 축적한 신뢰 자본과 전략적 일관성 없이 외치는 형평성 논리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진정한 핵 잠재력은 동맹이 우리를 '통제 불가능한 이탈자'가 아닌 '대체 불가한 파트너'로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치밀한 기술적 실력과 고도의 외교적 신뢰 설계 위에서만 비로소 허락된다.
미국은 이미 거래주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나는 트럼프가 있든 없든 그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훈련이 3년 중단되든 50% 축소되든, 그 통제권을 우리가 쥐지 못하고 남의 결정에 안도하거나 분노하는 것은 종속 변수의 비참한 굴레일 뿐이다. 더욱이 이 상황은 현 정부의 사실상 수용 하에 진행되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강대국은 타국의 생존을 대신 고민할 이유가 없으며, 우리의 10년 뒤 안보는 그들의 관심사안도 아니다.
대바카라 없이 약소국의 설움을 탓할 시간이 없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는 더 이상 약소국도 아니다. 객관적 국력은 이미 중견국(Middle Power)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우리의 지정학적 사고방식만이 여전히 약소국의 굴레에 갇혀 있을 뿐이다. 입으로는 선진국이라고 자랑하면서도, 위기 앞에서는 강대국 지도자에게 모자로 환심사고, 인테리어를 칭찬하는 전근대적 멘탈리티부터 박살 내야 한다. 막대한 대미 투자나 가시적인 아첨으로 환심을 사려던 낡은 외교 프로토콜은 폐기되어야 한다. 빈틈이 생겼다면 그 공간은 피눈물 나는 외교적 읍소가 아니라, 압도적 타격 능력과 기술이라는 물리력으로 틈을 메워야 한다. 어차피 치러야 할 비용이라면 선제적으로 내어주고 상대를 빚지게 만들어야 하며, 불평할 시간에 조약의 빈틈을 파고들어 예외 조항(Appendix) 하나라도 더 협상하는 냉철한 실용주의가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다면, 적이 도발을 멈추고 동맹조차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단 하나의 '상수(Constant)'를 스스로 구축해야 한다. 그것만이 벼랑 끝에서 국가의 숨통을 틔울 유일한 슈필라움이다.
<서한 원문>
https://democrats-foreignaffairs.house.gov/press-releases?ID=4EBA40B7-F531-4D91-8DD0-74375C707B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