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으로 한 발짝
교정지 한 건을 마치고 자기 전에 짧은 기록.
그동안의 슬롯생활과 인간관계를 자꾸 돌아보게 된다.
최근 sns에 가볍게 글을 올리면서 그 일이 좀 피곤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바카라을 홍보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말이다. 어떤 게 불편하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몇 가지 구체적인 점을 나열할 수도 있지만, 그게 딱히 치명적인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중독성이 있다거나 시간을 많이 뺏는다거나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허무하다는 것이 물론 다 맞는 말이지만, 내게 가장 결정타는 숫자 문제인 것 같다.
내 지인들은 좋게 말하면 소수 정예형이고, 나쁘게 말하면 은둔 고립형이다. 다들 혼자서도 잘 지내고, 점 조직처럼 각자 알아서 지내면서 연락도 자주 안 하지만 일 년에 한 번만 연락해도 어떤 끈이 이어진 듯 느껴지는 관계다. 왜 이렇게 연락을 안 하냐고 면박을 주는 대신 네가 거기 잘 살고 있어 줘서 고맙다고, 가족과 슬롯관계 속에서 많은 역할을 하면서도 나쁜 소식 전하지 않고 지내줘서 고맙다는 이들이었다. 내 무심한 성격 탓에 그런 지인들만 내 곁에 남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유대를 느낀다. 가끔 지인들을 떠올리며 머릿속에 편지를 쓴다. 그러다 불쑥 진짜 메일이나 장문의 카톡을 보내기도 한다(그러나 내심은 안 그러려고 애를 쓴다). 아무튼 이렇게 밤하늘 구름에 가려진 희미한 별들처럼 서로 멀리 떨어진 채로 알아서 빛나고 있는지 확인만 하는 관계들이 있다. 그러니 서로 모든 걸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 내가 요즘 아는 사람(?)이 최대로 많아졌다. 신세를 지는 일도 많아졌다. 마음이 많이 쓰인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주변 사람 안 챙기고 뜸한 연락만으로도 스스로 만족하던 나로서는... 먼저 도움을 요구한 것도 계속 마음에 남고 그저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되는 것도 불편하다. 작은 친절도 고맙고 송구한데, 깊은 관심은 더욱 송구하다. 그리고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되고 마음이 쓰이는 사람 숫자가 늘자 어수선해졌다. 사실...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신경 쓰는 사람 숫자가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은 아니다. 마음만 부산할 뿐 따로 하는 것도 없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내가 그동안 참 나만 생각하고 살았구나라는 깨달음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 나 편한 방식대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왔던 것이다. 그런 유대감이 있다면 그동안 나는 지인들에게 더 정성을 쏟았어야 한다. 이심전심의 관계도 좋지만 더 자주 연락하고 더 자주 만나며 좋은 관계와 경험을 만들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지난날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 챙기려는 마음만으로도 이렇게 어수선한 게 아닌가. 갑자기 돌변하기는 어렵겠지만 앞으로는 좀 더 다정다감한 쪽으로 한 발 가보자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바람비네 집에 앵무새 사료를 보내줘야겠다.
바람비는 내 26년 지기 친구다. 오래전, 내가 첫 애를 키울 때였다. 바람비가 모처럼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얼굴 보기가 더 힘들었으니 오랜만의 만남이었을 것이다. 첫 경험에 엄벙덤벙하는 초보 엄마를 위해 내 편의를 봐줘서 집까지 와주었던 것. 아이가 낮잠 잘 시간이 되었다. 나는 거실에 친구를 덩그러니 놓고 애를 재우러 들어갔다. 방에서 들으니 거실에서 아이 장난감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재우고 나와서 나는 친구를 나무랐다. 애 재우는데 소리 다 들렸다고. 조용히 있어야지 했다. 바람비는 내게 그러냐, 미안하다 했다. 이 자식...! 한참을 혼자 둔 것이 미안해서 내가 부러 그러는 줄 알고, 지도 이러는 거다. 설거지도 해주고 아기 옷도 접어주고. 결혼도 안 해본 애가 어떻게 그랬나 모르겠다.
바람비는 요즘 알에서부터 부화시킨 앵무새 두 마리를 자식 같이 키우고 있다. 보고 또 봐도 이쁘다고 앵무새가 성조로 성장해 가는 사진을 내게 보내오곤 했다. 나는 조류에 신비함을 느끼지, 애정은 느끼지 못하는 부류다. 그러니 반응도 시큰둥했다. 새 사진 자꾸 보내지 말라고 했다. 특히 어릴 때 털 없는 사진은 보고 싶지 않다고. 신나게 앵무새 사랑을 성토하던 바람비는 나를 배려해 요새는 새 사진을 뜸하게 보낸다. 자기는 좋아 죽으면서도 나는 '그냥 새'로 볼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해 준다. 그런 녀석의 배려가 너무 고마운데... 나는 마음만 고맙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라도 앵무새 사료로 커버가 될까.
"이제는 깃털색이 너무 예뻐져서 사진 보내도 된다. 하루 한 장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