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특별한 날, 왜 우리는 와인을 여는가

시간을 기억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

by행운의 여신


며칠 전에는 추석이었습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인데도
추석이 가까워지면
마음 한쪽이 조금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어릴 적 함께 명절을 준비하던 시간들이 떠오르고,
오래된 골목길이 생각나고,
한참 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의 얼굴이
문득 떠오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부모님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랜만에 친구들이 둘러앉는 식탁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이제는 다시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을
조용히 생각하는 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명절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추석과 설날이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의미는
여전히 깊은 것 같습니다.

추석(秋夕).

가을 저녁이라는 뜻을 가진 이 이름처럼
예부터 추석은
가을의 밝은 달을 바라보며
함께 소원을 빌고
시간을 나누던 날이었습니다.

매년 같은 추석이 돌아오지만
우리는 그날이 오면
지난 시간을 떠올립니다.

어릴 적의 고향을 생각하고,
오래된 친구를 생각하고,
그때의 가족을 생각합니다.

아마도 사람의 마음에는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웃음이 있고,
영상으로 담아두지 못한 눈빛이 있고,
그때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따뜻한 마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때의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참 소중한 날이었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특별한 날이면
무언가를 열어놓고 싶어 집니다.

선물의 포장을 풀기도 하고,
오래 아껴두었던 음식을 꺼내기도 하고,
예쁜 촛불을 켜기도 하지요.

그리고 어떤 날에는 와인 한 병을 꺼냅니다.

생일에,
결혼기념일에,
오랫동안 기다렸던 소식을 들은 날에,
오랜 친구가 찾아온 저녁에도.

때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평범한 하루 끝에
와인을 열기도 합니다.

병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코르크를 엽니다.

잔을 하나씩 내려놓고,
투명한 유리잔 안으로 흘러가는
붉은 와인을 바라봅니다.

그 순간만큼은
조금 전까지 바쁘게 흘러가던 시간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집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식탁인데도
와인 한 병이 놓이면
이상하게 조금 특별해지는 것 같습니다.

익숙한 음식의 냄새가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지고,
늘 보던 사람의 얼굴도
오늘따라 조금 더 반짝여 보입니다.

어쩌면 와인은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있던 행복을 꺼내어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순간은 기억해 두자.
오늘의 이 마음을 잊지 말자.

그래서 와인은
평범했던 하루를
특별한 날로 만들어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헛헛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집으로 돌아와
작은 잔 하나를 꺼내고
와인을 천천히 따릅니다.

오늘도 잘 살아냈다는 작은 위로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구나.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시간을 지나고 있구나.

나에게는 시간이 있고,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돌아볼 추억이 있고,
아직 마주할 내일이 있구나.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한 날이라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말해봅니다.

웃었던 순간도,
조금 서운했던 순간도,
보고 싶었던 사람도,
고마웠던 사람도.
그 모든 마음을 잠시 잔 안에 담아봅니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는 것처럼
가볍게 잔을 들어 유리잔을 살짝 부딪혀 봅니다.

맑고 작은 소리가
고요한 그곳에 퍼져갑니다.

특별한 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

그저,
오늘 이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다시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억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한 잔의 와인이
그날의 빛과,
그 사람의 얼굴과,
그때의 마음을
조금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게 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꼭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좋겠습니다.

그저 무사히 하루를 살아낸 날,
마음이 가는 날,
소중한 사람과 마주 앉은 날,
혹은 혼자 조용히
나를 돌보고 싶은 날.
와인 한 병을 열어도 좋겠습니다.

천천히 코르크를 열고,
잔에 붉은빛을 담고,
잠시 그 시간을 바라보세요.

언젠가 또 시간이 흘러
그날의 와인을 다시 만나게 되는 날,

아마 우리는
와인의 맛보다 먼저
그날의 시간을 떠올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때의 사람을,
그때의 웃음을,
그때의 나를.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도 참 좋았다고.
그날의 내가 참 고마웠다고.


그리고
그 장면을 다시 꺼내 보는 날,
눈물보다 먼저
따뜻한 미소가 떠오르기를.

당신의 시간 속에도
오래도록 빛나는 한 장면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 읽기 전에 잠깐!
와인과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초보자분들을 위해 준비한 가벼운 참고 자료입니다. 편하게 즐겨주세요!





와인의 마개, 코르크 이야기



와인병을 열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바로 코르크입니다


처음 와인을 접하면
코르크는 다 똑같은 것 아닌가? 싶지만

알고 보면 종류와 역할이 조금씩 다릅니다


천연 코르크는
참나무의 껍질에서 얻은 천연 소재로 만들어집니다


탄성이 있어 병 입구를 잘 막아주면서도
아주 조금씩 산소가 통과할 수 있어
와인의 숙성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합성 코르크는
코르크와 비슷한 형태로 만든 인공 마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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