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을 안다는 것은, 결국 나를 이해하는 일이다
프롤로그에서 마음의 일기예보를 켜며 시작된 이 기나긴 여정을 마침내 마무리하게 되었다.
관계의 날 선 온도를 견디고, 온라인 게임이라는 삭막한 기류를 지나, 감정의 습도를 조절하며 우리는 인생의 사계절을 묵묵히 통과해 왔다. 이 긴 시간 동안 우리가 추적해 온 것은, 내일 주식이 오를지 혹은 언제쯤 벼락부자가 될지 묻는 얄팍한 요행이 아니었다.
우리는 인문학이라는 이성의 서치라이트와 명리학이라는 수천 년 된 무의식의 나침반을 들고, '인간'이라는 가장 미치도록 복잡하고 아름다운 미로 속을 탐험했다.
사주팔자, 음양오행, 십성, 대운과 세운. 세간에서는 이 오래된 기호들을 미래를 점치는 주술의 도구로 소비한다. 그러나 인문학의 서늘한 수술대 위에 이 기호들을 올려놓고 해부해 보았을 때, 우리는 몹시 경이로운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명리학은 신(神)의 영역을 훔쳐보는 밀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핏줄을 타고 흐르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 결핍, 두려움, 그리고 생존을 향한 맹렬한 의지를 가장 체계적이고 물리학적인 언어로 기록해 둔 '인간 영혼의 해부학 사전'이었다.
동양 철학에서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라 부르는 것은 단순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대우주의 태양이 뜨고 지며 폭우가 쏟아지고 땅이 얼어붙듯, 인간의 내면에서도 명확한 중력과 인력, 계절의 변화가 일어난다. 운명(運命)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쪼개어 보라. 목숨 명(命)에, 움직일 운(運)이다.
즉, 운명이란 하늘에서 일방적으로 뚝 떨어져 나를 짓누르는 거대한 바위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생명(命)의 에너지를 내가 딛고 선 시공간 속에서 어떻게 굴려 나갈 것인지(運)를 결정하는 역동적인 궤적이다.
우리가 운을 읽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미래를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통제할 수 없음을 서늘하게 인정하고, 그 거대한 우주의 파도 위에서 내게 주어진 고유한 서핑 보드(사주)의 재질과 모양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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