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23장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며,

by김도경 dkkim

1. 중용 23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진다.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문은 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爲能化입니다. 예전에 힘들때 이 구절을 한동안 바카라상 앞에 붙여 두고 일했었습니다.


2. 처음 읽었을 때는 '정성'이라는 말이 좀 막연하게 느껴졌는데요. 몇 번 읽다 보니 순서가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정성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드러나고, 그다음에 사람이 움직입니다. 이 순서는 바꿀 수가 없더라구요. 드러나는 것부터 챙기고 싶은 마음이 늘 있는데, 그러면 겉만 있고 안이 비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제안서를 멋지게 만드는 데 시간을 쓰고 정작 그 병원이 지금 뭐가 불편한지는 대충 넘긴 적이 많았습니다.


3. 영업을 하다 보면 작은 일이 참 많습니다. 미팅 끝나고 감사 문자 한 통 보내는 것, 원장님이 지나가듯 하신 말을 적어 뒀다가 다음에 먼저 꺼내는 것 같은 일들인데요. 하나하나가 바로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쌓이면 상대가 먼저 알아보시더라구요. "이 사람은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말을 큰 제안을 잘해서 들은 기억은 별로 없고, 작은 일을 몇 달 거르지 않았을 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중용에서 말하는 '겉에 배어 나온다'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4. 같이 붙여 둔 구절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맹자 고자장입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은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느니라. 그 이유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그 어떤 사명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 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行, 拂亂其所爲, 是故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5. 솔직히 이 구절은 힘들 때 읽으면 위로가 되는데, 일이 잘 풀릴 때 읽으면 좀 오그라들기는 합니다. 하는 일마다 어지럽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는데요. 그때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고, 지나고 나서야 그 시기에 생긴 참을성으로 지금 일을 버티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일이 꼬일 때 "지금 참을성을 기르는 중이구나" 하고 한 번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그렇다고 바로 괜찮아지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사람이나 상황을 탓하는 시간은 좀 줄어들었습니다.


6. 두 구절을 나란히 두고 보면 결국 같은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어지러운 시기를 지나는 방법도 결국 눈앞의 작은 일 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것밖에 없더라구요. 큰 그림을 그리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건 작은 일이 쌓인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작은 일 몇 개를 거르지 않고 끝내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거의 전부인 것 같고, 요즘은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다들 바카라상 앞에 붙여 둔 문장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댓글로 알려 주세요. 저도 알고 싶습니다 :)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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