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인수인계 잘하는 법

넘겨받아 보고 넘겨줘 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입니다

by김도경 dkkim

저는 인수인계가 두꺼운 문서를 넘기는 일인 줄 알았어요. 6분 만에 끝난 인계를 받아 보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저처럼 막막하셨던 분이 있을까 봐 적어 둡니다.


전 온라인 게임에서 다른 분이 맡던 교육 과정 일을 제가 넘겨받던 날, 저는 기록 도구를 켜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쭉 말씀해 주시면 이 도구가 알아서 정리해 줄 테니 제가 해야 하는 것만 말씀해 주시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인수인계가 기록을 보니 6분 만에 끝났더라고요.


인수인계라고 하면 두꺼운 문서부터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그날 6분이 제가 받아 본 인계 중에 꽤 쓸 만한 편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넘겨받는 쪽도 넘겨주는 쪽도 다 해 봤거든요.


6분짜리 인계가 쓸 만했던 이유


그날 넘겨받은 일은 적지 않았습니다. 당장 그날 잡혀 있던 시작 회의에 들어가기, 수강생 등록 요청하기, 온라인 강의 세팅하기, 소개 페이지 고치기. 여기에 다음 달에 시작하는 과정 세 개의 개강 준비와 강사·실습 코치 섭외까지 있었습니다. 양만 보면 6분에 다 못 넘길 일입니다.


그런데 기록을 다시 보면 끝부분에서 제가 크게 보면 세 가지라고 말하다가, 아니 네 가지라고 고치고 있더라고요. 넘겨주는 분이 말한 걸 제 입으로 다시 세어 보다가 하나 빠뜨린 걸 그 자리에서 알아챈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그날 제일 잘한 일이었어요. 받는 사람이 자기 말로 다시 말해 보면 빠진 게 그 자리에서 보이더라고요. 적는 건 도구가 해 주니 저는 듣고 되묻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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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도움이 된 건 왜 바꿨는지였어요


그보다 한 달쯤 전에도 새 과정 하나를 넘겨받았습니다. 먼저 운영해 본 분이 이것저것 알려 주셨는데, 나중까지 쓸모 있었던 건 순서표가 아니었습니다. 지난번엔 이렇게 했는데 이래서 바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 기수에서는 온라인 강의를 날짜별 필수로 정해 뒀는데, 중간에 프로젝트 팀과 멘토 배치가 바뀌는 일이 생겨서 이번엔 필수 대신 권장으로 두자고 하셨습니다. 사람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함께 일할 아르바이트 분과 날을 잡고 한 번 면담해 보라고, 일이 없는 시간에도 연락은 계속 확인해야 한다고요. 지난번에 그분이 못 나와서 급하게 전화를 돌린 적이 있었대요. 이런 건 어느 문서에도 없습니다. 순서는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는 해 본 사람 머릿속에만 있더라고요. 그게 없으면 저는 똑같은 실수를 한 번 더 하고 나서야 알게 되고요.


못 한 건 못 했다고 넘기는 게 낫더라고요


그 6분짜리 인계에서 넘겨주는 분은 틀만 짜 놓고 내용을 못 넣었다고 했어요. 소개 페이지에 새 구역을 넣는 일이었는데 뼈대만 만들었다는 거였죠. 실습 코치도 물어보니 지금 남는 사람이 없다고 했고요. 듣는 순간엔 좀 막막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해 주니 할 일이 분명해지더라고요. 틀은 있으니 내용만 채우면 되고, 코치는 처음부터 새로 찾아야 하는 거니까요. 만약 거의 다 됐다고 넘겨받았으면 저는 한참 뒤에야 비어 있는 걸 발견했을 겁니다.


반대로 제가 넘겨줄 때도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운영 일을 다른 분께 넘기면서, 강사가 바뀌는 바람에 등록 절차가 아직 안 끝났다는 걸 따로 적어서 같이 넘겼습니다. 끝난 일보다 아직 안 끝난 일을 먼저 말해 주는 게 받는 사람에게는 더 급한 정보더라고요.


인계를 하나도 못 받고 시작한 적도 있어요


제가 맡았던 과정 중에는 인계를 하나도 못 받고 시작한 것도 있었습니다. 맡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넘어왔는데 따로 넘겨받은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강생들에게 나가는 공지를 제가 거의 다 직접 썼습니다. 쓰다 보니 공지가 곧 기록이 되더라고요. 언제 뭘 안내했고 어떤 순서로 진행됐는지가 전부 공지에 남아 있으니까요. 나중에 그 과정을 다른 분께 넘길 때는 공지 흐름만 따라가시면 인계 내용이 다 이해되게 해 뒀다고 말할 수 있었어요. 인계를 못 받아 본 사람이 오히려 인계를 제대로 남기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막막함을 아니까요.


일을 넘겨줄 때 남긴 것들


다른 부서로 일을 넘기면서 새로 오신 분의 첫 적응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두 가지를 남겼습니다. 첫째는 제가 모아 둔 계정과 업무 링크 전부였습니다. 그분 개인 노트에 통째로 복사해 드리고, 앞으로 하는 일도 거기에 적어 달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제가 혼자 만들어 쓰던 업무 정리 문서였습니다. 과정 운영 일을 아무도 정리해 두지 않아서, 개강 전부터 개강 후까지 할 일을 순서대로 적어 둔 문서였어요. 정리해 두고 나니 다른 분들도 쓰고 있더라고요.


문서만 넘기고 끝내지는 않았습니다. 한 주 동안은 그분이 막히는 곳마다 옆에서 같이 열어 봤습니다. 문서는 혼자서도 읽을 수 있지만, 어디서 막히는지는 옆에서 봐야 보이더라고요.


제가 요즘 하는 방법


1. 넘겨받을 땐 기록 도구를 켜 두고, 저는 듣고 되묻는 데만 집중합니다.

2. 인계가 끝나기 전에 받은 일을 제 입으로 다시 세어 봅니다. 그럼 크게 몇 가지네요, 하고요.

3. 순서보다 지난번엔 왜 이렇게 바꿨는지를 꼭 물어봅니다.

4. 넘겨줄 땐 끝난 일보다 안 끝난 일과 못 한 일을 먼저 적습니다.

5. 계정과 링크와 공지처럼 흩어진 건 한곳에 모아서 통째로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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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인수인계는 다음 사람이 첫날 바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두꺼운 문서보다 안 끝난 일 하나, 바꾼 이유 하나가 더 쓸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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