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다시 눈이 떠졌다.
새벽 1시 22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아버지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서 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한 날. 바로 옆방에서 어머니와 주무시고 계셨다.
아버지의 눈물을 본 기억이 없는데, 그날 저녁은 어머니, 장성한 손자들, 우리 부부가 빙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손자들이 눈에 밟힌다며,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전 가족이 각자의 공간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모두 울었다.
다음 날 새벽. 호흡을 할 수 없어,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나 앉았다.
깜깜한 공간 속에서 태풍처럼 몰아치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나 홀로 한참을 가쁜 숨을 헐떡였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서, 고난의 세월을 꾸역꾸역 살아내고, 한순간 한 번의 죽음으로 홀연히 세상을 떠나는 게 인생이라며, 고난의 세상살이 탈출구로 동경하던 죽음이,
아버지가 죽음의 문턱에 서자, 커다란 공포가 되어 깜깜한 공간을 빌미 삼아 나를 덮치며 숨을 옥죈다.
아버지 나이대 어르신의 장례식장에 문상을 가면, 사람들의 흔한 인사말인 "그래도 오래 사셨으니, 호상이네요"를 읊조리던 나의 과거가 부끄러워진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선 공포를 느끼고,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은 욕망이 꺼지지 않는데, 그 앞에서 감히 그 누가 '호상'을 언급할 수 있을까?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다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암덩어리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물웅덩이처럼 흔들리며 떠올라, 가슴이 턱 막힌다.
이제 곧 세상을 뜨시고 나면, 어머니는 어떠한 심정일까? 세월이 흘러 내가 죽음 앞에 서면 어떠한 감정에 휩싸일까? 남은 아내는 얼마나 힘들어할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생각들에 호흡이 가빠지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호스피스 병동에 아버지가 입원하신 날. 병실의 창밖에 이름 모르는 나무의 잎새들이 무성히 늘어져 있었다.
"저 나무의 잎새가 다 질 때까지는 살아 계셔야죠" 동생의 웃음 섞인 문장 뒤에 "그래" 힘없이 수그러드는 아버지의 대답이 가슴에 박혔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편안한 마지막을 보내시기를 염원하며, 엷은 미소를 띠고 바라보던 나의 얼굴이 울컥 솟는 가슴속 불덩어리에 살짝 일그러졌다.
투둑투둑 빗소리에,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주치의의 음성이 오버랩되며, 아버지의 힘든 얼굴이 비에 젖은 나뭇잎 사이로 문득 스러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