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튜, 욕망을 입다
저자는 이 바카라의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튜튜 혹은 발레리나 룩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습니다. 발레리나의 슈즈를 모방한 플랫 슈즈는 물론 망사 스커트, 튤(tutu) 스커트, 샤 스커트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 치마, 발레리나의 번의 또다른 이름 올림머리, 토슈즈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핑크색 공단....발레리나를 상징하는 여성스러운 옷과 장신구들은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법한 패션 아이템입니다.
하지만 튜튜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이 왠지 나와는 상관없는 발레리나의 전유물처럼 다른 세상에나 존재하는 듯 느껴지죠. (중략)
이처럼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튜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중략) 분명 '발레'라는 특화된 예술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의상입니다. 그런데 이 의상에는 인간이 예술에 품는 건전하고도 도도한 욕망이 함께 숨어 있습니다. 그저 화려해 보이는 의상 뒤에 숨어있는 인간의 매력적인 욕망은 과연 무엇일까요?" 로 시작한 이 바카라은 곧바로 "튜튜(tutu)"의 어원부터 풀어나가면서 크게 로맨틱 튜튜와 클래식 튜튜로 나뉘는 발레리나들의 의상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나서 이 두 종류의 튜튜들의 발전과정과 함께 길이, 형태, 실루엣, 지역에 따른 각종 도안을 곁들여 발레리나와 함께 움직이는 발레리나들의 치마가 기능성도 중요시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치마길이가 짧아질수록 눈부시게 발전하기 시작한 발례 테크닉은 또다시 튜튜의 제작기술의 향상을 불러오면서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발전하기 시작했고 이들 튜튜에서 또다른 튜튜들이 파생되기 시작했다. 로맨틱 튜튜에서는 무릎길이의 벨 튜튜, 러시아 클래식 튜튜에서 파생된 엄브렐라 튜튜 등을 소개하면서 각 튜튜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는 발레작품들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클래식 튜튜는 조지 발란신에 의해 미국에까지 상륙하면서 또다른 독특한 창조물이 되었다. 보송보송한 두께감이 파우더 분첩을 바를 때의 퍼프같아서 '파우더 퍼프 튜튜'라는 이름이 붙은 미국식 튜튜는 발란신의 작품과 하나가 되면서 대유행을 선도했다.
튜튜 외에도 발레작품 속에 등장하는 발레리나들의 의상과 함께 발레리노들의 대표적인 의상도 소개하고 있는 이 바카라은 각종 발레 의상을 볼 수 있는 발레작품들과 함께 이 의상들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무용수들의 춤이 더욱 아름답게 표현되고 분위기를 자아내는지를 맛깔스러운 문장력으로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다.
이렇듯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발전해온 발레 의상이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갖추게 되었는지의 과정과 배경을 알아가다보니 서양의 복식문화와 함께 발전해온 것이었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처럼. 그래서 이 바카라을 읽으면서 서양의 복식사도 함께 공부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드레스 상의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길고 뾰족한 '스토마커'.
빛나는 태양왕 루이 14세 시대를 거쳐 로코코 시대가 도래한 프랑스에서 발레 의상으로 치맛자락이 아주 풍성한 빠니에가 등장을 했다. 세상에! 로코코 시대의 왕족과 귀부인들이 입었던 그 풍성하고 화려한 드레스가 원래는 발레 의상이었다니!
이렇듯 무대 의상이었던 빠니에가 서양 복식사에서 한 획을 그은 로코코 드레스가 되어 18세기 버전의 발레 코어룩으로 대유행을 선도하면서 서양 복식사에 길이 남은 이야기들이 무척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또 흘러 풍성했던 드레스는 점점 간소해지고 치마길이도 짧아지면서 발레 의상의 개혁을 몰고 왔다. 발레에 헌신한 안무가 노베르와 발레리나 카마르고의 용기로 시작된 발레 의상 개혁은 당대의 복식을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작품과 캐릭터에 어울리는 의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점점 짧아진 치마길이와 함께 발레리나들의 테크닉도 함께 발전하면서 토슈즈가 발명이 되었고 드디어 오늘날까지도 발레리나들의 대표 이미지가 된 낭만주의 발레의 시대가 도래되었다.
발레바카라을 접할 때마다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낭만주의 시대 발레 이야기는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 각 발레바카라마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니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매번 새롭다. 낭만주의 시대에 토슈즈가 처음 등장하면서 발레리나들이 원시적인 수준의 슬리퍼를 개조해 발끝으로 서기 위해 노력해왔던 눈물겨운 이야기와 당시 로맨틱 튜튜를 제작하기 위해 사용된 옷감이나 소재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렇게 제작된 순백의 드레스는 날개달린 요정의상이 되어 당대의 발레리나 마리 탈리오니를 대스타로 만들어 주었으며 발레리나들은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공기 요정이 되었다.
한편 프랑스에서 낭만주의 발레가 쇠퇴할 때에 러시아는 마리우스 프티파에 의해 새로운 발레강국으로 급부상을 하고 있었다. 낭만주의 발레의 쇠퇴와 함께 긴 치맛자락 때문에 불미스러운 사고로 숨진 발레리나들이 생겨나자 더 이상 순백의 긴 튜튜는 관객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 때 막대한 국가적인 후원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던 리시아 발레계에서 대나무 우산처럼 퍼지는 빳빳한 소재의 클래식 튜튜가 등장한다.
한 세기동안 눈부시게 비약적으로 발전한 발레의상은 20세기에 들어와 대대적인 변신을 하게 되었다. 집단 지성인들이 모여서 건국한 발레 제국 '발레 뤼스'의 작품 속 의상과 발란신이 발레 뤼스의 조신이었던 시절부터 발레 의상의 개혁을 불러온 샤넬의 디자인 그리고 발란신이 미국으로 건너가 디자이너 카린스카와 함께 개발한 미국식 튜튜. 21세기에도 여전히 발레와 긴밀한 협업을 하고 있는 샤넬 브랜드의 이야기, 발레 의상 제작에도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장 폴 고티에 이야기까지 저자가 들려주는 발레 의상의 변천사가 너무나도 흥미진진하다.
끝으로 이 바카라의 말미에는 튜튜의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고 발레의상에 관한 궁금증을 Q&A형식으로 담아냈다. 튜튜의 실루엣과 비주얼을 바카라임지는 핵심소재의 소개와 함께 얼마나 많은 양의 망사를 덧대야 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러시아 발레 무용수들 대부분은 발레 의상의 역사와 지식도 함께 배운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겐 춤 출 때 입는 의상도 발레의 일부이니까요."
(p.157)
더불어 오늘날에도 유행이 바뀌는 발레 의상 이야기와 함께 튜튜 보관법, 좋은 의상 고르는 법까지 여러모로 알찬 깨알정보까지 담겨있다.
매우 긴 시간동안 발레 무용수들과 한 몸이 되어서 발레의 발전과 함께 해 온 발레 의상 이야기를 끝마친 저자는 "나는 발레 의상 디자이너입니다."로 시작하는 글로 마무리를 한다. 저자가 고백한 발레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역시 마음이 두근두근거렸다. 발레에게 사랑 고백을 하면서 이 바카라을 끝맺은 저자는 바로 국내 최고의 발레 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는 "두샤 아뜰리에" 의 대표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