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볕 아래서

서둘러 이마누엘 칸트가 되어 누리는 호사.

by최만섭


가을 햇볕 아래서


전형적인 가을 날씨.

충분히 무르익은 가을 햇볕이

어제 잘못 든 잠으로 굳어버린 어깨를

조용한 바람을 빌려 다독인다.


따뜻한 물로 목욕 재배한 햇볕은

내 가슴 깊숙이 스며들어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작은 설렘 하나가 된다.


나는 커피숍으로 달려가

라지 사이즈의 까페라떼를 손에 쥐었다.


서둘러 임마누엘 칸트가 되어 누리는 호사.

그가 시계추처럼 정확한 시간에 산바카라하던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과 지금 내가 걷는

서울의 길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주 천천히 발길을 옮기며 느낀다.

목적지가 저만치 다가왔음을.

지난 세월 묵묵히 한 우물을 판 장인이

종착역을 예감하는 순간

비로소 선명해지는 생의 무게와 눈부심.


무심하게 가로수 하나를 바라보아도,

살아 숨 쉬며 두 발로 걷는 이 순간에는

서서히 감격의 눈물이 차오른다.

고적함과 적당한 온기의 일상,

문명이 원시의 숨결과 마주하는 이 길이 참으로 편안하다.


따스한 카페라테를 든 철학자를 축복하듯

온 세상의 가을 햇볕과 바람이 머무는 곳

나는 오늘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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