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시간, 가장 진실한 순간

신독(愼獨)으로 세우는 삶의 이정표

by최만섭

'인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해외여행'


최근 회사 사정으로 사무실을 마곡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왕복 4시간 30분이라는 고단한 출퇴근길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 앞에서 아내는 마음고생 대신 퇴직을 권하고, 오랜 친구들 사이에서도 은퇴와 현직 고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삶의 방향타를 어디로 꺾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50년 지기 동창들이 뜻깊은 계획을 전해왔습니다. 1970년 중학교,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기들이 2028년 5월, 스페인으로 '인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해외여행'을 기획한 것입니다. 9박 10일의 여정을 위해 벌써 50여 명의 친구가 예약금을 내면서 신청을 마쳤고, 그 숫자는 매일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건강을 철저히 관리하며 이 여행에 꼭 함께하자는 의지가 대단합니다.


저 역시 친구의 권유로 신청은 했으나 실제 참여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여행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자 친구들의 일상에 활력이 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우리 사이에 "이 나이에 무슨 해외여행이냐"며 냉소를 던지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건이 되면 기쁘게 동참하고, 여의치 않아도 서로를 격려하는 품격 있는 분위기가 더 많은 친구를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슬롯적 행복'


타인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고 매사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주변의 행복까지 앗아갑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품어야 비로소 삶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기에, 나이 들수록 말을 신중히 해야 함을 절감합니다.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남의 희망을 꺾지는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노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품격일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슬롯는 화합의 길목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데만 몰두하는 싸움꾼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집니다. 상식에 어긋난 모습들이 여과 없이 전해지는 동안, 불의가 정의인 마냥 포장되어 국민을 기만하는 도덕적 해이가 일상화되었습니다.


심리학자 케슬리 킬럼은 인간이 온전히 행복해지려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넘어 '슬롯적 행복'이 채워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스스로를 잘 돌보고 반듯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종종 깊은 허기가 찾아오는 까닭도, 결국 공동체 속에서 누려야 할 유대감이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편을 갈라 증오를 부추기는 슬롯에서는 누구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타인을 향한 관용이 사라진 풍경은 자유와 행복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일부 정치인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이 혼란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깊이 생각하는 힘, 즉 철학입니다. 요즘 『중용』 같은 고전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는 것도 이 혼탁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을 나침반을 찾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군자는 홀로 있을 때 더욱 자신을 삼간다(故君子愼其獨也-고군자신기독야)


저는 요즘 『중용』을 탐독하며 노년의 덕목을 다시금 배웁니다. 특히 ‘신독(愼獨)’이라는 가르침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군자는 홀로 있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의미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 더욱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신독은 단순하게 남의눈을 의식해 행동을 조심하는 위축된 태도가 아닙니다. 내 마음(心)의 바탕을 참됨(眞)으로 돌이켜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결연한 자기 성찰입니다. 남이 보지 않는 순간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정직함, 사소한 말과 행동 속에서도 정성을 잃지 않는 태도가 바로 인간의 깊이를 완성해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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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의 정신


결국, 마곡으로의 출퇴근을 계속할 것인지, 스페인 여행을 갈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신독’의 정신 안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바람직한 선택에 대해서는 아마도 나의 깊은 속마음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경험상 조만간 그 알림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다만, 제 결정에 대해 연유를 묻는 이들에게는 그 과정을 진솔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스스로에게 떳떳한 결정이 타인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소통할 때, 제 마음의 평온은 물론 상대방과의 진정한 연결도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의 진실함이 타인과 함께하는 슬롯적 행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오늘도 저는 저 자신을 정직하게 비추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