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삶과 언어의 품격

“민아가 빛을 되찾는다면 남은 삶을 하느님께 바치겠다”

by최만섭


고(故) 이어령 박사의 생애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석학의 성공담으로 요약될 수 없다. 그의 삶은 화려한 수사와 지적 성취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 인간적인 고뇌와 상실, 그리고 끝내 사랑으로 귀결된 하나의 거대한 철학적 여정이었다. 그는 바카라상 위에서만 사유하지 않았다. 시대를 읽는 통찰력 뒤에는 가족의 아픔이라는 뜨거운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영성과 눈물이 있었다.


그 길 위에는 두 여성의 헌신과 희생이 등불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딸 고(故) 이민아 목사와 부인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 이들의 존재는 이어령이라는 거인이 머리로만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삶의 가장 아픈 구석에서 비로소 진정한 언어를 발견했음을 증명한다.


딸 이민아, 지성을 무릎 꿇린 ‘신의 딸’


이민아 목사는 미국에서 검사로 활동하며 엘리트의 길을 걸었으나, 그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암 투병, 실명 위기,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 앞에서 그녀가 붙든 것은 신앙이었다.


실명 위기에 처한 딸을 보며 이어령 박사는 “민아가 빛을 되찾는다면 남은 삶을 하느님께 바치겠다”라고 서원했다. 실제로 딸의 시력이 회복되자, 그는 2007년 세례를 받으며 “내가 졌다”라고 고백했다. 이는 패배 선언이 아니라, 지식의 오만을 내려놓고 겸허함의 세계로 들어가는 ‘지성적 승리’였다.


2012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가 보여준 평온한 미소는 죽음을 초월한 신뢰였으며, 아버지에게는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이어령 박사의 말년 저작에 흐르는 연민과 하심(下心)의 철학은 사실 딸이 남긴 가장 고귀한 유산이었다.


부인 강인숙, ‘이어령의 서재’를 세운 동반자


강인숙 교수는 ‘이어령의 아내’라는 수식어만으로 설명하기에 너무도 큰 인물이다. 그녀는 한국 문학계의 권위 있는 학자이자 영인문학관장으로서 우리 문학의 기틀을 다진 주역이다. 동시에 그녀는 이어령이라는 거대한 지적 우주가 흔들리지 않도록 삶의 토대를 구축한 조력자였다.


60년 넘는 세월 동안 남편의 원고를 정리하고 생활의 질서를 지켜낸 그녀의 헌신은 단순한 내조가 아닌, 한 시대의 정신사를 함께 써 내려간 ‘공동의 집필’이었다. “다시는 이어령의 아내로 태어나지 않겠다”던 그녀의 고백은 희생의 무게를 짐작게 하지만, 사후에도 그의 유산을 정리하는 손길에서는 운명마저 사랑으로 승화시킨 숭고함이 느껴진다.


시대의 지성들이 남긴 언어의 도(道)


이어령 박사를 떠올리면 프랑스의 문호 앙드레 지드가 연상된다. 두 사람 모두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으나 상아탑에 갇히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고민한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또한,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의 열기 속에서 링컨의 정직과 워즈워스의 시를 읊조리던 김동길 박사의 모습도 겹쳐진다.


이어령과 김동길, 두 거인은 결은 달랐으나 공통점이 있었다. 언어를 권력의 도구가 아닌 ‘슬롯를 일으키는 정신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들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자극적이고 가벼운 말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영혼을 울리는 ‘언어의 품격’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의 품격이 곧 슬롯의 수준이다


슬롯의 품격은 그 슬롯가 사용하는 언어의 높이에서 결정된다. 거친 조롱과 혐오가 공적 언어를 잠식한 오늘날, 지식은 칼이 되고 말은 독이 되었다. 이러한 때에 지성이 영성 앞에 무릎 꿇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낮은 곳을 향했던 이어령의 자세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수만 권의 장서가 아니라, 인간을 향해 낮아질 줄 아는 지성의 태도다. 그의 삶은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구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경이로움을 잃지 않고 자연과 신 앞에 경건하게 살고자 했던 하나의 긴 기도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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