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말 2아웃 노인은 여전히 경기중

by문이



노인은 바다 한가운데서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중에도 메이저리그 경기 결과를 궁금해한다. 지금 물고기를 놓치느냐 잡느냐가 문제인데 야구가 궁금하다니.

노인은 뉴욕 양키스와 조 디마지오를 좋아한다. 디마지오는 몸의 고통을 견디며 경기에 나섰던 선수였고, 노인은 자신이 힘들 때마다 그를 떠올린다. 손이 낚싯줄에 베이고 쥐가 나고 등이 아파도 버틴다. 디마지오가 아픈 몸으로 경기에 임했던 것처럼 자신도 어부로서 자기 몫을 해내려 한다.

그래서인지 산티아고가 노장 야구 투수처럼 보였다.

젊은 투수는 힘으로 공을 던질 수 있다. 강속구를 꽂아 넣으며 타자를 윽박지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몸이 예전 같지 않다. 공의 속도도 떨어지고 체력도 줄어든다. 대신 그 자리에는 오랜 경험이 들어선다.

노장 투수는 완급을 조절한다. 언제 승부하고 언제 피해야 하는지도 안다. 자신의 공을 과신하지 않고 상대 타자도 얕보지 않는다. 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으니 상대를 더 오래 보고, 더 많이 생각한다.

산티아고가 물고기를 상대하는 모습이 그랬다.

그는 거대한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물었다고 무작정 줄을 잡아당기지 않는다. 줄의 팽팽함을 느끼고, 물고기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살피고, 얼마나 지쳤는지를 짐작한다. 당겨야 할 때와 풀어주어야 할 때를 안다. 아니, 안다고 믿기보다는 계속 살핀다.

노인은 바다를 오래 경험했지만 바다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고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놈에게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는 끊임없이 상대를 생각한다.

오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내가 해봐서 알아’라는 말이다. 그런데 산티아고에게는 그 말이 없다. 수십 년 동안 바다에 나갔으면서도 오늘의 바다를 어제의 바다와 같다고 여기지 않는다. 처음 만난 물고기 앞에서는 다시 초보자처럼 관찰한다.

상대를 얕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물고기가 강할수록 존경한다.

“그렇다면 나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그놈한테 보여 주고 싶군.”

삼국지의 조조와 관우가 떠올랐다. 적이지만 상대의 기개와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들.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도 좋은 적수를 만난 것을 기뻐하는 묘한 관계.

산티아고와 청새치도 그렇다.

둘은 서로의 생존을 위협한다. 노인은 물고기를 죽여야 하고 물고기는 노인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싸움이 길어질수록 노인은 물고기를 미워하기는커녕 사랑하고 존경한다. 심지어 형제라고 부른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품격을 갖기는 오히려 어려운지도 모른다. 살아온 경험이 많아질수록 자기 판단이 옳다고 믿기 쉽다. 젊은 사람의 생각을 철없다 여기고, 처음 해보는 사람에게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산티아고의 경험은 오만으로 가지 않는다.

힘은 줄었지만 상대를 읽는다. 서두르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진 것을 모두 던진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산티아고는 거의 경기가 끝난 사람이다.

야구로 치면 9회말 2아웃쯤 되지 않았을까.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다. 이제 그만 글러브를 벗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노인은 85일째 다시 배를 띄운다.

그리고 하필 그날, 평생 만나보지 못한 거대한 물고기를 만난다.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 꼭 젊은 날에 찾아와야 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84일 동안 안타 하나 치지 못했다고 해서 85일째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젊었을 때 나는 노인들의 말을 가볍게 지나치곤 했다.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데. 과학과 의술도 발전했고, 예전의 상식이 지금은 틀린 경우도 많았다.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건 옛날 얘기지.’

그런데 나이가 들고 자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가끔 이상한 순간을 만난다. 예전에 어른들이 했던 말이 내 입에서 나오려고 하는 순간이다.

말을 꺼내려다 멈춘다.

아, 이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

이제야 알 것 같은 것들이 하나씩 생긴다. 그렇다고 내가 인생을 다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살아볼수록 함부로 말하기 어려워지는 것들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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