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를 세운 벽돌, 마음을 다시 세우다

Evergreen Brick Works | 오래된 벽돌공장에서 발견한 삶

by세실의 정원
오래된 붉은 벽돌공장, 새로운 생명의 공간


토론토에는 오래된 벽돌공장이 하나 있다. 한때 도시를 짓기 위해 벽돌을 구워내던 곳이다. 지금은 숲과 습지, 산바카라길이 어우러지고 주말이면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으로 활기를 띠는 곳이다.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돈 밸리(Don Valley)에 자리한 에버그린 브릭 웍스(Evergreen Brick Works)다.


오래된 공장 건물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곳은 내가 즐겨 찾는 장소 중 하나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숲길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곳이 걸어온 시간이 마음에 든다. 도시를 만들던 공장이 사람들의 쉼터가 되기까지, 이곳에는 토론토의 성장과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산업의 흔적 위로 자연이 새로운 시간을 써 내려간다

토론토를 만들었던 벽돌공장-재생의 시작


에버그린 브릭 웍스의 옛 이름은 돈 밸리 브릭 웍스(Don Valley Brick Works)다. 1889년 문을 연 이 공장은 돈 밸리에서 채굴한 점토와 셰일을 이용해 벽돌을 생산했다. 당시 토론토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새로운 주택과 학교, 공공건물이 들어섰고 도시의 모습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이곳에서 생산한 벽돌은 토론토의 대표적인 역사적 건축물인 카사 로마(Casa Loma)와 매시 홀(Massey Hall) 등에도 사용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건물들도 누군가가 흙을 캐고, 벽돌을 굽고, 한 장씩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도시의 역사는 화려한 건축물뿐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사람들의 노동 속에도 남아 있다. 오랫동안 토론토의 성장을 함께했던 공장은 1984년 벽돌 생산을 멈췄다. 그러나 공장의 역사가 끝났다고 해서 이 장소의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오래된 공장을 모두 허무는 대신 건물을 보존하고, 채석장으로 사용했던 땅에 자연을 되돌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2010년, 이곳은 환경교육과 지역슬롯 활동을 위한 에버그린 브릭 웍스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산업시설이었던 공간이 자연과 사람을 위한 장소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오래된 벽돌 건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공장의 역사를 지우지 않고 새로운 쓰임을 찾아낸 모습이 인상적이다.


오래된 것에도 새로운 쓰임이 있고, 멈춘 시간에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

멈추었던 시간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토론토의 일상도 달라졌다. 사람들은 집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익숙했던 만남과 외출도 조심스러워졌다. 그 무렵 나와 가족들은 집에서 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루 종일 실내에 있다 보면 답답함이 밀려왔다. 언제쯤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면 에버그린 브릭 웍스로 향했다.


당시 여러 시설의 문이 닫혀 있었지만, 이곳의 야외 공원과 산바카라길은 내가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거의 매일 오다시피 했다. 오래된 벽돌공장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졌다.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고, 연못 주변에 잠시 머물렀다.


공장 뒤편에는 웨스턴 패밀리 쿼리 가든(Weston Family Quarry Garden)이 있다. 과거 벽돌을 만들기 위해 흙과 암석을 채굴하던 자리를 습지와 연못, 초지로 복원한 공원이다. 한때 산업활동으로 파헤쳐졌던 땅에 풀과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찾아오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곳을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봄에는 연둣빛 새잎이 돋아났고, 여름에는 나무들이 짙은 초록으로 변했다. 가을이면 잎들이 노랗고 붉게 물들었다.


세상은 멈춘 것처럼 보였지만 자연의 시간은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서 위안을 얻었다. 불안한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걷고 돌아오는 동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때의 산바카라은 특별한 목적이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를 견디고,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돌아온 토요일


얼마 전 주말, 다시 에버그린 브릭 웍스를 찾았다. 토요일이면 이곳에서는 새터데이 파머스 마켓(Saturday Farmers Market)이 열린다. 토론토에서 잘 알려진 농산물 시장 가운데 하나로, 온타리오 지역의 농부와 생산자들이 직접 가져온 농산물과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오래된 벽돌 건물 사이로 사람들이 오갔다. 제철 채소와 과일이 진열되어 있고, 갓 구운 빵의 향기가 풍겨왔다.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가게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시장을 구경했다. 시장 안에는 다양한 먹거리도 있었다. 커다란 팬에서 음식이 익어가고, 상인들은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파머스 마켓에사 만난 사람들과 음식


나는 꽃 앞에서 종종 발걸음을 멈춘다. 꽃을 다루는 일을 오래 해온 탓인지 계절마다 달라지는 색과 모양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시장에 놓인 꽃다발은 그 계절이 사람들에게 건네는 작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꽃과 수공예품을 구경하며 걷는 재미도 있었다.


꽃과 지역 생산품이 가득한 시장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왔다.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하는 음악가들 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는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농부가 가져온 채소를 고르고, 음악을 즐겼다. 특별할 것 없는 토요일의 모습이었지만 내게는 그 평범함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음악이 흐르는 가을 오후


한때는 고요한 숲길에서 위안을 얻었다면, 이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에서 기쁨을 느낀다. 문득 세월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어려운 시간도 지나가고, 사람들은 다시 서로의 곁으로 돌아왔다. 세월은 이렇게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구나.


오래된 벽돌이 들려주는 이야기


에버그린 브릭 웍스를 걷다 보면 오래된 벽돌 건물과 새롭게 자라난 자연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쪽에는 공장의 흔적이 남아 있고, 다른 한쪽에는 나무와 풀, 연못이 있다. 이곳은 과거를 지우고 새로 만든 공원이 아니다. 도시의 성장을 위해 사용했던 공간을 보존하면서 자연이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오랜 시간 가꾸어 온 곳이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벽돌과 새롭게 자라난 나무가 서로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한때 사람들은 이곳의 흙을 파내어 벽돌을 만들었다. 그 벽돌로 도시의 건물들을 세웠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에는 다시 그 땅을 돌보며 숲과 습지를 되살렸다. 같은 땅이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해온 것이다.


사람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젊은 시절에는 무언가를 이루고 쌓아가는 일이 중요했다면,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이미 내 곁에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가꾸는 일에 더 마음이 간다. 삶의 어느 시기에는 열심히 일하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또 어느 시기에는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이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래된 벽돌공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이제는 벽돌을 굽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모이고, 아이들이 자연을 배우고, 농부들이 자신이 기른 농산물을 가져와 이웃들과 나눈다. 한 장소의 역할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곳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온 역사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 삶 역시 그러하리라. 지금까지 해온 일과 경험들이 앞으로의 삶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더라도 새로운 기쁨과 역할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오래된 벽돌 건물 앞에서 그 가능성을 생각한다.


삶은 한 번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따라 조금씩 새롭게 지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숲이 선물하는 평범한 행복

다시, 숲길을 걷는다


파머스 마켓을 둘러본 뒤 공장 뒤편의 산바카라길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음악과 웃음소리가 서서히 멀어지고, 나무 사이로 들어서자 고요한 풍경이 펼쳐졌다. 익숙한 연못과 나무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곳의 풍경이 달라졌듯, 나의 마음도 조금씩 변해왔다. 예전에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당연하게 여겼던 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모습,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연못 위에 비친 하늘까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오후였다.


오래된 벽돌공장 뒤에 숲이 자라고, 그 숲을 찾아 사람들이 모인다. 한때 도시를 세우는 데 쓰였던 땅이 이제는 사람들에게 자연을 돌려주고 있다. 나는 이곳을 걸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도 그렇게 달라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더 쌓아 올리는 일뿐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돌보고,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도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세월은 흘렀고, 숲은 자랐으며, 사람들은 돌아왔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시간 속에서 조금씩 새로워지고 있었다.

작은 생명에게도 살아갈 자리가 필요하다. 자연의 회복은 그 자리를 지켜주는 일에서 시작된다


STAMP 02 | EVERGREEN BRICK WORKS


삶의 역사 위에 마음을 다시 세우는 회복의 장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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