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삶의 사전을 다시 쓰다

삶의 숲을 지나며

by세실의 정원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품는 일이었다.

우리는 일곱 살과 다섯 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독립이민으로 캐나다에 왔다. 처음 내 마음을 빼앗은 것은 숲과 호수였다. 김밥을 싸 들고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면 넓은 초원이 펼쳐졌고, 그 너머에는 커다란 호수가 나타났다. 하늘은 끝없이 넓었고 나무는 많았다. 그 풍경 앞에 서 있으면 정말 천국에 온 것 같았다. 처음 몇 달 동안 나는 여행자의 눈으로 캐나다를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반년쯤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여행을 온 사람이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SK와 G2로 들어갔다. 하교 시간이 달라서, 우리 부부는 시간을 나누어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려오며 새로운 생활을 꾸려야 했다. 나 역시 이민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여행자의 시간은 조금씩 생활자의 시간으로 바뀌어갔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나라를 배워갔다. 감사한 기회였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서 달랑 네 식구가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일과 가정을 함께 꾸려가는 하루는 생각보다 훨씬 치열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이 가장 자주 찾은 곳이 동네의 작은 리치뷰 라이브러리였다.


처음 도서관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어린이 코너였다. 아이들이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조용히 바카라을 읽는 공간이 아니었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계단처럼 층층이 이어진 자리가 있었고, 그 안에는 아이들보다 더 커 보이는 푹신한 쿠션들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그 위에 기대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고, 엎드린 채 그림바카라을 넘겼다.

지금이야 이런 공간이 낯설지 않지만 당시의 내게는 신선한 풍경이었다. 바카라은 조용히 앉아 바르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아이들이 집 거실처럼 뒹굴거리며 바카라을 고르는 모습은 작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바카라과 친해지는 일이 꼭 공부처럼 시작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곳에서 처음 배웠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던 것은 스토리타임이었다. 누군가 바카라을 읽어주기 시작하면 두 아이는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느 날은 잠옷을 입고 도서관에 오는 특별한 행사도 있었다. 파자마 데이에는 집에서 입던 잠옷 차림으로 다른 아이들과 나란히 엎드려 이야기를 듣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곳에서 바카라은 과제가 아니라 놀이였고, 도서관은 공부방보다 집의 거실에 가까웠다.


아이들과 멀리 나들이할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남편과 나는 틈이 생길 때마다 아이들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은 내가 아이들을 먼저 데리고 가고, 일을 마친 남편이 그곳으로 왔다. 또 어떤 날은 저녁을 먹은 뒤 네 식구가 함께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바카라을 읽고 우리는 각자의 일을 하며 하루의 남은 시간을 보냈다. 집과 온라인 게임과 학교 사이를 바쁘게 오가던 우리에게 도서관은 어느새 제2의 거실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민자의 삶에는 집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낯선 도시에서 마음이 놓이고, 아무 이유 없이 다시 찾아가고 싶은 장소가 생기는 순간 그곳도 조금씩 ‘집’이 된다.


지금은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둥근 계단과 커다란 쿠션을 볼 수 없다. 그 자리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다. 공간은 달라졌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은 더 선명하다. 쿠션에 몸을 묻고 바카라장을 넘기던 아이들, 그 곁에서 낯선 나라의 생활을 하나씩 익혀가던 젊은 엄마였던 나. 사라진 공간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 기억 속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 모양이다.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도서관을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는 바카라장만큼 그곳에 오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여든을 넘긴 듯한 시니어가 천천히 바카라을 고르고, 누군가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고, 누군가는 영어 대화 모임이나 공예 수업에 참여한다. 게시판에는 디지털 교육과 재정 정보, 글쓰기와 각종 지역슬롯 프로그램 안내가 빼곡하다.


캐나다의 공공도서관은 바카라을 빌리는 장소에서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교실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람을 만나는 거실이며, 낯선 도시에서 관계를 시작하는 작은 광장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의미는 더 커 보인다. 바카라 한 권을 빌리러 나와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아직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호기심에는 나이가 없고, 배움에는 마지막 페이지가 없다.


그리고 수년 전, 내 삶에는 또 한 번의 큰 멈춤이 찾아왔다. 큰 교통사고가 있었다. 공부를 마치고 새로운 일과 여러 계획을 시작하려던 때였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어느 순간 세상이 정지된 것 같았다. 걷는 일도, 밖으로 나가는 일도 당연하지 않은 시간이 찾아왔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어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도 도서관이었다.


왜 하필 도서관이었을까.


돌아보면 도서관은 오래전부터 내게 ‘다시 시작하는 곳’이었던 것 같다. 이민 첫해에는 어린 두 아이와 새로운 세상을 배우기 위해 찾았고, 바쁘게 일하던 시절에는 네 식구가 다시 만나는 제2의 집이 되었으며, 삶이 한 번 크게 멈춘 뒤에는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가기 위해 그 문을 열었다.

그때는 바카라을 많이 읽겠다는 거창한 생각도 없었다. 그저 바카라장 사이를 천천히 걷고 싶었다. 창가에 앉아 바깥의 나무를 바라보고 싶었다. 누군가는 공부하고, 누군가는 신문을 읽고, 또 누군가는 바카라 한 권을 품에 안고 돌아가는 평범한 풍경 속에 다시 섞이고 싶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다시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요즘 나는 오래 알고 있던 단어들의 뜻을 다시 생각한다. 집, 가족, 여행, 성장, 행복. 젊은 날 내가 알고 있던 뜻과 지금의 뜻은 같지 않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익숙한 단어의 정의를 몇 번이고 다시 써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도서관’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1999년의 도서관은 어린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새로운 세상을 배우러 가던 곳이었다. 일과 육아에 분주했던 시절에는 네 식구가 다시 모이는 제2의 거실이었다. 사고 이후에는 멈춰 있던 내가 다시 세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도서관은 지나온 삶을 읽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써보는 곳이 되었다.

같은 단어인데, 살아온 시간만큼 뜻이 깊어졌다.


리치뷰 라이브러리는 내가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장소였다. 그래서 《숲으로 가는 여권》의 첫 여행을 이곳에서 시작하려 한다. 앞으로 내가 사랑했던 도서관과 공원, 호숫가와 서점, 성당, 오래 걸었던 길들을 하나씩 다시 찾아가 볼 생각이다.


같은 장소를 찾아가도 그곳에 서 있는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러니 이 여행은 공간을 찾아가는 여행이면서 동시에 지나온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여행이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조금 설렌다.


오래전 내가 사랑했던 장소들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 첫 번째 장소에서 오늘, 나는 삶의 사전 속 한 단어를 다시 쓴다.


도서관.

삶의 어느 계절에 찾아와도 나를 받아주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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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MP 01 | LIBRARY

도서관 — 삶의 어느 계절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