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소년이 다시 쓴 영국사
This blessèd plot, this earth, this realm, this England.
이 축복받은 땅, 이 대지, 이 왕국, 이 잉글랜드.
-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2막 1장
초록 언덕과 양 떼가 어우러진 코츠월드를 뒤로하고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으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전원 풍경을 자꾸 돌아본다.
말름즈버리, 토마스 홉스의 고향에서
말름즈버리(Malmesbury)에 잠시 멈추었다. 교회 앞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에는 ‘The Hobbes Dig’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Thomas Hobbes of Malmesbury’ 바로 이곳이 근대 정치철학의 거장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의 고향이다.
홉스는 1588년 말름즈버리의 웨스트포트(Westport)에서 태어났다. 그해 스페인 무적함대가 잉글랜드를 향하고 있다는 소식에 어머니가 크게 두려워했고, 홉스는 훗날 어머니가 쌍둥이를 낳았다며 ‘나와 공포(Me, and Fear)’라고 자신의 탄생을 회고했다.
그가 태어난 집은 남아 있지 않다. 생가 터 가까이에는 1867년에 세워진 연합개혁교회(United Reformed Church)가 자리한다. 현장 안내판에는 홉스의 전기 작가 존 오브리(John Aubrey)가 그린 생가의 스케치도 실려 있다.
교회 앞에는 ‘The Hobbes Dig’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5년 4월 5일과 6일, 홉스의 생가 터에서 고고학 발굴 현장을 공개한다는 안내다. 그가 태어난 지 400년이 훨씬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집의 흔적을 찾고 있다.
유럽 곳곳을 오가며 철학을 공부하고 귀족 가문의 교사와 비서로 일했던 홉스는 자신의 이름에 ‘of Malmesbury’를 붙일 만큼 고향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작은 마을의 이름이 한 철학자의 이름과 함께 수백 년 뒤까지 남았다.
And the life of man, solitary, poor, nasty, brutish, and short.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빈곤하며, 비참하고, 야만적이고, 짧다.
—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Leviathan)》(1651)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사람들을 다스릴 공통의 권력이 없다면 인간은 서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태에 놓인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으로 설명하고,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 합의로 정치적 권위를 세운다는 슬롯계약론을 펼쳤다.
셰익스피어가 런던의 무대에서 왕과 인간의 욕망, 권력의 불안을 그리던 시대, 말름즈버리에서는 훗날 권력은 왜 필요한가를 철학으로 묻게 될 홉스가 자라고 있었다.
한 사람은 연극으로, 다른 한 사람은 철학으로 인간과 권력을 탐구했다.
Stratford-upon-Avon, 이름에 남은 길과 강
에이번강가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 1564년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곳이다.
Stratford라는 이름은 고대 영어 stræt, 즉 길과 ford, 여울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에는 로마 가도와 에이번강을 건너는 길목이 있었다. Avon 역시 켈트계 언어에서 ‘강’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 길과 여울, 강. 오래전 사람들이 오가던 장소의 기억이 마을 이름 속에 남았다.
셰익스피어 생가에서 만난 광대
스트랫퍼드의 헨리 스트리트(Henley Street)에는 익살스러운 광대 동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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