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넬로페 이야기

그녀가 주인공인 서사

by윤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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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로 생성

역사를 서술할 때 권력을 가진 쪽에서 바라보는 입장인 경우가 많다. 남성들이 권력을 가졌었기 때문에 역사는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문학도 마찬가지지만 저자에 따라 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들도 꽤 있다. 나는 호메로스도 시대를 초월해서 여성을 존중하고 다른 시각으로 보았던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리스 신들의 싸움을 묘사할 때도 여신의 입장을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걸작 오디세이아에서도 페넬로페를 묘사하는 시선에서 여성에 대한 존중이 보인다.

영화 오디세이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가 영화의 기본으로 삼은 바카라도 여성 번역가 에밀리 윌슨의 번역본을 따랐다고 말한다. 그녀가 오디세이아 원본에서 해석한 오디세우스는 지략을 가진 영웅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복잡한 남자이다. 그 시각에서 영화가 전개되는 것이다. 덕분에 참신한 영화가 탄생했다. 감독이 본 페넬로페의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수동적으로 남편을 20년 동안 기다린 여성이 아니라 그동안 왕이 없는 나라의 왕좌를 지킨 능동적인 여성으로 묘사된다.

심리학에서 남성의 마음 안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라고 하고, 여성의 마음 안에 있는 남성적 요소를 아니무스라고 한다.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저 아니마나 남성의 조력자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고 여성 중심의 서사에서는 남성이 아니무스나 동반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오디세이도 저자나 감독이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했으나 다분히 남성 쪽에서 보는 서사이다. 그러나 그저그런 조력자 또는 정숙한 여성으로 페넬로페를 한정 짓기에는 그녀는 참으로 대단한 여성이다. 이번 글에서는 페넬로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먼저 절대 끝나지 않는 일의 은유로 사용되는 유명한 페넬로페의 베 짜기 이야기가 있다. 전쟁이 끝나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108명의 뻔뻔한 구혼자들이 궁에 몰려와서 그녀를 협박한다. 그녀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야한다는 명분으로 3년을 버틴다. 낮에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베를 짜고 밤새워 그것을 푸는 헛수고를 되풀이했다. 후대의 남자들은 자기 입맛대로 그녀의 정절을 높이 살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녀가 과연 남편이 돌아오리라고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지 근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의 진정한 짝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왕국을 20년간 지켜왔는데 그것을 허접한 남자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었고 아들이 더 성장하여 그들을 제거할 시간을 벌며 처단할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한편 신화를 우리의 일상에 비유했을 때, 짰다 풀었다 하는 베 짜기가 많은 여성들이 견디는 끝도 없는 집안일에 대한 은유로 보이기도 했다. 치우면 다시 어질러지고, 만들면 다 먹어버려서 없어지는 음식 등 집안일이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을 버티다 보면 자녀들도 자라고 남편도 참여해서 언젠가는 끝나는 것이다.

다음은 페넬로페가 언제 거지가 오디세우스인지 알아보았을까 하는 문제이다. 혹자는 모든 구혼자들이 쏘는 데 실패한 활을 그만이 시위를 당겨 소리를 냈을 때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오디세우스가 피폐한 몰골로 들어왔다고 해도 아내는 그를 알아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번 양보해서 겉모습만으로는 알아보지 못했다고 해도 자신의 옆에 불러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밤새 들었을 때 그를 몰라보았을 리는 없다. 이야기의 내용, 그의 목소리나 어투를 들었을 때 그를 금방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수많은 구혼자를 처단하기 위해 내색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디세우스에게 계획을 간접적으로 알린다. 자신이 꿈을 꾸었는데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서 거위 20마리의 목을 꺾어 죽였다고 말하며 해몽하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자신을 모욕한 구혼자들을 처단하라는 요구였다. 다음날 그녀는 모든 구혼자들을 모아 연회를 베풀고 남편만이 쏠 수 있는 활쏘기 대회를 연다. 당연히 오디세우스만 활을 쏘는 데 성공하고 구혼자들을 모두 처단한다. 그녀의 계획대로 정의는 실현되었다.


그렇다면 부부는 다시 제자리로 금방 돌아왔을까?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을 남기고 영웅이 되려 전쟁에 참여한 남편은 전쟁이 끝나고 다른 남편들은 모두 돌아와도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둘은 시대를 고려하면 이미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그는 그 기간에 다른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남편은 떠날 때와 같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전쟁에서 영혼이 피폐해지고 다른 여성을 사랑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아가멤논의 경우 공명심에 눈이 멀어 자신의 딸을 항해의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었고 분노한 아내 클리타임 네스트라는 그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딸의 원수라며 그를 잔혹하게 살해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 시험을 한다. 모두를 처단하고 밤이 오자 그녀는 하녀에게 침실의 침대를 밖으로 옮겨서 오디세우스의 잠자리를 마련해 주라고 한다. 그러자 오디세우스는 화를 내며 살아있는 올리브 나무를 잘라 밑동 위에 침대를 만들고 그 둘레에 벽을 세워 침실을 만들었으니 그것은 절대 옮길 수 없는데, 그렇다면 그 침대를 없애고 다른 침대를 만들었냐고 한다. 그제야 페넬로페는 남편이 돌아왔다고 인정한다. 둘 사이의 사랑의 증거인 침대를 잊지 않고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신화에서는 오디세우스가 다시 왕이 되고, 영화에서는 둘이 함께 서쪽 나라로 항해를 떠난다. 어떤 쪽이든 둘은 노년을 함께 한다. 페넬로페 중심의 서사에서는 그녀가 인생 후반에 참다운 아니무스와 함께 자기를 찾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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