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안 떠났어요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

by류정uk


일흔이 이르니 장거리 운전을 한 번에 끝내지 못한다.

한때 네 시간이면 바로 닿던 길을, 이제는 중간에 한 번씩 쉬어 간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디다.


그날도 영국 M1 고속도로를 달리다 차를 세웠다.

인터체인지 옆 작은 레저센터였다.

몸을 좀 풀 생각으로 들어간 수영장은 텅 비어 있었다.

아니, 한 사람이 있었다.


물속에 서 있는 여자였다.


“중국 사람이에요?”


고개를 드는 순간, 뜻밖에도 경상도 사투리가 흘러나왔다.


“아니요, 한국 사람인데요.”


“아이고, 한국 분이시구나. 너무 반갑심더.”


이국의 물속에서 모국어를 들을 때의 그 온기.

반가운 마음에 손을 내밀었다가 그대로 멈췄다.

물 위로 올라온 그녀의 두 손이 심하게 뒤틀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사지 기능을 잃었어요. 제대로 못 씁니다.”


루게릭병이라고 했다. 스물여덟에 진단을 받았고, 그때 영국 의사는 삼 년을 말했다고 했다.

삼 년.

그런데 지금 그녀 앞에는, 삼십오 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었다.


나는 잠시 수영장 벽을 바라봤다.


“남편이요, 한 번도 안 떠났어요.”


설명하듯 말하지 않았다.

그저 사실 하나를 건네듯 담담하게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을 받아 드는 순간 왜인지 숨이 잠깐 멎는 것 같았다.


영국인 남편은 젊은 시절 한국에서 일하다 그녀를 만났고, 함께 이곳으로 왔다.

시부모도 이웃에 살며 수십 년째 집안일을 맡고 있다고 했다.


수영장을 나와 다시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고도 한동안 출발하지 못했다.

방금 내가 보고 온 것이 병에 대한 이야기인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둘은 처음부터 같은 이야기였는지도 몰랐다.


고속도로에 다시 올라서며 문득 생각했다.


예전에 내가 쉬는 동안, 누군가는 계속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누구의 시간을 받아 살아왔을까.


그리고 나는, 누구의 시간을 그렇게 붙들어 준 적이 있었을까.


액셀러레이터를 밟다가, 발의 힘을 늦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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