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소설 『할매』를 읽고
황석영의 소설 『할매』(2025)는 사람의 눈이 아닌, 땅에 뿌리를 내린 고목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600년 세월을 한자리에서 버텨온 군산 하제마을의 팽나무. 만약 내가 그 팽나무가 되어 이 땅의 역사와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냈다면 어떤 나이테를 새겼을까.
시베리아의 차가운 눈보라를 뚫고 날아온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금강 하구의 빈터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그 몸이 녹아든 기름진 땅속에서 씨앗 하나가 싹을 틔우는 첫 장면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생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정밀하게 그려낸 문장들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팽나무의 수령(樹齡)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한 발짝 물러서고, 대신 그 자리에 흘러간 사람들의 숨소리가 겹겹이 들어찬다. 조선 건국 무렵 단단한 흙을 뚫고 올라온 어린 줄기는, 우금치에서 피 흘리며 스러져간 동학농민군의 절규를 모조리 뿌리로 흡수했다. 일제강점기 미군 비행장 활주로 건설로 짓밟히는 땅의 비명을 묵묵히 견뎠고, 바닷길이 막히며 말라죽어가는 갯벌 조개들의 아우성을 나뭇잎의 떨림으로 기록해냈다. 팽나무가 되어 돌아본 한국 근현대사는 한 사람의 일생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하고 웅장한 생명의 통증이었다.
비단 군산 하제마을의 팽나무뿐일까. 떠올려보면 대한민국 동네마다 어귀나 고갯마루를 지키며 서 있는 '할매 나무'들이 있다.
우리 동네 어귀에도 400년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온 지정 보호수 느티나무가 서 있다. 어디 우리 동네뿐이겠는가. 어느 마을에나 팽나무로, 느티나무로, 혹은 당산나무라는 이름으로 마을의 안녕을 굽어살피던 오래된 고목들이 존재한다. 그 나무들은 마을의 가장 늙고 웅숭깊은 어르신이자, 흘러간 사람들의 삶을 낱낱이 간직한 거대한 기억의 저장소다.
마을 사람들은 기쁜 일이 있거나 간절한 염원이 생기면 늘 그 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매년 정월이나 이월이 되면 목욕재계하고 동제를 지내며 가뭄이 들지 않기를, 집안의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빌었다. 칼바람을 뚫고 냇가에서 얼음물로 몸을 씻고 오던 부모들의 정성스러운 발자국 소리, 나무 그늘 아래서 땅따먹기와 공기놀이를 하며 깔깔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전쟁터로 떠나는 자식의 손을 잡고 나무 둥치를 끌어안으며 흘리던 어미의 눈물까지... 동네를 지켜온 나무들은 그 모든 사람들의 잔상을 자신의 나이테 속에 차곡차곡 새겨 넣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100년을 채 살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가지만, 동네를 지키는 나무들은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 남아 한 마을의 흥망성쇠와 민초들의 슬픔을 묵묵히 증언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이념의 갈등으로 마을이 찢길 때도,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고향이 철거되고 이웃들이 떠나갈 때도 나무는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그 역사를 받아냈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냐"
소설 속 팽나무의 일갈은, 어쩌면 오늘도 동네 어귀에서 조용히 풍상을 견디고 있을 전국의 수많은 당산나무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인사일지도 모른다. 사계절의 순환 속에서 죽음 같은 겨울을 견디고 다시 푸른 봄을 피워내는 나무들처럼, 우리 역사와 동네의 삶 역시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바카라을 덮고 길을 나서며 동네 어귀의 400년 느티나무를 고개 숙여 바라본다. 그 거대한 그늘 아래 깃들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잔상과, 이 땅의 유구한 역사가 오늘따라 더욱 서늘하고도 따뜻하게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