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깨는 선의는 어디서 오는가

[리뷰] 넷플릭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보고

by미야

"근데 우리가 뭘 바카라임져야 해?"
"당신은 의문이 안 들어?"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


영화 속 주인공 빌 펄롱(킬리언 머피 분)에게 아내 아일린이 낮은 목소리로 핀잔하듯 건네는 말이다. 다섯 딸을 키우며 새벽부터 석탄 가루를 뒤집어쓰고 죽어라 일해 겨우 가정을 일궈낸 소시민의 삶. 수녀원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마을의 거대한 성벽이자 권력인 수녀원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곧 온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야."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당장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 타인의 불행에 눈을 감는 대신 내 가족의 안위를 챙기는 것이 세상의 오랜 지혜처럼 여겨지곤 하니까. 나 역시 아마 그 아내의 현실적인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른다. 이 나이가 되어보니 내가 가진 작고 소중한 일상을 내려놓고,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불안을 안은 채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영화로, 서늘한 정적 속에 폭발하듯 부풀어 오르는 긴장감



올해 초,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서 클레어 키건의 원작 소설을 처음 읽었다. 잔잔하면서도 서늘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문체에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한동안 잊고 지내다 최근 넷플릭스에 영화로 올라온 것을 보고 홀린 듯 리모컨을 들었다. 넷플릭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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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언 머피 주연의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넷플릭스 포스터


영화의 첫인상은 '그로기' 그 자체였다. 흑백 영화를 연상시키는 차갑고 서늘한 영상미, 그리고 작품 전반에 낮게 깔리는 음악은 관객의 마음속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다. 화면은 시종일관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이상하게도 무언가 팡 터져버릴 듯 부풀고 부풀어 오르는 예감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커다란 폭발이나 액션 장면이 없음에도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자꾸만 조마조마해지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1985년 아일랜드 남동부의 작고 쓸쓸한 도시 뉴 로스. 석탄 판매업을 하는 빌 펄롱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가장 큰 거래처인 수녀원의 난방용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헛간의 차디찬 바닥에서 떨고 있는 한 십 대 소녀를 발견한다.



영화가 조명하는 이 비극의 배경에는 아일랜드 현대사의 가장 잔혹하고 어두운 그림자, 일명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 1922년부터 1998년까지 참회와 갱생이라는 거룩한 미명 아래 5만 6천 명 이상의 미혼모, 성폭행 피해자, 고아 여성들이 가톨릭 수녀원에 수용되어 무휴일·무보수 노동을 강요당하고 학대받았다. 아이들은 강제로 빼앗겨 돈을 받고 입양되거나 차디찬 정화조에 암매장되었다. 수녀원은 이 작은 도시의 학교와 행정, 경제를 쥐고 흔들며 마을의 모든 대소사에 관여하는 절대적인 권력층이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든 말조심하도록 해. 문제 일으켜서 좋을 것 없으니까."
"그곳 수녀들이 마을의 모든 일에 관여하잖아. 당신이 문제를 일으키면 아이들만 학교 다니기 힘들어져."
"다들 당신한테 손가락질할 거야. 알아서 잘 처신해. 당신 가족이랑 사업을 생각해서라도 내 말 새겨듣게."


식당 주인의 다정한 듯 서늘한 경고, 이웃들의 냉담한 외면,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의 안절부절못하는 설득 앞에서 빌 펄롱은 깊은 망설임과 두려움에 빠져든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것은 곧 자신의 터전과 아이들의 미래를 내던지는 위험천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발소 가운을 벗어던진 한 남자의 '작은 기적'



하지만 빌 펄롱은 평범한 소시민일 뿐, 대단한 의사나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 은혜를 아는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세상의 손가락질 속에 버려질 뻔했으나, 자신과 어머니를 거두어 주고 온정을 베풀어 준 윌슨 부인의 선의 덕분에 겨우 번듯한 가장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사람 말이다.



"윌슨 부인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분이 어머니를 받아주지 않았거나, 날 거둬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내의 야속한 현실론에 그가 던진 나지막한 반문은, 그의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고 타고 있던 최소한의 양심이자 선의의 불씨였다. 내가 받은 그 사소한 온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는 고백.



결국 그는 결단한다.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려던 그, 가슴속을 짓누르던 그 비겁한 침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이발 가운을 벗어던지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안온하고 편안한 관습을 걷어차 버린 순간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걸어가 수녀원의 잠긴 문을 열고, 헛간에 갇혀 있던 가여운 소녀의 손을 잡아 이끈다. 그리고 차가운 눈발이 날리는 마을 길을 지나, 자신의 따뜻한 집으로 소녀를 데려온다.



그의 손에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온 소녀의 그 후 이야기는 영화에 직접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그 옛날 어린 빌 펄롱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윌슨 부인처럼, 빌 역시 그 가여운 아이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리라는 것을.



내가 가진 작은 평온을 내려놓는 것, 지켜야 할 소소한 일상이 깨어질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을 안은 채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알기에, 이발소 가운을 던지고 나오던 그의 모습에서 가슴 깊은 곳이 뜨겁게 울컥거렸다. 그 작디작은 걸음 하나가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두려움을 뚫고 나온 것인지 너무나 잘 보였기 때문이다.



세상을 구하는 것은 사소한 용기들의 연대



영화가 끝난 뒤 검은 화면 위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영화 내내 연출에 활용되었던 마을의 나지막한 생활 소음들과 함께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이 고요하게 흘러나온다. 가슴이 먹먹해진 채 한참 동안 화면을 차마 끄지 못하고 자리를 지켰다.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영화의 카피처럼,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사소한 선의나 도움을 받지 않고 온전히 홀로 서 본 사람이 있을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침묵은 너무나 쉽고 편안하지만, 그 편안함 뒤에는 수많은 무고한 이들의 눈물이 짓밟히고 있다.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것은 거창한 정치적 구호나 위대한 성인의 설교가 아니었다. 춥고 무서운 밤, 누군가 내밀어 준 손 한쪽, 호주머니 속 잔돈 몇 푼, 따뜻한 석탄 난로의 온기 같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었다.



불의를 눈감는 것이 지혜라 여겨지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여전히 타인의 불행에 마음을 쓰며 사는 것은 이 나이가 된 내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손해를 볼까 두렵고, 이웃의 눈총이 무섭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하늘의 눈발을 맞으며 소녀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던 빌 펄롱의 결연한 뒷모습은 나에게 나지막한 질문을 던진다. 오늘 하루, 나는 타인을 향해 이 사소한 용기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56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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