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학로드 추천 코스를 걸었을 때의 일이다. 길 위에서 우연히 듣게 된 이중섭의 대구 시절 이야기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내 마음에 긴 여운을 남겼다. '화가 이중섭'이 아닌 '인간 이중섭'의 생애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던 참이었다. 마침 며칠 전, 동네 도서관을 서성이는데 이중섭에 관한 바카라이 눈에 들어왔다.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망설임 없이 바카라을 대출해 집으로 향했다. 첫 장을 넘기고 마주한 그의 절절한 편지글은 이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편지지 상하좌우에 '뽀뽀'를 60번이나 쓴 남자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에게 편지를 쓰며 외롭고 그리운 마음을 꾸욱 꾹 참아내고 있었다. 편지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애정이 뚝뚝 묻어 났다. 그도 자신의 이 뜨거운 편지가 훗날 만 천하에 공개될 줄 알았을까?
"나만의 소중하고 소중하고 또 소중한 한없이 착한 오직 유일한 나의 빛, 나의 별, 나의 태양, 나의 애정의 모든 주인인 나만의 천사,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군... 나의 최고 최대 최미의 기쁨 그리고 한없이 상냥한 오직 하나인 현처 남덕군."
이중섭은 아내 남덕의 발가락을 그리도 예뻐했다고 한다. 그래서 편지 곳곳에 "발가락 군에게도 안부를 전해달라''는 엉뚱하고도 귀여운 구절이 등장한다. 특히 편지지 상하좌우 여백에 '뽀뽀'라는 글자를 무려 60번이나 꾹꾹 눌러 쓴 남자라니. 춥고 배고픈 혹독한 공간의 거리감이, 편지라는 통로를 통해 그의 속마음을 날 것 그대로 뿜어내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카라표지 ⓒ 가디언관련사진보기
"다음에 만나면 당신에게 답례로 별들이 눈을 감고 숨을 죽일 때까지 깊고 긴긴 키스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해 드리지요."
그는 스스로를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으로 자처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우동과 간장으로 하루에 한 끼를 때우고 겨울 추위에 옷도 벗지 못하고 자면서도 그는 아내에게 당당하게 외쳤다.
"어디까지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세계 속에 올바르게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중략) 세계의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최악의 조건 하에서 생활해 온 표현, 올바른 방향의 외침을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의 절친 구상 시인은 이중섭을 이렇게 회상했다.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 판잣집 골방에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도 그랬고,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종이 담뱃갑 은종이에다가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이런 예술가를, 이런 인간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의 그림을 가슴으로 마주하니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다.
붓 끝에 서린 고구려의 기상과 가난한 아비의 눈물
평소 나는 이중섭의 그림 중 특히 <황소>의 표정을 좋아했다. 환하게 웃는 듯한 표정과 그 힘찬 선이 주는 웅장한 기상이 참 좋았다. 이번에 바카라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인데, 그의 연보를 보니 어린 시절 평양에서 학교에 다닐 때 '벽화가 그려진 고구려 무덤 유적 안에서 자기도 했다'는 대목이 있었다. 그 구절을 읽는 순간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아, 그 거침없는 선 속에서 요동치던 에너지가 바로 고구려의 기상이었구나!
그의 그림에는 유독 물고기, 게, 황소, 닭, 그리고 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머나먼 이국 땅(일본)에서 어머니와 함께 외롭게 지낼 두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쓰는 편지지에 그림을 그려 보냈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턱 막히며 울컥했다. 그림을 그리는 가난한 아버지가 줄 수 있는 것이 그것 말고 무엇이 더 있었으랴. 그리 생각하면 홀로 남겨진 그가 얼마나 스산하고 휑하였을지 감히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인품은 한없이 겸손하고 따뜻했다. 그림이 막혀 어려워하는 이에게는 "내가 좀 대(도와)줄까" 하고 넌지시 손을 내밀고, 정작 자신이 칭찬을 받으면 수줍어하던 사람. 아픈 친구 구상을 위해 천도복숭아 그림을 그려주며 "이걸 먹고 요걸 먹고 어이 빨리 나으란 그 말씀이지"라고 장난스레 위로를 건네던 사람. 가난하지만 한없이 따뜻한 마음 앞에 결국 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말았다.
투박한 평안도 사투리 속 긴 여운
그는 서른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숨지기 전 "내가 세상을 속였어. 그림을 그린답시고 공밥을 얻어먹고 놀고 다니며 훗날 무엇이 될 것처럼 말이야"라며 자바카라 했다던 대목은 가슴을 아프게 후벼팠다.
하지만 정다운 친구들이 서로 잘잘못과 사리를 따지며 다툴 때, 그가 스스럼없이 던졌다던 투박한 평안도 사투리가 내 마음에 오래도록 긴 여운으로 내려앉는다.
"여보시, 다 알고 있지 않슴마? (여보시오, 다 알고 있지 않소?)"
세상의 모든 고통과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서로의 미안함까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씩 웃어 보였을 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라 노래했던 이중섭. 오늘 밤은 그가 남덕 군에게 보낸 은지화 속 아이들처럼, 그가 하늘에서 만큼은 가족들과 모여 따뜻하게 웃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