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 - 요보비치 누나와는 영원한 이별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만큼 원작 지적재산권(IP)을 능욕한 영화가 있을까. 폴 W.S 앤더슨과 밀라 요보비치 부부의 효자상품이었던 동명의 시리즈는 후속편이 나올 때마다 주인공은 더 세지고, 이야기는 산으로 가면서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해왔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현명하게도 기존 시리즈와의 단절을 선언한다. 대신 원작 게임 ‘바이오하자드’라는 근본으로 돌아갔다. 호러와 미스터리, 코미디가 뒤범벅된 원작의 정체성을 복구한 영화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넘어 프랜차이즈 게임 원작 영화로 최상의 재미를 제공한다. 또 하나의 후속편이 아닌, 현 시대 호러 영화의 한 챕터를 차지할 만한 오리지널리티의 귀환이다.
주인공은 의료용품 택배기사 브라이언(오스틴 에이브람스). 그는 라쿤시티 병원까지 의문의 제품을 배달해야 한다. 라쿤시티 병원은 치명적 감염체가 만들어져 온갖 괴물이 탄생하게 된 비극의 시발점으로 일부 관객에겐 익숙한 장소. 주인공은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의 여정이 험난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는 게임을 하는 감각으로 진행된다. 총 쏴본 것도 처음인 소시민 주인공은 주어지는 상황과 ‘무기’의 변화에 적응하며 대처 능력이 조금씩 발전한다. 농장-터널-골목-하수구-길거리-라쿤시티 병원에 이르기까지 각 공간은 게임 스테이지처럼 기능한다. 농장에서의 위험을 넘기면 새로운 공간인 터널이 펼쳐지는 식이다. 주인공의 시야가 확장되는 것은 곧 세계의 규모가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라쿤시티 병원에 가까이 갈수록 더 강하거나 기괴한 괴물을 맞닥뜨리며 난이도가 올라간다. 지긋지긋한 자물쇠 풀기 등 게임을 하면서 느낄 법한 고충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게임의 스토리를 가져온 수준이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감각을 영화의 서사로 체화한 것. 단순 생존 투쟁이었던 주인공의 여정은 진행될수록 끔찍한 세계관에 절망케 되는 아포칼립스적 체험으로 변환된다.
물론 스테이지 클리어의 단순 반복이라면 따분해지기 십상. 영화는 게임 내러티브에 편승하지 않는다. ‘바바리안’, ‘웨폰’을 통해 호러 영화 기대주로 자리매김한 잭 크레거 감독은 장기인 ‘쪼는 맛’을 극대화하며 쉴틈을 주지 않는다. 공간 어딘가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긴장감을 지속시키면서 의외의 지점에서 깜짝 놀라게 하며 해소시키는 연출이 탁월하다.
각 단계마다 공포의 형태와 종류가 바뀐다는 점도 묘미다. 도망쳐야할 때가 있고, 괴물을 처치해야 할 때가 있으며, 그저 공중에서 떨어지는 무언가를 피해 달려야할 때가 있다. 클리셰 비틀기를 통한 장르적 쾌감도 잊지 않는다. 이를테면 두려움에 떠는 순진한 아이는 주인공이 구해야 할 동행자가 아니라 또 다른 위험일 수 있다. 게임이든 영화든 ‘뭘 좀 아는’ 자가 만든 영화다.
매 단계마다 “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지”란 주인공의 혼잣말은 웃음을 자아낸다. 요보비치식 여전사의 경이로운 활약을 ‘구경’하는 것보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소시민의 모험에 ‘동참’하는 느낌이다. 목숨 건 배달 와중에도 임신한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브라이언의 모습은 붕 뜰 수 있는 영화에 현실감을 준다. 안정된 가정의 노년 부부 좀비에서 시작해 감염된 신생아들이 우글거리는 산부인과에서 피범벅 절정을 이루는 여정은 주인공이 회피해왔던 내면적 공포를 투영한 것으로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