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경윤 88 (2026. 5. 14)
- "진정한 합의는 가장 좋은 논거의 힘에서 나온다"
1.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활기찬 세미나실에서
선생님, 안녕하세요! 늘 강연과 토론으로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막 학생들과의 세미나를 마치고 나오시는 길이시죠? 선생님의 철학이 ‘대화’와 ‘의사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선생님의 일상도 끊임없는 대화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20세기 최고의 지성’, ‘독일 철학의 살아있는 양심’으로 불리십니다. 이러한 명성이 때로는 부담스럽지는 않으신가요?
허허, 어서 오시오. 젊은 학도와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 그런 거창한 별명들은 저널리스트들이 붙여준 것이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오. 나는 그저 한 명의 시민이자, 내 조국 독일이 저질렀던 끔찍한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역사의 증인일 뿐이라오. 내가 평생 ‘대화’와 ‘이성’을 강조해온 이유도, 바로 그 끔찍했던 과거와 깊은 관련이 있지.
선생님께서는 히틀러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십 대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나치즘이라는 거대한 광기가 어떻게 이성적인 독일 슬롯를 집어삼킬 수 있었는지 직접 목격하신 셈인데요. 그 경험이 선생님의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영향이라… 그것은 내 사유의 출발점이자, 내가 평생 싸워온 거대한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소. 나는 열여섯 살 때, 라디오를 통해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소식을 들었소. 그때 처음으로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지. 아우슈비츠의 기록 영상을 보면서, 나는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충격과 깊은 수치심에 빠졌소. ‘어떻게 우리 독일인들이, 칸트와 괴테의 후예들이 이런 야만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단 말인가?’
그때 나는 깨달았소. 히틀러의 광기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공론장(Public Sphere)’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서 토론하고, 정부의 정바카라을 비판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교환하며 합리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공간, 바로 그 ‘공론장’이 나치의 선전과 선동으로 완전히 오염되고 파괴되었던 것이오. 이성이 침묵하는 곳에서 괴물이 태어난 셈이지.
전쟁이 끝난 후, 나는 결심했소. 다시는 우리 슬롯가 저런 비이성적인 광기에 휩쓸리지 않도록, 어떻게 하면 건강한 ‘공론장’을 복원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슬롯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를 평생의 과제로 삼겠다고 말이오. 나의 모든 철학은 바로 이 ‘아우슈비츠 이후, 어떻게 이성적인 슬롯를 재건할 것인가?’라는 절박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라 할 수 있소.
2. 공론장, 시민의 목소리가 모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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