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경윤 78 (2026. 4. 23.)
- "철학은 개념을 창조하는 예술이다"
1. 파리의 한 아파트, 병약한 철학자의 빛나는 눈빛
선생님, 안녕하세요.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평생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시면서도, 20세기에 가장 독창적이고 방대한 철학을 남기셨습니다. 선생님의 철학은 ‘나무’가 아니라 ‘리좀’ 같다는 표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리좀’이 뭔가요? 이게 선생님 철학의 출발점인 것 같아 무척 궁금합니다.
(창백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내며)
콜록, 콜록… 어서 와요, 젊은 친구. 내 몸은 평생 나를 괴롭혔지만, 덕분에 내 생각은 몸의 감옥을 탈출해 더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 허허. ‘리좀(Rhizome)’이라! 아주 좋은 출발점이오. 내 친구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쓴 『천 개의 고원』이라는 바카라의 첫 장 제목이기도 하지.
자, ‘나무(Tree)’를 생각해봅시다. 서양 철학은 오랫동안 ‘나무’처럼 생각해왔소. 하나의 거대한 뿌리(근원, 진리)에서 출발해서, 굵은 기둥(체계)을 세우고, 위계질서에 따라 가지(분류)를 뻗어 나가는 방식이지. 모든 것은 ‘하나’의 중심에서 시작되고, 정해진 경로를 따라 위로만 자라나야 하오. 플라톤의 이데아도, 데카르트의 ‘코기토’도 모두 이런 식의 ‘뿌리-나무 사유’였소.
하지만 나는 이런 방식이 너무 답답하고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했소. 세상은 그렇게 질서정연하지 않거든! 그래서 나는 ‘리좀’을 이야기한 것이오. ‘리좀’은 땅속에서 자라는 식물의 뿌리줄기를 뜻하는데, 민들레나 잔디, 감자를 생각하면 쉽소. 리좀에게는 중심도, 시작도, 끝도 없소. 그냥 아무 데서나 뿌리를 내리고, 옆으로 퍼져나가고, 서로 연결되고, 중간이 잘려도 다른 곳에서 다시 자라나지. 위아래의 위계질서도 없고, 정해진 경로도 없소. 모든 지점이 다른 모든 지점과 연결될 수 있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연결망! 그것이 바로 리좀이오.
나의 철학은 바로 이 ‘리좀’처럼 사유하려는 시도요. 철학, 예술, 과학, 정치, 정신분석… 이 모든 것들을 위계질서 없이 연결하고, 중심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것. 정해진 지도를 따라가는 여행이 아니라, 여행하면서 그때그때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는 탐험! 그것이 바로 ‘리좀적 사유’라오.
2. 욕망은 무언가를 향한 기계다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는 탐험이라니! 정말 신나는 철학인데요. 선생님께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비판하시면서, ‘욕망’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셨습니다. 보통 ‘욕망’이라고 하면,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결핍)’를 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생산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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