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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영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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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작가 김영일의 브런치입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13 Oct 2026 21:17:4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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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가 김영일의 브런치입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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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에필로그 - 그 여자 이름은 김영희였다</title>
      <link>https://brunch.co.kr/@@9ojT/40</link>
      <description>군복 입은 남자 옆에 젊은 여자가 있다. 사진 속 김영희는 아직 네 아들의 어머니가 아니다.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나는 예순세 해 동안 그를 거의 언제나 어머니라고 불렀다. 사진 속 얼굴을 보며, 이제야 그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른다. 김영희. &amp;nbsp;멋진 여자 였다고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rgUUYW4cN6J7rzDCVOcv3uHDEGc.pn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6:09:51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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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가의 말 - 기억이 닿는 곳까지</title>
      <link>https://brunch.co.kr/@@9ojT/39</link>
      <description>이 글은 어머니가 직접 들려준 말과 내가 본 장면을 따라 썼다. 내 기억과 가족사진, 1960년 신문기사에 기대어, 기쁨과 서운함, 고집과 유머를 함께 지닌 김영희를 기억이 닿는 데까지 적었다.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연표에 적고, 전해 들은 이야기는 그 출처가 드러나도록 썼다. 부산에서 광주리에 무엇을 담았는지, 왜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었는지, 첫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qrYvTXYxjS9M1srN_xbVCjvRpKg.pn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6:01:28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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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영희의 시간 - 1933 ~ 2021</title>
      <link>https://brunch.co.kr/@@9ojT/38</link>
      <description>기억과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김영희의 생애를 연대순으로 적는다. 1933년 &amp;nbsp;서울 영등포 출생. 2남 4녀 가운데 장녀. 1940년대 후반 &amp;nbsp;수도여고 재학. 학업 성적이 뛰어났으며 훗날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회고. 1950년 &amp;nbsp;6&amp;middot;25전쟁 발발. 가족과 부산으로 피란. 약 1년간 광주리 행상. 1950년대 초반 &amp;nbsp;교원이 되는 과정을 거쳐 영등포 당중</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5:56:40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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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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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4 장 - 어머니에게 묻지 않은 것</title>
      <link>https://brunch.co.kr/@@9ojT/37</link>
      <description>양평의 두 달을 함께 보낸 사람은 췌장암을 앓고 있었다. 병 이야기는 양평에 가기 약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여고 동창 모임에서 누군가 강남의 한의원을 추천했다. 어머니가 가보고 싶다고 해 함께 찾아갔다. 진맥을 받고 보약을 지어 안양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약이 도착해 한 봉지를 드셨는데 더는 못 먹겠다고 했다. 약재를 바꾸어 다시 받았지만 이</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5:52:31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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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3 장 - 열 가지 후회와 어머니의 발</title>
      <link>https://brunch.co.kr/@@9ojT/36</link>
      <description>양평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amp;ldquo;네 인생을 돌이켜보면 내가 후회되는 게 열 가지다.&amp;rdquo; 그 숫자를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뜻밖의 말이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두 가지만 들었다. 첫 번째는 내가 결혼하기 전 만났던 한 인연이었다. 어머니는 그 인연이 이어지기를 바랐지만 닿지 않았고, 훗날 내 결혼생활이 큰 굴곡을 겪자 그때를 다시 떠올렸다. 두 번째는 미국&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9Wfkegc7NlgXbr8A7kTNMzmhaM0.pn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5:47:22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guid>https://brunch.co.kr/@@9ojT/36</guid>
    </item>
    <item>
      <title>제 5 부 - 양평, 함께한 두 달 - 새소리에 밤을 새우고, 드라마를 기다리고, 아들을 놀리고, 찾아온 사람들</title>
      <link>https://brunch.co.kr/@@9ojT/35</link>
      <description>양평에서 모자가 다시 한 공간에서 지내게 된 곳으로 들어가는 길.  12장 &amp;mdash; 양평에서 만난 김영희 병원에서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짐을 꾸려 양평의 요양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네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관리사무실까지는 50미터 남짓한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오르는 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방긋 웃으며 &amp;ldquo;안녕하세요&amp;rdquo; 하고 우리를 맞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DParEt8g9cPAt9izTVSIoYVt0uA.pn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5:40:28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guid>https://brunch.co.kr/@@9ojT/35</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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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11 장 - 고궁해설사가 되고 싶었던 김영희</title>
      <link>https://brunch.co.kr/@@9ojT/34</link>
      <description>양평에서 함께 지내던 어느 저녁, 나는 어머니에게 오래 품어온 마음을 물었다. &amp;ldquo;어머님, 지금 조금만 더 젊다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예요?&amp;rdquo; 어머니는 &amp;ldquo;경복궁에서 고궁해설사를 하고 싶다&amp;rdquo;고 했다. 학생 때 전공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느냐고 다시 묻자 &amp;ldquo;고고학&amp;rdquo;이라고 답했다. &amp;lsquo;고고학&amp;rsquo;이라고 말할 때 어머니는 아주 조금 웃었다. 자랑도 넋두리도 아닌, 낮&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rcQfMBC9YSOYrRCUpnF_k70JxF0.pn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5:26:47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guid>https://brunch.co.kr/@@9ojT/34</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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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10 장 - 평생 화장대 하나</title>
      <link>https://brunch.co.kr/@@9ojT/33</link>
      <description>&amp;ldquo;평생 여자 몸으로 화장대 하나 못 가져봤다.&amp;rdquo;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해 전쯤, 지나가는 말처럼 작은 소리로 흘린 한마디였다. 사달라는 부탁도 아니었다. 혼잣말 같은 푸념이었다. 나는 당근마켓에서 작은 앉은뱅이 화장대 하나를 구했다. 1만 원이었다. 어머니 방에 놓아드렸다. 방 한쪽 벽에 화장대를 붙여 놓자 어머니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 방</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5:23:50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guid>https://brunch.co.kr/@@9ojT/33</guid>
    </item>
    <item>
      <title>제 4부 - 나이가 들어도 김영희는 김영희였다 - &amp;quot;니가 뭘 아느냐.&amp;quot; 자기 삶에 관한 말은 끝까지 직접하려 했다</title>
      <link>https://brunch.co.kr/@@9ojT/32</link>
      <description>9장 &amp;mdash; &amp;ldquo;니가 뭘 아느냐&amp;rdquo; 말년의 어머니는 시각장애 1급이었다. 언제부터 눈이 나빠졌느냐고 묻자, 1975년 아버지의 병 수발을 한 뒤부터 시력이 서서히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시력이 나빠진 뒤에도 흰 지팡이를 거의 짚지 않았다. 막내외삼촌이 고급 지팡이를 사다 드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좀처럼 들고 다니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어머니는 &amp;ldquo;남 보기</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5:19:37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guid>https://brunch.co.kr/@@9ojT/32</guid>
    </item>
    <item>
      <title>8 장 - 내 첫 번째 시청자</title>
      <link>https://brunch.co.kr/@@9ojT/31</link>
      <description>&amp;ldquo;어머님, 이것 좀 한번 들어보세요.&amp;rdquo; 매주 수요일, 영상을 올리기 전이면 나는 어머니에게 먼저 들려드렸다. 철학과 종교,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영상은 그렇게 어머니의 귀를 먼저 거쳐 세상에 나갔다. 어머니는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무조건 잘했다고 하지 않았다. &amp;ldquo;요 내용은 요렇게 고쳐라.&amp;rdquo; &amp;ldquo;저 부분은 저렇게 하는 게 낫겠다.&amp;rdquo; 나는 다시 고쳤다. 어머</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5:15:43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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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7 장 - 내가 먼저 말할 때까지</title>
      <link>https://brunch.co.kr/@@9ojT/30</link>
      <description>양평에서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amp;ldquo;내 뱃속에서 네 놈이 다 나왔는데 어찌 성격이 이렇게 다 다르냐?&amp;rdquo; 두 살 터울로 같은 집에서 자란 아들 넷을 어머니는 끝내 서로 다른 사람으로 보았다. 네 아들은 각자 다른 길을 갔다. 둘째가 서울지방법원에서 근무할 때, 어머니는 오랜 동창들과 함께 아들이 일하는 곳을 둘러보았다. 훗날 둘째가 양평에 찾아와 어머니 손에</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5:10:30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guid>https://brunch.co.kr/@@9ojT/30</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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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제 3 부 - 아내였고, 네 아들의 어머니였다 - 서운함을 말할 줄 알았고, 네 아들의 다른 성격을 웃으며 지켜본 사람</title>
      <link>https://brunch.co.kr/@@9ojT/29</link>
      <description>6장 &amp;mdash;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양평에서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 이야기를 하다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amp;ldquo;근데 니 아버지는 평생 바람을 피셨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하고 죽냐.&amp;rdquo;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더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amp;ldquo;많이 서운하셨겠네요&amp;rdquo;라는 한마디라도 건넬 걸 그랬다. 나는 더 말하지 않는 어머니 곁에서 그 이야</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5:07:47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guid>https://brunch.co.kr/@@9ojT/29</guid>
    </item>
    <item>
      <title>5 장 - 장녀는 결혼해도 장녀였다</title>
      <link>https://brunch.co.kr/@@9ojT/28</link>
      <description>월급날이면 큰외삼촌이 대문 앞에 서 있곤 했다. 안양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어머니는 월급에서 돈을 떼어 동생 손에 쥐여주었다. 막내외삼촌은 어머니가 결혼할 때 여섯 살이었다. 네 아들을 키우던 어머니는 그 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도 보탰다고 했다. 언제 얼마씩이었는지는 나도 다 알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대문 앞의 동생과 어머니 손</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5:03:58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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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4 장 - 노란 손수건 - 학교 창문밖 고사리 손에 든 노란 손수건</title>
      <link>https://brunch.co.kr/@@9ojT/26</link>
      <description>양평에서 어머니와 지낼 때 내가 물었다. &amp;ldquo;어머님, 교편생활 하실 때 어떤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amp;rdquo; 수십 년의 교직생활 가운데 어머니가 고른 것은 1975년의 한 장면이었다.  그해 아버지가 위암에 걸려 수원 성빈센트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어머니는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약 두 달 동안 아버지를 간호했다. 어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담임이 오래 자리를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yChqB5dzzw64m_B6oXe2L1QlVo0.pn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4:54:53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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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제 2 부 - 선생님과 엄마 사이 - 신문에 남은 길과 아이들의 기억에 남은 길이 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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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3장 &amp;mdash; 주일마다 백리길을 오고 어머니에게는 서로 다른 두 번의 백리길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남편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1960년 9월 8일자 경향신문 「사회와 생활과 시련과―구두 닦는 퇴역장교 김씨의 경우」가 그 길을 남겼다. 기사는 군복을 벗은 아버지가 서울역 부근에서 구두를 닦고, 비가 오면 비닐우산을 팔았다고 전한다.  1960년 9월 8일자 경</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4:49:10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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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 장 - 1956년, 한 장의 결혼사진</title>
      <link>https://brunch.co.kr/@@9ojT/24</link>
      <description>1956년 결혼사진 속 &amp;nbsp;젊은 김영희  평생 이 사진을 &amp;lsquo;부모님의 결혼사진&amp;rsquo;이라고만 보았다. 이제는 군복 입은 남자 곁의 젊은 여자를 오래 본다. 사진을 찍기 전에도 김영희에게는 학생으로, 선생님으로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 결혼 뒤 어머니는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강원도 양구로 갔고 교직을 내려놓았다. 그 선택 앞에서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듣지 못했다. 결혼&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KRvuUGDL5kzEIyY45JBgQ2mvZf4.pn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4:42:29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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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제 1부 - 어머니가 되기 전의 김영희 - 고고학을 꿈꾸던 소녀는 전쟁을 지나 교단에 섰다</title>
      <link>https://brunch.co.kr/@@9ojT/23</link>
      <description>1장 &amp;mdash; 고고학을 꿈꾸던 소녀 어머니에게 학생 때 무엇을 공부하고 싶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amp;ldquo;고고학.&amp;rdquo; 여든을 넘긴 어머니는 주저 없이 답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왜 고고학이었는지 끝까지 묻지 못했다. 1933년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난 김영희는 2남 4녀 가운데 장녀였다. 외할머니는 키가 자그마하고 조용한 분이었다. 외갓집 안방에는 서울시장 김현옥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GoQ44yno1iLcR0NCTmp-WOqabrI.pn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4:37:38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guid>https://brunch.co.kr/@@9ojT/23</guid>
    </item>
    <item>
      <title>프롤로그 - 어머니라는 이름 너머</title>
      <link>https://brunch.co.kr/@@9ojT/22</link>
      <description>어머니라는 말은 내게 너무 익숙했다. 그 한마디면 누구를 부르는지 알았고,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알았다. 밥을 먹었는지 묻는 목소리, 내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리는 사람. 오래도록 나는 그 익숙함을 어머니를 아는 일로 여겼다. 어머니에게도 내가 태어나기 전의 시간이 있었다. 나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있었고, 내 걱정과 상관없는 생각이 있었다. 알고 있</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4:27:47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guid>https://brunch.co.kr/@@9ojT/22</guid>
    </item>
    <item>
      <title>어머니이기 전에 김영희였다 - 검정 우산을 짚고 자기 길을 걸었던 한 여자</title>
      <link>https://brunch.co.kr/@@9ojT/21</link>
      <description>어머니 김영희 여사께 살아 계실 때는 당신이 내 어머니라는 것만 알았습니다. 당신이 떠난 뒤에야 한 여자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김영희. 내 어머니여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참 멋진 여자였습니다.   차례 프롤로그 &amp;nbsp;어머니라는 이름 너머  제1부 &amp;nbsp;어머니가 되기 전의 김영희 1장 &amp;nbsp;고고</description>
      <pubDate>Tue, 13 Oct 2026 14:24:11 GMT</pubDate>
      <author>김영일</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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