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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현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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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leehyunmin</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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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시드니와 서울을 거쳐, 지금은 런던에서 데이터와 AI에 기반한 프로덕트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찾아 글로 옮기고 있습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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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16:27:50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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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틀린 말? - [프리미어리그, 같이 봅시다] 1부. 유럽 리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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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2T22:25:19Z</updated>
    <published>2026-10-12T22:00:20Z</published>
    <summary type="html">영국과 잉글랜드  뉴스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그'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프리미어리그는 분명 영국에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리그는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리그가 왜 영국이 아니라 잉글랜드의 리그일까요? 답을 찾으려면 영국이라는 나라의 구조와 축구의 역사를 조금 이해해야 합니다.   연합왕국, 영국  영국의 공식 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Qkq7vY0wMl1_D5GTkpRK8HFKLgw.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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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 유럽축구, 리그가 왜 이리 많아? - [프리미어리그, 같이 봅시다] 1부. 유럽 리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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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2T22:15:31Z</updated>
    <published>2026-10-11T22:15:19Z</published>
    <summary type="html">유럽의 리그들  박지성과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 김민재는 분데스리가. 리그1을 거쳐 라리가로 간 이강인. 챔피언십의 백승호. 그리고 기성용과 차두리가 활약했던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모두 '유럽 축구'인데, 리그 이름은 다 다릅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하면서 유럽 축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 축구는 생각보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vr1yHQF5cUZflD1yQ_W1VqI_OJE.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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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같은 삼국지의 다른 의미를 생각하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에필로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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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2T22:19:11Z</updated>
    <published>2026-10-02T22: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삼국지의 인물들과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며, 유비, 관우, 장비의 의협심과 의리, 제갈량의 영민함과 충성심은 어린 시절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영감을 주기도 했다. ​ 다만 작가는 어느 순간부터 인물 중심의 서사가 당시의 사건들과 인물들이 내린 결정의 의미를 가리고 있다고 생각했고,&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0_J95maRRv0XTisoOQA8O-uPjq8.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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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방향성과 긴장을 잃는 순간 무너지기 시작한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9장. 지속성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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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02T21: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제갈량은 왜 북벌을 계속했을까?  준비  225년, 북벌을 시작하기 앞서 제갈량은 촉한 남부의 남중 지역을 평정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 지역에는 후한 시기부터 다양한 토착 집단과 지역 세력이 존재했으며, 유비 사후에는 촉한의 내부 불안을 틈타 고정&amp;middot;옹개&amp;middot;주포 등이 봉기하고 손권의 오와 결탁해 촉한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었다. 제갈량이 북쪽의 한중 전선에 집중&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FSkfERKA0Wi2zcvTgvsKmciWJrA.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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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열세인 상황에서 방어는 전략이 아니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9장. 지속성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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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1T22:00:15Z</updated>
    <published>2026-10-01T22:00: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제갈량은 왜 북벌을 선택했을까?  한계  223년 유비에 이어 유선(劉禪)이 촉한의 황제로 즉위할 당시 촉한은 시스템과 운영체제의 총체적 위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후한의 뒤를 이어 정당성을 확보한 위 제국은 손권을 포함한 지방 권력들을 새로운 위의 운영체제에 통합함으로써 시스템을 안정화시키기 시작했으며, 촉한 정권에 대한 지방 세력의 반감도 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cekR1oPui8jLAGqvTO-Hgznixh8.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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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멈추는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9장. 지속성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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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30T22:00:11Z</updated>
    <published>2026-09-30T22:00:11Z</published>
    <summary type="html">유비는 왜 이릉대전의 패자가 되었을까?  고립  219년 유비(劉備)가 한중왕(漢中王)에 즉위할 당시, 형주(荊州)에서는 관우(關羽)가 형주 북부를 확보하기 위해 양양(襄陽)과 번성(樊城)을 향한 공세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익주와 형주의 지리적 단절, 형주 남부의 개방된 지형과 취약한 경제 기반은 당시 급격히 확장된 운영체제를 관리해야 했던 유비 세력&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3O7PiUPOrla_J8ijerFcsRb0gLE.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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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장 성공한 시스템이 가장 늦게 변한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8장. 정체성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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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22:00:18Z</updated>
    <published>2026-09-29T22:00:18Z</published>
    <summary type="html">조조는 왜 통일을 하지 않았을까?  통합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기 3년 전인 216년, 조조는 위왕(魏王)의 지위에 올랐다.  조정의 최고위 관료직인 승상(丞相)의 위치에서 개혁을 이끌었던 그는 위국의 왕이 되어 제국 시스템 내부에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구축했는데, 조조의 위왕 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제국 시스템과 운영체제에 대한 거시적인 분석이 필요&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bi-8i6eOKAAd7nsNGGPR9PxZaWU.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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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능 경쟁보다 정체성 경쟁이 시작된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8장. 정체성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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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8T22:00:16Z</updated>
    <published>2026-09-28T22:00:16Z</published>
    <summary type="html">유비는 왜 한중왕에 올라야 했을까?  운영체제  214년 익주를 확보한 유비는 219년 한중(漢中)을 점령한 뒤 스스로 한중왕(漢中王)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자신의 운영체제를 완성하게 된다.  이에 앞서 조조는 213년 위공(魏公)의 지위에 올라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공고히 한 뒤, 216년에는 기주(冀州) 업현(鄴縣)을 수도로 하는 위국(魏國)의 왕위에 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_BzzeQKjzZiqjbFgVwz-5kaQMII.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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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장보다 지속 가능성이 먼저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8장. 정체성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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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7T22:00:25Z</updated>
    <published>2026-09-27T22:00: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유비는 왜 익주로 향해야 했을까?  충돌  211년 유비(劉備)는 익주(益州) 북부의 가맹(葭萌)에 주둔하지만,&amp;nbsp;유장(劉璋)의 바람과 달리,&amp;nbsp;유비의 주 목적은 한중(漢中)의 장로(張魯)에 대한 견제가 아니었다.&amp;nbsp;가맹에 주둔한 유비가 장로에 대한 군사 행동 대신 자신의 익주 내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 세력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자,&amp;nbsp;유장은 유비의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_g8r2Ej97x1i_ghbiHpSiRrRvoA.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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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제는 성공 그 이후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7장. 전환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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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7T12:05:20Z</updated>
    <published>2026-09-25T22: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적벽대전의 승자는 누구일까?  유비  적벽에서 조조에게 큰 타격을 입힌 유비는 이후 빠른 속도로 형주 남부의 4군인 무릉&amp;middot;장사&amp;middot;계양&amp;middot;영릉을 장악했다. 유비에게 형주 남부 4군은 최소한의 기반 확보라는 의미를 가졌지만, 제갈량이 설계한 융중대의 맥락에서 고려한다면 그 의미는 제한적이었다. 융중대의 첫 단계인 형주 확보는 남양과 양양, 남군을 포함한 형주 북부&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MAuWK9-mdSEJG4-q2iWkg4aeE8A.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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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실패 직후 중요한 것은 만회가 아니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7장. 전환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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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7T12:05:18Z</updated>
    <published>2026-09-24T22:00:13Z</published>
    <summary type="html">조조는 왜 적벽 패전 이후 반격하지 않았을까?  방어  허현(許縣)의 조정(朝廷)을 통해 제국의 새로운 운영체제를 구축하고 시스템을 재건한 조조였지만, 그가 형주에서 처한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유종의 항복을 통해 형주 북부를 빠르게 흡수한 조조는 남하하는 유비를 추격하며 공세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유비와 손권의 연합이 결성되면서 그는 적벽에 방어선을 설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1L4ThdQ_PI_6uR-h64tdL1QLaEU.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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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조는 단 하나의 약점으로 무너진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7장. 전환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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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7T12:05:18Z</updated>
    <published>2026-09-23T22:00:13Z</published>
    <summary type="html">조조는 왜 적벽을 선택했을까?  조건  형주(荊州) 북부를 장악한 이후 조조(曹操)의 결정에 영향을 준 첫 번째 구조적 여건은 작전 환경이었다. 넓은 평야 지대와 교통망이 발달한 중원(中原)은 대규모의&amp;nbsp;보병(步兵) 전력 활용과 동시에 기병(騎兵)의 충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장강(長江) 유역인 남부의 작전 환경은 중원과 달랐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UmMY1Vsyjsj0EZ88kbst2FLk5g0.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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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은 변화 하나가 시장의 균형을 흔든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6장. 돌파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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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22T22:00: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유비는 어떻게 조조의 계획을 바꿨을까?  통합  208년 7월, 중원(中原)과 북방을 안정시킨 한(漢) 제국의 승상(丞相)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향했다. 이어 8월 유표가 사망한 뒤, 지역 세력의 지지를 받아 형주를 계승한 유종은 조조가 완에 도착하자 그에게 항복하게 되고, 조조는 큰 전투 없이 형주에 대한 정치적 통합을 순조롭게 마무리하는 듯 보였&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bhhJStNwdN6BQVDUSwCSK3v7nAk.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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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용자는 프로덕트가 아닌 자신의 문제에 반응한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6장. 돌파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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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7T12:05:18Z</updated>
    <published>2026-09-21T22:00: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제갈량은 어떻게 양주를 설득했을까?  설계  208년 유비가 형주 남부로 이동할 무렵, 노숙은 유표의 조문을 명분으로 형주에 들어왔다. 유표 사후 형주의 정세를 파악하고, 유비와 연합해 조조의 남진에 대응할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던 노숙은 장판에서 패한 뒤의 유비를 만나 향후의 계획을 묻고, 그에게 손권과 힘을 합칠 것을 권했다. 당시 유비 세력은 존재 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E2YRMXmaHc4RxE95kKbmmUCaiJk.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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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때로는 확장을 늦추는 것이 장기적인 성장을 가져온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6장. 돌파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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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20T22:00: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유비는 왜 형주를 마다했을까?  거절  208년 조조(曹操)가 대군을 출동시킬 무렵, 형주(荊州)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의 후계를 둘러싸고 유기(劉琦)와 유종(劉琮)으로 나뉜 형주 지역 세력의 치열한 파벌 다툼 속에서, 유표는 제3의 인물인 유비(劉備)에게 형주를 맡기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비는 이미 충분한 기반 없&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bOCJuxzaxH3cY1OY4fPNRpoZFPQ.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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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목표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5장. 선택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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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7T12:00:24Z</updated>
    <published>2026-09-18T22:00:12Z</published>
    <summary type="html">제갈량은 왜 유비를 선택했을까?  융중대  조조가 중원의 안정에 집중하던 관도대전 이후 7년은 유비에게 회복과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새로운 운영체제를 통해 제국의 시스템을 재건하는 조조를 보는 유비의 인내심이 초조함으로 바뀔 무렵, 그는 지역의 명사였던 사마휘(司馬徽)로부터 세상의 형세를 아는 인물로 와룡(臥龍)과 봉추(鳳雛)를 소개받았고, 이어 서서(徐庶&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mdMt5svDBAPtmz8HWw7wR-YK_Ts.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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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장 기회는 절대적이지 않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5장. 선택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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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7T22:00: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유비는 왜 형주를 선택했을까?  선택  유비가 여남에서 재기를 준비하는 동안 관도대전은 조조의 승리로 종결되고 중원은 조조가 이끄는 허현 중앙 정부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원소의 잔존 세력은 여전히 하북에 남아 있었지만, 중원의 유비가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201년 조조가 직접 여남을 공격하자 유비는 다시 근거지를 잃게 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75YAiAnYZP6Uq3VpiovsquTMom4.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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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플랫폼은 당신의 성장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5장. 선택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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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7T12:00:21Z</updated>
    <published>2026-09-16T22:00:24Z</published>
    <summary type="html">유비는 왜 원소에게 의탁했을까?  한계  196년 서주(徐州)를 상실한 유비(劉備)는 조조(曹操)에게 의탁했다. 조조는 황건의 난 이후 여러 전장을 거치며 명성을 얻은 유비를 후하게 대우하고 예주목(豫州牧)으로 삼았다.  유비는 전한 경제(景帝)의 아들인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손을 자처해 왔으며, 이러한 황실 종친으로서의 신분은 그의 정치적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3svcJLqfYp9sMuuug90GCcuNmQo.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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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정성이 위험이 되는 순간.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4장. 구조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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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7T12:00:22Z</updated>
    <published>2026-09-15T22:00:37Z</published>
    <summary type="html">조조는 왜&amp;nbsp;7년이 지나서 형주로 향했을까?  오소  개혁을 통해 경제 기반을 구축한 조조였지만, 그가 이끄는 허현 중앙 정부의 역량은 장기간의 군사적 대치에 충분하지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병참 상황은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반면 기주의 높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원소는 본거지인 기주와 전방인 관도 사이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오소를 중심으로 하는 병참&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K3frY8aDDooeGLSl18a5SRkLBPE.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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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결국 구조 때문에 무너진다. - [삼국지 블루프린트] 제4장. 구조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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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7T12:00:22Z</updated>
    <published>2026-09-14T22:00:14Z</published>
    <summary type="html">원소는 왜 관도에서 멈췄을까?  원소  200년 초, 원소는 정예병 약 10만 명과 기병 1만 필에 이르는 대병력을 동원해 중원 남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amp;nbsp;당시 원소가 이끌고 온 병력은 조조군은 물론 당대 다른 군벌의 병력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규모였는데&amp;nbsp;이는 그가 하북에서 제국을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견고하게 준비해 왔음을 보여준다.  중원 북부의 가장&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rGt%2Fimage%2FYbYxgWoklbEGskIQejpWGlD4sgs.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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