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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누리마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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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nurimarucore</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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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먼저 떠나보낸 우리의 아이 &amp;lsquo;꼬미&amp;rsquo;를 기억하며 글을 씁니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상실과 애도의 시간, 그 후에도 계속되는 사랑과 다시 이어가는 평범한 일상을 기록합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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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06T01:45:3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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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에필로그. 꼬미가 살아 있는 미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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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52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52Z</published>
    <summary type="html">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꼬미가 살아 있는 미래를 찾고 싶다. 꼬미를 보내고 난 뒤에는 자꾸 지나간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었던 순간을 찾게 되었다. 6월 5일이 이미 늦었다면 하루 전으로, 그래도 늦었다면 더 이전으로 돌아가야 했을까.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은 자꾸 꼬미의 심장이 멈추기 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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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6부 4장. 꼬미의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 - 제6부. 우리는 여전히 꼬미의 부모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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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51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51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꼬미의 아빠다. 꼬미를 보내고 난 뒤에는 이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아이를 품에 안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함께 살아갈 시간도 시작되지 못했다. 그럴수록 내가 정말 아빠였다고 말해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정말 꼬미의 아빠였을까. 우리는 여전히 꼬미의 부모라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때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꼬미가 떠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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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6부 3장. 사진 속에 남은 꼬미 - 제6부. 우리는 여전히 꼬미의 부모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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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51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51Z</published>
    <summary type="html">꼬미와 함께했던 시간은 여러 기록으로 남아 있다. 병원에서 받아온 초음파 사진과 영상이 있고, 태동을 느끼던 날 휴대전화로 남긴 녹음 파일과 아내와 함께 찍은 만삭 사진도 있다. 임신 중에는 이런 기록들이 나중에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의 우리는 꼬미가 건강하게 태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초음파 사진과 영상은 언젠가 꼬미가 자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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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6부 2장. 꼬미가 남긴 시간 - 제6부. 우리는 여전히 꼬미의 부모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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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51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51Z</published>
    <summary type="html">꼬미의 예정일도 지나갔다. 7월 28일을 그렇게 오래 기다렸지만, 날짜가 지나간 뒤에도 우리의 생활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출근해 일을 하고 아내와 밥을 먹으며 하루를 보냈고,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하나씩 처리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꼬미를 생각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도 조금씩 생겼고, 겉으로 보면 우리는 다시 평범한 생활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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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6부 1장. 꼬미의 예정일 - 제6부. 우리는 여전히 꼬미의 부모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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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51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51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년 7월 28일 새벽이었다. 몇 시간 뒤면 출근해야 하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불을 끈 방 안에서 몇 번이나 눈을 감아보았지만 생각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고, 시간은 어느새 새벽 4시를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꼬미의 출산 예정일이다. 꼬미가 우리 곁에 있었다면 지금쯤 힘차게 울고 있지 않았을까. 날짜가 바뀌기 전인 7월 27일은 아내의 생일이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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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5부 4장. 위로라는 이름의 상처 - 제5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슬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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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51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51Z</published>
    <summary type="html">꼬미를 떠나보낸 뒤, 많은 위로를 들었다. 수술 당일에는 장인어른과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정기검진을 받으러 왔는데 아기의 심장이 뛰지 않고, 아내가 그날 바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회사에도 상황을 알려야 했기에 우리 팀 부장님께 전화를 걸어 다음 주에는 출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꼬미를 떠나보내기도 전에 우리가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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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5부 3장. 아빠는 어디에서 울어야 했을까 - 제5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슬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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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50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50Z</published>
    <summary type="html">꼬미를 떠나보낸 뒤, 나는 며칠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연차를 이틀 사용한 뒤 다시 출근했다. 회사에 돌아와 우리의 상황을 인사팀장님께 이야기했고, 인사팀장님은 그 내용을 회장님께 보고해주었다. 배우자 유산&amp;middot;사산휴가 제도가 아직 시행되기 전이었지만, 회사의 배려로 그다음 주 한 주 동안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회사가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고 쉴 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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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5부 2장.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사산 이후 - 제5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슬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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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50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50Z</published>
    <summary type="html">꼬미를 보내고 난 뒤에도 처리해야 할 일은 남아 있었다. 병원에서는 수술 뒤 나타날 수 있는 증상과 몸을 관리하는 방법, 이후 진료 일정 등을 설명해주었다. 꼬미를 보내는 절차에 관한 설명도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병실에서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아내 곁에 앉아 설명을 듣고 있었지만, 그 말들이 머릿속에 오래 남지는 않았다. 꼬미의 심장이 멈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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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5부 1장. 몸은 출산을 기억했다 - 제5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슬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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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50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50Z</published>
    <summary type="html">꼬미를 떠나보낸 뒤에도 아내의 몸은 계속 아팠다. 수술을 받은 뒤부터 아내의 가슴에는 젖이 돌기 시작했다. 먹일 아이가 없는데도 몸은 아이를 낳은 엄마의 몸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젖몸살이 오면서 가슴은 단단하게 부어올랐고, 아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고 싶어 조심스럽게 만져본 적도 있었다. 손끝으로 단단함은 느낄 수 있었지만, 실제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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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4부 5장. 부모라는 이름만 남았다 - 제4부. 아이 없이 돌아온 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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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50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50Z</published>
    <summary type="html">꼬미가 우리 곁을 떠난 뒤에도 부모라는 이름은 남아 있었다. 우리에게는 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 기억도, 밤새 울음을 달래며 잠들지 못한 시간도 없었다. 작은 체온을 느끼며 재워본 적도,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적도 없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처음부터 아이가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꼬미를 떠나보낸 뒤에는 부모라는 이름마저 내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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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4부 4장. 꼬미방에 홀로 누운 밤 - 제4부. 아이 없이 돌아온 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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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49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49Z</published>
    <summary type="html">퇴원 당일에도 나는 일을 마친 뒤 병원으로 향했다. 아내는 입원해 있던 병실이 아니라 6층에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바로 앞까지 나와 있던 아내가 보였다. 며칠 전 수술을 받은 몸으로 그 몇 걸음을 옮기는 일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급하게 가져왔던 옷과 세면도구, 병원에서 사용한 물건들이 가방에 담겨 있었다. 정</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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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4부 3장. 우리 없이 떠난 꼬미 - 제4부. 아이 없이 돌아온 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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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49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49Z</published>
    <summary type="html">꼬미는 월요일 아침 화장터로 간다고 들었다. 병원에서는 장례 절차를 진행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우리는 별도의 장례 없이 화장만 하기로 했다. 아내는 수술을 막 마친 뒤라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통증과 피로도 남아 있었다. 당시의 나는 장례 절차까지 이어가는 것보다 아내가 몸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이 아내를 위한 선택</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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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4부 2장. 안아보지 못한 아이 - 제4부. 아이 없이 돌아온 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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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49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49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꼬미를 보았지만 꼬미를 안아보지는 못했다. 아이의 얼굴을 만져보지 못했고, 작은 손을 잡아보지도 못했다. 품에 한 번 안아보아도 되는지 묻지 않았으며, 초록색 천에 감싸인 몸 가까이 손을 가져가지도 못했다. 안아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원장 선생님이 꼬미를 보여주며 내가 너무 마음 아파할까 걱정하는 듯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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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4부 1장. 꼬미를 보고 돌아온 밤 - 제4부. 아이 없이 돌아온 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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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49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49Z</published>
    <summary type="html">꼬미를 만나고 난 뒤, 나는 다시 아내에게 돌아가야 했다. 원장 선생님은 수술이 잘 끝났다고 말씀해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주 잠시 마음이 놓였다. 꼬미를 떠나보내는 상황에서 아내까지 잘못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내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수술실과 회복실은 같은 층에 있었다. 문 밖에서 기다리던 나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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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3부 6장. 평범해서 가장 행복했던 날들 - 제3부. 세 사람이 된 우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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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48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48Z</published>
    <summary type="html">꼬미가 온 뒤에도 우리의 하루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함께 쉬고 밥을 먹었고, 마트에 가거나 집 근처를 천천히 걸었다. 병원에 가서 꼬미를 확인하는 날도 있었고, 집에서 아내의 배를 바라보며 꼬미 이야기를 나누는 날도 있었다. 그때는 그런 하루가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신혼부부가 함께 보내는 평범한 시간이었고, 곧 태어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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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3부 5장. 태동, 세 사람이 된 하루 - 제3부. 세 사람이 된 우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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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7T03:40:48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도 꼬미의 태동을 느껴보고 싶었다. 아내가 &amp;ldquo;움직이는 것 같아&amp;rdquo;라고 말하면 배 위에 손을 올리거나 얼굴을 가까이 대보곤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잘 알 수 없었다. 무언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아내는 분명히 꼬미가 움직였다고 했지만, 내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은 너무 작고 희미했다. 정말 태동을 느낀 것인지, 느끼고 싶</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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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3부 4장. 부모가 되어가는 시간 - 제3부. 세 사람이 된 우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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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7T03:40:48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꼬미를 맞을 준비를 하나씩 시작했다. 아직 꼬미를 품에 안을 수도, 얼굴을 직접 볼 수도 없었지만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떤 약을 조심해야 하는지, 병원에는 언제 가야 하는지 같은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꼬미가 먼저 떠올랐다. 아내는 임신 후 커피를 줄이고 날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으며, 약도 함부로 먹지 않는 등 많은 것을 조심했다. 입덧</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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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3부 3장. 초음파 속 작은 생명 - 제3부. 세 사람이 된 우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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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7T03:40:48Z</published>
    <summary type="html">임신 후 병원에 가는 날은 꼬미를 만나는 날이었다. 꼬미는 아직 엄마 배 속에 있었기에 얼마나 자랐는지, 심장은 잘 뛰고 있는지, 손과 발은 잘 보이는지 초음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병원에 갈 때마다 아내와 함께 갔던 것 같다. 당시 회사가 4.5일제여서 금요일이나 시간이 맞는 날에는 함께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초음파실에 들어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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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3부 2장. 꼬미라는 이름 - 제3부. 세 사람이 된 우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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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8-27T03:40:47Z</published>
    <summary type="html">처음에는 그냥 아기라고 불렀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면서 우리의 하루 안에 아이의 자리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아직 그 아이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우리는 그저 우리 아기라고 불렀다. 그 말만으로도 벅찼지만,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을 부르는 말이라 설렘과 조심스러움이 함께 담겨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태명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한 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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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3부 1장. 두 줄이 가져온 기적 - 제3부. 세 사람이 된 우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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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3:40:47Z</updated>
    <published>2026-08-27T03:40:47Z</published>
    <summary type="html">결혼식을 마친 우리는 발리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이제 막 부부가 된 우리는 낯선 나라에서 며칠을 함께 보냈다. 아이를 조금 빨리 준비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내 나이도 있었고, 결혼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아이가 찾아오기를 바랐지만, 그 일이 그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정확한 시기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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