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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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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shin9</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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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지난 10년간 대학에 머물며, 사회의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논문을 작성해왔다. 이제는 직접 부딪히고 겪어낸 나의 삶의 궤적을 기록하고 싶다. 그 첫 시작이 엄마의 간병일기이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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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5T11:45:15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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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1화.&amp;nbsp;간병비,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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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7T08:44:05Z</updated>
    <published>2026-08-27T08:44:05Z</published>
    <summary type="html">앞서 언급했듯 간병비가 주는 경제적 부담은 상당하다. 병원비 이외에 한 달에 400~500만 원에 달하는 간병 비용 때문에 병원에서는 가족이 직접 휴직이나 휴학을 하고 간병에 나서는 모습도 흔히 목격하곤 했다. 우리 가족의 경우 다행히 예전에 가입해 둔 간병인 보험과 어머니의 노후 병원비 적금이 있어 당장의 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우선 180일 동안은 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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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화. 중국교포 간병인과 한국인 간병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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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4T03:16:00Z</updated>
    <published>2026-08-24T03:16:00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새로 옮긴 병원에서 소개해 준 간병인 플랫폼 업체를 통해 간병인을 구했다. 해당 업체는 매칭 중심이라 간병인에 관한 후기가 많아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아무리 평이 좋아도 환자와 맞지 않을 수 있어 후기를 100% 신뢰할 수는 없었다.  환자와 맞는 간병인을 찾기 위해 우리는 여러 번 간병인 교체를 해야 했다. 처음 온 간병</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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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9화.&amp;nbsp;누가 간병할 것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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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7T07:23:12Z</updated>
    <published>2026-08-17T07:23:12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머니의 뇌경색 발병 이후, 수많은 치료 과정을 거치며 맞닥뜨린 가장 큰 벽은 단연 &amp;lsquo;간병인 구하기&amp;rsquo;였다. 우리는 재활병원에서 간병업체를 통한 개인간병과 가족간병을 번갈아 가며 어머니의 곁을 지켜야 했다.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이 적은 간호간병통합병동은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가족에게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하지만 간병인 한 명이 여러 환자를 살펴야 하는 특</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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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8화. 결국 또다시 회복기 재활병원으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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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3T07:56:26Z</updated>
    <published>2026-08-13T07:56:26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학 재활병원의 최대 입원 기간은 6주이다. 입원 4주 차가 되자 전공의는 진료협력센터를 통해 서류를 제출하고 다음 회복기 재활병원을 알아볼 것을 권했다. 이미 1월에 여러 병원에 문의했던 터라 절차는 알고 있었다. 3월 중순에 받은 회복기 재활병원 목록에는 1월 당시 6곳 외에 몇 개 병원이 더 추가되어 있었다.  우리는 즉시 입원 가능 여부를 중심으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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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7화. 재활 치료: 한 걸음이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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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0T05:41:29Z</updated>
    <published>2026-08-10T05:41:29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학 재활병원은 최대 6주까지 입원 가능하여 우리는 5주 차에 다른 회복기 재활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곳에 있는 동안 우리 보호자들 역시 재활 치료 프로그램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재활 프로그램에 대한 보호자 교육이 무엇보다 의미 있었고, 환자의 거부와 저항에도 묵묵히 프로그램대로 치료를 시도한 의료진 덕분에 어머니의 재활 효과는 있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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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6화. 대학병원 재활의학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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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06T07:52:58Z</updated>
    <published>2026-08-06T07:52:58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머니는 첫 회복기 재활병원의 치료 과정이 통증을 유발한다며 강한 불만을 표하셨다. 대학병원 재활의학과로 전원 한다는 소식에 처음엔 가장 기뻐하셨지만, 막상 옮기고 보니 치료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자 &amp;quot;더 안 좋은 병원으로 왔다&amp;quot;라며 비난하셨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에게 병원의 우열을 가르는 기준은 '치료 과정에서의 통증과 힘듦의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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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5화. 회복기 재활병원에서의 첫 3주간의 재활 치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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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03T05:52:21Z</updated>
    <published>2026-08-03T05:52:21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재활병원에서 맞춤형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어머니 상태가  좋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입원 첫날부터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산소포화도와 혈압 이상, 불면, 통증, 그리고 재활 거부까지 무수한 현실적 문제들과 직면해야 했다. 대학병원 신경과에서는 생명 유지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어머니가 겪는 뇌경색 후유증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게 된 것은 이곳 회복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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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4화. '회복기 재활병원'이라는 낯선 이정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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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30T03:44:40Z</updated>
    <published>2026-07-30T03:44:40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머니가 대학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은 지 2주가 지나자 전공의는 전원 할 병원을 알아보라고 전했다. 동 대학병원 재활의학과로의 전원을 요청했으나, 인원 초과로 인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 직접 병원을 알아보아야 했다. 정보를 얻고자 뇌경색 환자들을 위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급성기, 회복기, 재활, 요양병원 등 생소한 개념이 가득한 가운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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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3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집중치료실에서의 23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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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27T01:26:18Z</updated>
    <published>2026-07-27T01:26:18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여곡절 끝에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신경과 집중치료실에 최종적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구급차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갔던 첫째 오빠로부터 입원을 무사히 마쳤고, 현재 신경과 의료진이 집중해서 살펴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제야 우리 모두는 이번 사태 이후 처음으로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서울에서 들려온 소식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고향 집에 남</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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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2화.&amp;nbsp;지방&amp;nbsp;광역응급의료센터에서&amp;nbsp;마주한&amp;nbsp;차가운&amp;nbsp;현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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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23T04:44:41Z</updated>
    <published>2026-07-23T04:44:41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머니는 시골 마을에서 오랫동안 홀로 거주해 오셨다. 겨울이라 유독 추위 걱정이 컸지만, 통화할 때마다 아프다는 말씀 대신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소일거리를 하고 계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외로움과 적적함을 달래기 위한 어머니만의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amp;nbsp;매일 어머니와 통화하며 가장 살뜰히 챙기던 둘째 오빠가 그날 저녁 8시 이후부터 어머니가 전화를 받</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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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화.&amp;nbsp;건강하다고&amp;nbsp;자부했던&amp;nbsp;어머니가&amp;nbsp;쓰러졌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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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23T04:41:04Z</updated>
    <published>2026-07-20T01:06:18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머니는 1945년생으로, 다섯 명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평생 쉬지 않고 농사일을 하셨다. 조금이라도 쉴 시간이 생기면 시장에 나가 농산물을 판매할 정도로 근면 성실한 삶을 사신 분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평생 팔목 골절로 3주간 입원한 것을 제외하고는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을 만큼 건강한 체질이라 자식들 모두 어머니의 건강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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