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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왕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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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양자역학으로 원효를 읽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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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0T04:51:5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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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도로 보살이 되고, 자비로 나를 구원한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4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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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9T07:00:06Z</updated>
    <published>2026-10-09T07: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자비와 기도  원효 저술에 자비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이유 힌두교 중에서도 불교와 오랫동안 영향을 주고받았던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 나와 세계가 본래 하나라는 사상)이 있다. 불교는 이와 달리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는 불일불이(不一不二)를 말한다. 20세기에 불이론 학파를 이은 힌두교 성자(聖者) 니사르가닷타 마하라지의 가르침을 빌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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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먼저 믿고, 그 다음에 치열하게 겪는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4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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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9T04:00:08Z</updated>
    <published>2026-10-09T04: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신해행증(信解行證)과 패러다임  화엄종 등 여러 불교 종파가 제시하는 인간 정신의 발전 체계는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는 네 글자로 요약된다. 새로운 세계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信), 이를 분석하고 이해하며(解), 삶의 한복판에서 몸으로 실천하고(行), 마침내 그 진리를 내 몸으로 체득하는(證) 도정(道程)이다. 인간은 믿음에서 출발해 그 믿음을 이해하려 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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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 절에는 철학과 수행과 신앙이 공존한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4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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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9T00:24:47Z</updated>
    <published>2026-10-09T00:24:47Z</published>
    <summary type="html">윤리적 함의 2. 정토신앙 2. 통불교의 전통  초기불교, 대승불교 그리고 원효의 정토신앙 믿음과 깨달음이 병립하는 관계는 대승불교에 이미 있었다. 고통의 원인을 보면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초기 불교의 가르침은 내가 나를 구원하는 길이어서 지혜를 쌓지 않은 사람에게는 쉽지 않다. 그래서 부처를 믿고, 가르침에 의지하고, 공덕을 쌓는, 보다 쉬운 길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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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염불(念佛), 관계 속에서 마음을 정렬하는 행위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3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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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8T09:00:13Z</updated>
    <published>2026-10-08T09:00:13Z</published>
    <summary type="html">윤리적 함의 2. 정토신앙 1. 정토교와 다른 점  철학자 원효와 정토신앙 앞에서 우리는 세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세계는 내 바깥에 고정된 채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겪음의 자리에서 성립한다. 그 성립의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 일심이다. 같은 세계를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는 이유는 세계를 겪는 방식의 차이에서 나온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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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열반은 살아서 휘두르는 검이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3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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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8T06:00:07Z</updated>
    <published>2026-10-08T06: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윤리적 함의 1. 열반 원효의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amp;lsquo;일심&amp;rsquo;이다. 세계는 바깥에 완성된 채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겪음 자리에서 성립한다. 이때 일심은 단순히 변치 않는 청정한 본질(진여)만을 뜻하거나, 변화무쌍한 중생의 번뇌(생멸)만을 뜻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본질과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상은 두 문을 통해 보이는 한 마음이다. 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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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효와 퀀텀의 만남은 인류사적 진화의 시작이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읽기 3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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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8T03:00:09Z</updated>
    <published>2026-10-08T03:0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자물리학과 일심 6. 폰노이만의 &amp;lsquo;무한후퇴&amp;rsquo;와 시각(始覺) 원효 철학에서 &amp;lsquo;능견상&amp;rsquo;은 미시적인 움직임에 의해 분별하는 주체가 분리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양자역학의 관점으로 보면, 이는 대상(양자계)을 측정하려는 &amp;lsquo;관측자&amp;rsquo;가 확립되는 지점이다. 양자물리학에서 &amp;lsquo;관측자&amp;rsquo;란, 인간과 같은 의식 존재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순수한 파동 상태의 양자계와 상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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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는 아주 작은 흔들림에서 시작된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3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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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8T00:00:19Z</updated>
    <published>2026-10-08T00:00:19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자물리학과 일심 5. 삼세(三細)와 양자 측정  원효는 우주 발생의 구조를 진여와 생멸, 본각과 불각, 삼세 등의 용어를 쓰면서 전개한다. 이 절에서도 이런 용어로 논리를 전개할 것이므로, 먼저 용어의 좌표를 정리해 보자. 『대승기신론』은 마음을 일심이문(一心二門)으로 표현한다. 즉, 하나의 마음을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이라는 두 측면에서 본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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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직 정해지지 않은 우주의 파동함수, 그것이 본각이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3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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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7T11:15:56Z</updated>
    <published>2026-10-07T11:15:56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자물리학과 일심 4. 확률의 구름과 진여의 바다 우리는 앞에서 원효의 일심을 탐구하면서, 그 추상성에 혀를 내둘렀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세우는 동시에 깨는 등의 난해한 개념들은 &amp;lsquo;언어&amp;rsquo;와 &amp;lsquo;상식&amp;rsquo;에 순치된 우리들의 머리를 복잡하게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 고도의 난해함이 현대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의 실험 결과들과 구조적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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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효-의상-데이비드 봄 vs 붓다-카를로 로벨리 - 양자역학으로 원효읽기 3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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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7T06:00:07Z</updated>
    <published>2026-10-07T06: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자물리학과 일심 3. 형이상학 진영 나누기 앞 절에서 우리는 원효의 일심을 '온우주를 포섭하는 통일장'으로 정의했다. 이는 중관, 유식, 화엄, 대승기신론 등 모든 불교 이론을 종합한 것이었다. 그런데 형이상학의 측면에서 뭔가를 이렇게 정의하고 보니, 이것이 '실체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원래 석가모니는 형이상학에 무관심했다. 붓</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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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심은 온우주를 포섭하는 '통일장'이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읽기 3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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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7T03:54:22Z</updated>
    <published>2026-10-07T03:54:22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자물리학과 일심 2. '실체론'에 대한 의구심 우리가 이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를 하는 이유는 원효를 읽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서 데니스 노블, 카를로 로벨리, 위르겐 하버마스,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등의 서양 과학자 및 철학자들을 먼저 소개했다. 그 다음에는 중관과 유식, 화엄 그리고 대승기신론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효의 '일심' 개념을 정</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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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능성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실이 되는가?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32(이걸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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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6T12:33:35Z</updated>
    <published>2026-10-06T12:33:35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자물리학과 일심 1. 그물의 생성 우리는 앞에서 《법성게(法性偈)》의 &amp;lsquo;상즉상입(相卽相入)&amp;rsquo; 구조를 통해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의 공간적&amp;middot;관계적 구조를 살펴봤다. 하나 안에 모두가 있고 모두 안에 하나가 있다는 구조, 나와 우주가 서로를 비추는 인드라망 세계관이 거기서 펼쳐졌다. 카를로 로벨리의 &amp;lsquo;관계적 양자역학&amp;rsquo;과 상응하는 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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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능성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실이 되는가?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3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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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6T12:26:29Z</updated>
    <published>2026-10-06T12:26:29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자물리학과 일심 1. 그물의 생성  우리는 앞에서 《법성게(法性偈)》의 '상즉상입(相卽相入)' 구조를 통해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의 공간적&amp;middot;관계적 구조를 규명했다. 하나 안에 모두가 있고 모두 안에 하나가 있다는 상즉상입의 구조, 나와 우주가 서로를 비추는 인드라망 세계관이 거기에서 펼쳐졌다. 이는 카를로 로벨리의 &amp;lsquo;관계적 양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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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과학, 철학, 종교, 수행은 서로 다르지 않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3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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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6T03:00:12Z</updated>
    <published>2026-10-06T03:00:12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자물리학과 법성게 5. 관계적 실재론의 윤리적 함의  관계적 실재론은 모든 고립된 존재를 해체한다. 그럼으로써 &amp;ldquo;개별자의 행위가 곧 세계의 관계망을 다시 직조(織造)하는 &amp;lsquo;자비(慈悲)의 우주적 현현&amp;rsquo;이 된다&amp;rdquo;라는 심오한 윤리적 함의를 갖는다. 존재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만 성립한다면, 개인 역시 고립된 자아가 아니라 거대한 인드라망의 한 항(</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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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squo;관측자 의존적 사실구조&amp;rsquo;가 곧 연기-법계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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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6T00:00:25Z</updated>
    <published>2026-10-06T00:00: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자물리학과 법성게 4. 프라우히거&amp;ndash;레너 실험 2 우리는 10~15편에서 『법성게』가 제시하는 우주론을 살펴보았다. &amp;ldquo;우주는 우주를 인식한다&amp;rdquo;, &amp;ldquo;인간과 우주는 자유의 존재다&amp;rdquo;, &amp;ldquo;사람은 우주라는 거대한 그물의 그물코다&amp;rdquo; 등의 얘기를 우리는 했었다. 28, 29편에서는 양자역학과 &amp;lsquo;위그너의 친구&amp;rsquo; 사고실험, 프라우히거-레너 실험을 통해, 사실과 실재를 관측</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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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론 안에 &amp;lsquo;관측자&amp;rsquo;를 넣으니 새 세계가 열렸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2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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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5T12:00:09Z</updated>
    <published>2026-10-05T12:0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자물리학과 법성게 2. 프라우히거-레너 실험 2018년에 발표된 &amp;lsquo;프라우히거-레너 역설(Frauchiger-Renner Paradox)&amp;rsquo; 논문은 &amp;lsquo;위그너의 친구&amp;rsquo;를 철학적 사고실험에서 물리학적 정리로 끌어올렸다. 그 실험은 다음과 같이 구성돼 있다. 실험실A에서 실험하는 앨리스와, 앨리스가 있는 실험실A 전체를 관측하는 위그너A, 실험실B에서 실험하는 밥</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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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물리학이 관측자 자신을 관측하기 시작했다&amp;nbsp;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2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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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5T09:00:15Z</updated>
    <published>2026-10-05T09:00: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자물리학과 법성게 1. 법성게와 &amp;lsquo;위그너의 친구&amp;rsquo; 이론  고전 물리학은 기계론적 세계관 하에서 진행됐다. 거기에서는 대상이 관측과 무관하게 이미 정해진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측정은 단지 그것을 숫자로 밝혀내는 과정에 불과했다. 반면 양자역학에서는 측정 이전에 물리량이 어떤 값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된다. 이로써 문제는 자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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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양자물리학은 &amp;lsquo;일심철학 구체화&amp;rsquo;의 계기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2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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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5T06:00:03Z</updated>
    <published>2026-10-05T06: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동양철학-서양과학 교류의 역사 &amp;quot;광대무변한 우주가 '하나의 마음(一心)'이다.&amp;quot; &amp;quot;우주는 우주를 인식한다.&amp;quot; &amp;quot;내가 인연을 맺을 때 우주가 태어난다.&amp;quot; &amp;quot;인간과 우주는 '자유의 존재'다.&amp;quot; &amp;quot;사람은 우주라는 거대한 그물의 그물코다.&amp;quot; &amp;quot;세계는 끊임없이 부정되고, 매 순간 창조된다.&amp;quot; 우리가 지금까지 올린 글들의 이런 제목들은 불교 형이상학, 원효 철학을 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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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집중하되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화쟁이며 중도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2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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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5T03:00:10Z</updated>
    <published>2026-10-05T03:00:10Z</published>
    <summary type="html">중도  우리는 &amp;quot;세우는 동시에 깬다, 그것이 화쟁이다&amp;quot;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이는 원래 대승불교의 가르침이다. 금강경에는 &amp;quot;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서원을 품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떤 마음을 내야 하느냐&amp;quot;라는 수보리의 질문에 석가모니가 다음과 같이 답하는 장면이 있다. &amp;quot;뭇 보살마하살들이 반드시 이와 같은 마음을 낼지어다. 존재하는 일체의 중생의 종류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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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우는 동시에 깬다, 그것이 화쟁이다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2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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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5T00:00:23Z</updated>
    <published>2026-10-05T00:00:23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승기신론소 2. 화쟁 앞에서 우리는 원효가 말하는 대승의 개념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amp;lsquo;크지도 작지도 있지도 없지도 않은&amp;rsquo; 무엇이었다. 마명이 말한 대승의 성질을 원효는 '부정의 언어'로 말했다. 대승, 중생심, 일심은 언어 이전의 개념이어서 &amp;lsquo;그것은 이것이다&amp;rsquo;라는 긍정의 언어로 표현하면 위험하다. 언어 이전의 실상은 실체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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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크지도 작지도 있지도 없지도 않은 이것은 무엇인가 - 양자역학으로 원효 읽기 2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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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4T12:00:13Z</updated>
    <published>2026-10-04T12:00:13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승기신론소 1. 대승 원효는 대승기신론을 &amp;lsquo;당대의 모든 종파의 이론을 화합시킬 수 있는 저수지 같은 책&amp;rsquo;으로 봤다. 이는 화쟁에 사용할 수 있는 잠재적 도구였다. 그리하여 원효는 &amp;lsquo;실용서&amp;rsquo;로서의 대승기신론을 &amp;lsquo;형이상학적 저술&amp;rsquo;로 다시 읽는다. 수많은 종파들의 이론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이들 쟁론들을 화합시키려면 쟁론들의 관계를 명확히 정립할 수 있어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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