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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영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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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yhkim</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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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37년 취재기자. 언론사 대표이사. 대학 교수. 언론학  및 물류경영학 박사 . 40여 년간 다른 사람 이야기만 썼습니다. 이제는 내 이야기를 씁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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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3T01:08:15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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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두희의 방에서, 쓰지 않은 장면 - 네 시간의 추궁과 기사에 남기지 않은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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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01:55:44Z</updated>
    <published>2026-10-11T01:55:44Z</published>
    <summary type="html">전화 한 통  전화가 걸려온 건 늦은 오후였다.  회사에서 내 번호를 알아냈다고 했다. 목소리는 짧고 단호했다.  &amp;quot;내일 아침 9시 30분쯤 중구 신흥동 동양아파트 앞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보시죠.&amp;quot;  무슨 일인지는 일절 알려주지 않았다. 취재와 관련된 일일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이튿날 아침, 약속한 시간에 정문 앞으로 나갔다. 남자 셋과 사진 촬영 장&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3LSEFDJLnGQmcOKYme5skW00c-g.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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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dquo;할 짓은 아니었다&amp;rdquo; - 1991년 5월, 인천의 거리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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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11T01:55:44Z</published>
    <summary type="html">담장 안, 시험공부를 하던 학생  1991년 4월 21일 저녁 7시께, 인하대 학생 이상룡(26&amp;middot;일어 2)씨는 도서관에서 중간고사 공부를 하다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비룡탑 앞을 지나던 그는 시위대를 연행하러 학교 안까지 들어온 의경들에게 왼쪽 옆구리를 차여 쓰러졌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도 아니었다.  그는 중부경찰서로 연행돼 보호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aTWIfl6KRnrCy9LXU9PbAqea6Fw.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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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 사진 속의 나 - 동료를 부축하던 나, 20년사와&amp;nbsp;30년사 속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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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11T01:55:44Z</published>
    <summary type="html">피 흘리던 동료 기자  1989년 2월 26일, 인천 답동성당.  한겨레 사진부 김선규 기자가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 백골단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코뼈가 부러졌고 얼굴에서는 피가 흘렀다.  나도 그날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다.  김 기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을 보고 달려갔다. 그를 일으켜 세워 부축한 뒤 근처에 있던 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겼다.  같은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D9vE2glxzJthfRUDtWU6qkrip8k.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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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자를 때리다 - 시위대가 아니라 기자를 겨눈 백골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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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01:55:43Z</updated>
    <published>2026-10-11T01:55:43Z</published>
    <summary type="html">기자도 폭행의 대상이었다  군사정권 시절 언론에 대한 통제와 기자에 대한 물리적 압박은 여러 형태로 이어졌다.  박정희 정권 때는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참여한 기자들이 탄압받았고, 전두환 신군부 시절에는 5&amp;middot;18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하던 기자들의 취재가 방해받고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빼앗기는 일도 벌어졌다.  제6공화국이 들어선 뒤에도 기자를 상대로 한 폭력은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uA0Fjb-9ZOKbwHf2MaTZ5qpYmHI.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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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법원에서 세 번 이기고도 - 김선형 교수, 다시 강단에 서기까지 13년 5개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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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11T01:55:43Z</published>
    <summary type="html">학장실에서 들려온 고성  1986년, 인천대 서정홍 학장 시절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학장 비서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학장실 안에서 고성이 들렸다. 초등학생을 앞에 앉혀 놓고 훈시하고 혼내는 듯한 말투였다.  이상한 것은 정작 학장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잠시 뒤 문이 열렸다. 나온 사람은 백인엽이었다. 비서실에 앉아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QHXPlumBvHooMUr2udgbLxWp1QU.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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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도소 담장 밖에서 부른 스승의 노래 - 1990년 스승의 날, 명신여고 학생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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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01:55:43Z</updated>
    <published>2026-10-11T01:55:43Z</published>
    <summary type="html">해를 넘긴 갈등  1990년 봄, 인천 북구 산곡동 명신여고는 교사 해직을 둘러싼 갈등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갈등은 전해부터 이어져 왔다. 교사협의회 활동과 교사 징계 문제를 둘러싸고 재단과 일부 교사들이 맞섰고, 학생들도 교사 고발 철회와 해직교사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과 수업거부에 나섰다.  해를 넘기면서 상황은 더욱 거칠어졌다. 교사들은 해임되거&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86sMEBfpzqh2FjGECQcPq7aVn9k.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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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학교 안에 갇힌 기자 - 명신여고에서 겪은 두 시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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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01:55:43Z</updated>
    <published>2026-10-11T01:55:43Z</published>
    <summary type="html">철마산 너머, 여러 번 찾아간 학교  나는 당시 철마산 너머 명신여고를 여러 차례 찾았다.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 재단 문제와 학내 갈등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명신여고 문제를 취재하기 시작한 것은 1989년이었다.  그해 5월 27일 학교 측은 교직원노조 결성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평교사회장 강신오 교사 등 4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그러자 5월 31일 학생&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gn8XOldQqsIIhhj43Fxyi_JceLk.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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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직 1호, 구속 1호 - 답동성당에서 시작된 작은 모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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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01:55:43Z</updated>
    <published>2026-10-11T01:55:43Z</published>
    <summary type="html">겨울, 답동성당의 작은 모임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1988년 말에서 1989년 초 사이, 추운 계절이었다.  답동성당 입구 가톨릭회관 강당에 교사 30여 명이 모였다.  그 가운데 신맹순 교사가 있었다. 이청연 초등교사, 조용명 사립학교 교사도 함께였다.  신맹순 선생은 내게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몇 해 전, 심장병으로 투병하던 인천교육대학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uDYnCQjZEQvzk2qCXtkNYVsn6_8.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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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수관이 없었다 - 축대 아래 살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스물세 사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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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01:55:43Z</updated>
    <published>2026-10-11T01:55:43Z</published>
    <summary type="html">현장으로 달려가다  축대가 무너져 아래쪽 주택들을 덮쳤다는 인천시경찰국의 상황보고를 접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도착했을 때 집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 있었다.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는 가운데 소방관과 구조대원들이 축대와 함께 쓸려 내려온 흙더미를 걷어내고 있었다. 포클레인까지 동원해 흙을 파헤치며 그 아래 묻혀 있을 주민들을 찾았다.  가&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RoSUPXFYcMCdwQW-WqlPkkqqd2A.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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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을까 - 세쌍둥이를 기억한 사람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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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01:55:42Z</updated>
    <published>2026-10-11T01:55:42Z</published>
    <summary type="html">전화벨이 울리다  1991년 3월 30일 오후, 기자실 전화가 울렸다.  &amp;quot;인천 남구 동춘동에서 불이 났는데, 아이 셋이 죽었어요.&amp;quot;  떨리는 목소리였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현장으로 달렸다. 취재의 모든 게 현장에 있다. 기자 생활 동안 몸에 밴 습관이었다.  아이 셋이 한꺼번에 숨졌다는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직접 확인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8_3lAsG8z6BldjgR1k7hQyJe97Y.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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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가 오는 날엔 약속을 취소했다 - 백기완과 노동자대학, 숨바꼭질 끝의 졸업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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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01:55:42Z</updated>
    <published>2026-10-11T01:55:42Z</published>
    <summary type="html">석바위의 막걸리 한잔  인천 석바위의 허름한 식당에서는 김치찌개 냄새가 늘 먼저 마중을 나왔다. 노동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백기완 선생이 인천에 오는 날이면 다른 약속을 미뤄두고 그 식당으로 향했다. 석바위 막걸리집에 모인 사람들은 백 선생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는 사람들이었다.  노동자대학은 1989년 봄, 오충일 목사가 설립자로 나서고 백기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t5r34NB4SgBIuMEEzIjKKR5ltT8.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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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dquo;제임스 리가 인천에 왔어요&amp;rdquo; - 1990년, 인천 노동계를 긴장시켰던 그 이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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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11T01:55:42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제임스 리가 인천에 왔어요. 우리 병원에.&amp;quot;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다급했다. 새인천병원 노조 간부였다.  제임스 리. 본명 이윤섭, 당시 서른아홉 살.  1989년 1월 울산 현대계열사 노동자 연쇄테러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던 인물이다.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나는 그 사건을 신문 지&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wW9lfzrsQaZ0UhR1JzugWmWUH9E.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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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dquo;여기서 밀리면 우리는 다 죽어요&amp;rdquo; - 변태옥씨의 양심선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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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11T01:55:42Z</published>
    <summary type="html">머리를 밀고 자료를 내놓다  1989년 11월 22일.  서울 여의도 평민당사에서 스물여섯 살 노동자 변태옥씨가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밀었다.  엿새 전 자신이 프락치로 활동했다고 양심선언한 사람이었다. 이날 그는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며 관련 자료를 하나씩 내놓기 시작했다.  변씨는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인노협) 파업자위대 제4지구대장과 대흥기계 임금투쟁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dNmO4ov3Sn2Hot5XoSf2F4_SWFw.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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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머슴이었던 그들이, 회사의 주인이 되다 - 인천 경동산업, 그 후의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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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11T01:55:42Z</published>
    <summary type="html">퇴직금 대신 넘겨받은 이름  1989년 9월, 인천 가좌동 경동산업에서 노동자 다섯 명이 몸에 불을 붙였다.  그로부터 12년 뒤, 그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회사의 주인이 됐다.  경동산업은 1960년 설립됐다. 국내 최초로 서양식 식기를 생산했고, 1980년대에는 직원이 3,500여 명에 이를 만큼 규모가 큰 회사였다. 그러나 경영진의 횡령과 경영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u2xlDC1B_44hW-JepPRhSsWDxig.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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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들은 왜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나 - 1989년 9월, 인천 가좌동에서 일어난 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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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11T01:55:42Z</published>
    <summary type="html">손가락이 한 바구니  경동산업에서는 일하던 노동자들이 손가락을 잃는 사고가 잦았다.  프레스와 연마 작업이 대부분이었던 이 공장에서는 산업재해가 워낙 잦아 노동자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돌았다.  &amp;quot;1년에 잘리는 손가락이 한 바구니.&amp;quot;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는 노동자도 많았다. 한 달에 500명 가까이 그만둘 때도 있었고, 입사한 노동자 열 명 가운데 예&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Hu8al-KlRx9hL_x5jRkd-rU24cM.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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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 집을 건너뛴 선물 - 1991년 지방선거, 아내가 전해준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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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11T01:55:41Z</published>
    <summary type="html">두 집만 건너뛰었다  1991년 5월, 내가 살던 아파트에 선물 가방이 돌기 시작했다.  여당 시의원 후보 쪽에서 같은 층 집집마다 돌린 것이었다.  그런데 두 집만 건너뛰었다.  하나는 우리 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찰관이 사는 집이었다.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었다. 교사였던 아내가 전해준 이야기였다.  &amp;ldquo;우리 집이 감시당하고 있는 거 아냐?&amp;rdquo;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ybYhhETTLGYKuWvKXn3n6ZDBpsI.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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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법정에 남은 질문 - 부천서 성고문사건, 1988년 재판과 관계기관 대책회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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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11T01:55:41Z</published>
    <summary type="html">법정에서 마주한 이름  1988년 여름, 나는 인천에서 부천서 성고문사건 재판을 취재하고 있었다.  법정을 드나들며 취재 노트를 펼칠 때마다 여백에 자꾸 같은 기관들의 이름이 적혔다.  안기부, 검찰, 경찰, 보안사&amp;hellip;.  이 기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건을 논의했다는 이야기가 재판 과정에서 나왔다.  '관계기관 대책회의.'  처음에는 이 이름이 정확히 무엇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BZ_sPrgqmAT2q3jjBCGrs6JZVcQ.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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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도지침을 떠올리다 -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관계기관 노동대책회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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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01:55:4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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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다시 시작된 질문  몇 달째 취재수첩 여백에 흐릿하게 적어두기만 했던 이름이 있었다.  &amp;lsquo;관계기관 노동대책회의.&amp;rsquo;  소문으로만 떠돌던 그 이름이 1988년 10월 19일 인천시 국정감사에서 마침내 사실로 드러났다.  유신체제 아래에서 폐지됐던 국정감사가 16년 만에 다시 열린 자리였다. 1987년 개헌으로 국정감사권이 부활했고, 이듬해 10월 5일부터 제1&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LZTfRIZFAPzpiCak4zxuDIBwGPc.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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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같은 날, 다른 시간 - 1989년 3월 25일의 인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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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11T01:55:41Z</published>
    <summary type="html">침통한 시청, 그리고 오후 3시  1989년 3월 25일, 인천시청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전 상하수도국장 이용식(41&amp;middot;당시 경기도 남양주군수)이 노온정수장 건설공사와 관련해 업자로부터 5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그날 구속됐다. 노온정수장장 이병수(49)는 뇌물 400만 원과 2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인천시 방재계장 임순택(48)은 같은 혐의로 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VLPtApkb6yrh8_KQyTOuUMx9WzI.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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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dquo;기자님, 잠깐만 기다려요&amp;rdquo; - 한 검사가 건넨 열 쪽의 자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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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01:55:41Z</updated>
    <published>2026-10-11T01:55:41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침마다 향하던 석바위  매일 아침 회사 보고가 끝나면 석바위에 있는 인천지검으로 향했다. 그날 어떤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그중 뉴스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보통은 부장검사실에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취재가 이뤄졌다. 특수부 검사들은 가끔 출입기자들과 저녁을 먹고 술 한잔씩 했다. 그 검사와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up%2Fimage%2FMQhsDp2AjcI_mDkjobcN6NPxuqo.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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