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title>홍기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iMmS" />
  <author>
    <name>eed307c5ec84498</name>
  </author>
  <subtitle>현직 저널리스트 입니다. 60~70년대 냉전의 정점이던 최북단 접경지역(고성)의 군인 자녀로 보낸 유년의 생생한 기억을 저만의 둥지에서 문학적 수필로 복원해 보고자 합니다.</subtitle>
  <id>https://brunch.co.kr/@@iMmS</id>
  <updated>2026-06-22T00:50:29Z</updated>
  <entry>
    <title>워커와 학생 구두  - 반암리 기와집 댓돌 위의 비밀</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iMmS/10" />
    <id>https://brunch.co.kr/@@iMmS/10</id>
    <updated>2026-06-26T01:31:31Z</updated>
    <published>2026-06-23T15:53:21Z</published>
    <summary type="html">반암리에는 방앗간을 하며 비교적 넉넉하게 사는 영숙이 누나의 집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부잣집이라 불렀다.  당시 이곳은 대부분 초가집이거나 간혹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영숙이 누나의 집만은 커다란 기와집이었다. 동네의 유지라 불릴 만한 집이었다.  그 시절은 막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마을은 아직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mS%2Fimage%2FKm81BX8cMcSmeZgABeQBI6LW1e8.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연작수필 9] 반암리 이야기-제3편 - 포대기를 멘 쓸쓸한 무인(武人) 김득구, 1982년 겨울의 비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iMmS/9" />
    <id>https://brunch.co.kr/@@iMmS/9</id>
    <updated>2026-06-25T15:43:56Z</updated>
    <published>2026-06-23T15:48:51Z</published>
    <summary type="html">돌이켜보면 1970년대 초반의 반암리는, 내가 그전에 살았던 화진포나 죽정리보다 또래 아이들이 훨씬 많은 동네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게는 더욱 외롭고 척박한 공간으로 기억된다.  외지에서 전학 온 군인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당 백사장으로 불려 나가 거친 아이들에게 시달려야 했던 서러움이 새겨진 곳. 반암리는 내 유년의 상처와 외로움이 가장 깊게 남아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mS%2Fimage%2FIGeLCnX0nIvj5Tv8of6gCFf9Pnk.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연작수필 8] 반암리 이야기-제2편  - 70년대 시골의 시루떡 교실과 라디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iMmS/8" />
    <id>https://brunch.co.kr/@@iMmS/8</id>
    <updated>2026-06-25T15:44:18Z</updated>
    <published>2026-06-23T15:45:14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군인 아버지의 근무 부대 이동에 따라 덩달아 고성군 관내 국민학교만 네 번을 옮겼다. 거진국민학교가 마지막으로 전학한 곳이다. 전학한 학교마다 학습 진도가 달랐다. 어떤 학교는 이전 학교보다 진도가 느리고, 어떤 학교는 진도가 더 빨랐다.  당시 거진국민학교 4학년 우리 반 교실에는 무려 일흔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이렇게 학년마다 10개 반이 있&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mS%2Fimage%2F6QtUzGxroc08TlR6MPOIo0uLKHY.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연작수필 7] 반암리 이야기-제1편 - 낯선 방호벽과 불땅이란 모래밭의 아이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iMmS/7" />
    <id>https://brunch.co.kr/@@iMmS/7</id>
    <updated>2026-06-26T01:00:30Z</updated>
    <published>2026-06-23T15:41:02Z</published>
    <summary type="html">1971년 여름, 강원도 고성군 거진면 반암리. 내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것은 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 그전까지 우리 가족은 거진읍의 북쪽에 위치한 죽정리 마을에 살았다. 나는 그곳의 죽정국민학교에 다녔다.  아버지는 최전방 화진포 일대에서 군인 상사로 근무하고 계셨다. 늘 말수가 적으셨지만 맡은 임무만큼은 묵묵히 감당하던 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mS%2Fimage%2FWoeLTkAVwQisCnbQJMCjbZ9Ly6U.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연작수필 6] 화진포의 소년  - ④ 은빛 날개의 불시착, 냉전의 경계에 선 나의 존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iMmS/6" />
    <id>https://brunch.co.kr/@@iMmS/6</id>
    <updated>2026-06-23T13:59:58Z</updated>
    <published>2026-06-23T13:59:58Z</published>
    <summary type="html">죽정리로 이사 온 후의 삶은 평화로웠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면 넓은 학교 운동장이 먼저 보였고, 머나먼 통학 길의 피로 대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amp;nbsp;시골 국민학교에서 단연 돋보인 &amp;lsquo;란도셀(Randoseru)&amp;rsquo; 가죽 책가방은 여전히 내 어깨 위에서 당당한 훈장처럼 빛나고 있었다.  1970년 12월 3일 겨울날 오후. 갑자기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mS%2Fimage%2FCg7Ryfqn7tFB-27EjJph7Xwi4Ds.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연작수필 5] 화진포의 소년  - ③ 폭풍이 지나간 자리, 스님의 예언과 새로운 시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iMmS/5" />
    <id>https://brunch.co.kr/@@iMmS/5</id>
    <updated>2026-06-23T13:57:57Z</updated>
    <published>2026-06-23T13:57:57Z</published>
    <summary type="html">1970년 7월, 한반도 동해안을 집어삼킬 듯 강타한 제2호 태풍 '올가(OLGA)'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유년의 평화가 부서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잠결에 온몸을 감싸는 서늘한 기운에 번쩍 눈을 떴다. 사방이 어두웠는데 방 안 가득 이미 시커먼 흙탕물이 출렁이며 차오르고 있었다. 어머니와 내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부엌으로 뛰어나가 문을 열었을 때,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mS%2Fimage%2FboO75-iyKtcYlaMva12jPebU8J8.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연작수필 4] 화진포의 소년  - ② 푸른 눈의 미군이 건넨 온정과 교실이라는 세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iMmS/4" />
    <id>https://brunch.co.kr/@@iMmS/4</id>
    <updated>2026-06-23T13:55:25Z</updated>
    <published>2026-06-23T13:55: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떤 날 아침에 나는 소나무 숲 속, 반달 모양의 양철 지붕을 얹은 부대 간이막사 앞을 지나고 있었다. 군복 상의를 벗어 부친 덩치 큰 미군 한 명이 나를 향해 다급하게 손짓을 했다.  &amp;quot;컴 온, 컴 온 보이! (이리 오렴, 작은 소년아)&amp;quot;  낯선 푸른 눈의 이방인이 무서워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는데 미군은 계속해서 나를 불렀다. 주춤거리며 다가가자, 그는&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mS%2Fimage%2FiArLE10oUrTpnAP1nvomG1m4brk.jp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연작수필 3] 화진포의 소년  - ① 금단의 호수, 순수의 기억</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iMmS/3" />
    <id>https://brunch.co.kr/@@iMmS/3</id>
    <updated>2026-06-23T13:52:39Z</updated>
    <published>2026-06-23T13:52:39Z</published>
    <summary type="html">화진포는 바다와 호수가 몸을 섞어 만들어진 아름다운 석호(潟湖)이자, 동해안 최북단에 외롭게 자리한 금단의 호수였다. 그곳은 시간이 멈춘 밀림 같았고, 동시에 역사의 거대한 상흔이 짓눌린 기묘한 공간이었다.  호수를 사이에 두고 한쪽 산중턱에는 바다를 굽어보는 작은 성채 모양의 김일성 별장이, 다리 건너편 호젓한 숲 속 언덕에는 이승만 별장이 서로를 매섭게&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mS%2Fimage%2FIqGo9jARWDkEwxHqPDbtMfB_ZXM.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연작수필 2] 대진 언덕집의 그림일기 - 최북단 항구마을에서 싹튼 소년의 창작 본능</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iMmS/2" />
    <id>https://brunch.co.kr/@@iMmS/2</id>
    <updated>2026-06-23T13:48:37Z</updated>
    <published>2026-06-23T13:48:37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자주 장신리의 신작로와 담임 선생님의 칭찬, 그리고 현종이가 건네주던 사탕을 떠올리곤 했다. 군인 자녀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만남과 이별 속에 살아왔지만, 그 서글픈 길 위에서 현종이가 건넨 사탕 한 알은 내 유년이 결코 외롭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 첫 번째 위로였다.  첩첩산중 장신리를 떠나 군용 GMC 트럭이 새로이 멈춰 선 곳은 대한민국 최북단, 바&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mS%2Fimage%2FXTBzX0JU1ALtcEwg-D82SKeNmLc.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연작수필 1] GMC 트럭과 눈깔사탕 - 최전방 군인 자녀가 기억하는 1968년 장신리의 이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iMmS/1" />
    <id>https://brunch.co.kr/@@iMmS/1</id>
    <updated>2026-06-27T10:40:15Z</updated>
    <published>2026-06-23T13:08:11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곳은 세상 끝처럼 멀고도 고요한 곳이었다. 당시 진부령은 차 한 대가 겨우 비켜 지나던 외길 낭떠러지였다. 한 대가 고개 꼭대기에 오르면, 헌병대 초소 부근에서 대기하던 맞은편 차가 신호에 맞춰 내려오던 길&amp;mdash;숨을 죽여야만 건널 수 있던 험한 고갯마루였다.  간혹 굴러 떨어진 차와 함께 사람이 죽어 나갔다는 소식이 바람처럼 흘러오곤 했다. 그러나 그 험준함&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MmS%2Fimage%2F5hN65IsNbo3EQzkYbGkEJAlxekE.jpg" width="500" /&gt;</summary>
  </entry>
</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