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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영철학자 이선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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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생각하게 만드는 글, 읽고 마음에 남아 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작가이자 독립연구자 이선우입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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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8T10:29:08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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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약한 떼무리 - 현대 한국사 비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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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4T07:35:04Z</updated>
    <published>2026-10-04T07:07:36Z</published>
    <summary type="html">현대 한국에서 약한 떼무리의 양상은 세대별로 달라져왔다. ​운동권 세대에서 그 약한 떼무리는 거대한 국가라는 거인에 혼자서는 나약함을 느낀 약자들이 집단 봉기를 일으킨 것으로 나타난다.그리고 요즘 세대에서의 약한 떼무리는 혼자서 용기 있고 나서고 행동하는 강자를 보며 약자들이 서로 옹기종기 모여 험담을 하고 비웃는 군집으로 나타난다. 교수의 질문에도 침&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JHP%2Fimage%2FU32-FEaKHbTJlHzFKAT1gQQ7fNw"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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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간은 유한하기에 무지하다. - 인간이라는 종의 인지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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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4T02:02:29Z</updated>
    <published>2026-10-03T23:16:40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간은 짧은 생으로 인해 세계의 지식을 전부 그리고 온전히 깨닫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내접사각형으로 세계라는 원을 전부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람들 조차 원에서 내접사각형을 뺀 활꼴을 모른다. 혹은 내접하지도 않는 원보다도 작은 원안의 도형으로 자기가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의 여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JHP%2Fimage%2Fu1G4ug6QBBebAdeXySI5Oc1Smuc"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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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산 정상에서 외치는 것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 논증, 의미부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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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3T21:06:29Z</updated>
    <published>2026-10-03T01:11:23Z</published>
    <summary type="html">산 정상에 올라서 고함쳐보는 것에는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그저 발산하고 기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아무런 이유가 없기에 공감하는 독자로 하여금 그 의미를 자기 나름대로 대응시켜볼 수는 있을 것이다.유명하면 똥을 싸도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라는 격언에 근거가 있는가? 이 문장은 그냥 규범이고 관습이다. 이유가 없지만 사람마다 자기 나름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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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죽을 수 있기에 삶은 가치가 있다. - 스스로 죽어도 되지 않는가라는 명제에서 역설적으로 삶의 긍정 연역하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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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3T00:13:05Z</updated>
    <published>2026-10-02T23:51:10Z</published>
    <summary type="html">오히려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에 인간은 비로소 삶에 열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정된 삶에 대한 애착과 언제든 자살해도 된다는 자유가 있기에 인간은 효능감을 느낀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삶에 동기를 얻는다. 그래서  ​결국 없는 무로 수렴하는 인간의 부조리에 한 인간은 평생 저항할 수 있다는 것.  ​​여기서 내가 말한 효능감은 어떤 일을 성</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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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의 대립 - 영화 &amp;lt;날씨의 아이&amp;gt;에 대한 짧은 감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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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2T03:36:06Z</updated>
    <published>2026-10-01T21:35:59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t;날씨의 아이&amp;gt;에서 주인공 호다카는 도쿄라는 거대 도시의 기후 정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히나를 제물로 바치는 사회적 합의를 거부한다.이 영화는 결국 거시적 안정을 핑계로 개인의 삶에 침투하는 미시적 억압 기제를 마주한 개별자들의 이야기였다. 그것에 맞서 개인을 지키기 위한 저항을 초자연적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 것이 날씨의 아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JHP%2Fimage%2F_IvsSHrhjB7aOcMUIjMqwtT51OY"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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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허황된 가치를 망치로 부수고 나만을 남기기. - 망치로 나의 존재를 구하는 방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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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19:40:18Z</updated>
    <published>2026-09-29T19:28:19Z</published>
    <summary type="html">국가, 민족, 돈, 이데올로기, 연대, 공공선 등 이러한 것들은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인데도 근대 이후의 세계에서는 나 자신보다도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목적이 되는 가치전도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 저것들이 중세 시대의 신의 자리를 대체해 버린 것이다.저런 허황된 가치들이 목적이 되는 것은 곧 내가 저 가치들의 종노예가 된다는 의미이다. 저&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JHP%2Fimage%2Fuufwrj1MdTP-MNHeBsQb74Hn-fg" width="4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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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식론적 회의를 벗어나 나의 존재를 구하다. - 독백: 나를 구하다. 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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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19:40:18Z</updated>
    <published>2026-09-23T16:32:59Z</published>
    <summary type="html">선험적인 명제를 형식화하려는 시도들은 결국 의미가 없지 않을까?숨을 쉰다고 인식하는 마음+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을 통한 호흡의 현상 이 모든 것의 총체가 나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규명할 수 없는 것을 사고로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기에 주관적인 것은 맞는데 인간의 사고로 그 선험성을 규명하고자 하려고 시도는 할 수 있다. 그 시도가 무의미할지라도 의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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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독에서야 비로소 마주하게 된 나. - 심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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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19:40:18Z</updated>
    <published>2026-09-23T15:48:40Z</published>
    <summary type="html">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는 고독은 다른 사람의 의중으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진실이었다. 그 차가운 진실, 언제나 그것은 나와 나 자신의 심연을 마주 보게 했다.아, 아, 그 얼음장같이 차가운 고독! 그것은 마치 망치로 나의 머리를 때리는 듯한 깨달음이었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된 것이었다. 고독이 있었기에 나는 결국 내가 될 수 있었다는 걸.나는 알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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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법은 거래 앞에 인간의 평등을 꿈꾸는가? - 민법과 정보비대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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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30T01:11:17Z</updated>
    <published>2026-09-23T12:00:29Z</published>
    <summary type="html">거래에서 제삼자가 가진 정보는 거래당사자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제삼자는 내부적인 의사나 사정을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법학자 라드브루흐는 법의 본질이 (배분적) 정의이며 정의란 곧 평등이라 한 바 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하라는 그의 말에서 나는 결국 거래 당사자와 제 3자 또한 같은 국민으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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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퓰리즘으로부터의 도피 - 나를 구하다.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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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19:40:18Z</updated>
    <published>2026-09-21T04:01:55Z</published>
    <summary type="html">정당성 있는 말이라 할지라도 다수의 폭정이 비정상이라 낙인짓는 그 순간 나의 모든 발언권은 부정된다. 다수의 대중, 그리고 여론이 언제나 옳음이라고는 감히 생각되지 않는다. 여러분은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아는가? 다수에게 영합하지 않는 모든 가치들은 내재적 정당성을 가질지라도 폐기된다는 것이다. 여론은 자유의지를 가진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며 언제나 국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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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체를 선망하는 민족성으로부터의 도피 - 나를 구하다.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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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19:40:18Z</updated>
    <published>2026-09-20T11:40:21Z</published>
    <summary type="html">동아시아권의 사람들은 예로부터 보통 두레 등 농경 공동체를 통해 함께 모여 쌀농사를 짓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로부터 유래하여 해당 문화권은 공동체에 대한 지향성이 강한 편이다. 이 문화권에서는 보통 혼자서 무언가를 지어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개인과 나 자신, 즉 주체란 것의 인지와 탐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서구 사회는 밀농사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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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수의 억압으로부터 도피하기 - 나를 구하다.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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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19:40:18Z</updated>
    <published>2026-09-19T16:59:41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중이 개인을 길들이고 없애기 위해 휘두르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낙인과 망신 주기이다. 틀린 대답을 하는, 그리고 질문하는 학생을 뒤에서 조롱하고 비웃는 비열한 문화를 생각해보라. 거기서는 어떤 개인의 인정 그리고 어떤 개인의 존재 성립 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사회나 대중이나 다수의 뜻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은 그 자리에서 죽어 있었다. 침묵하는 다수는 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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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라는 닉네임과 존재 - 나는 왜 '나'라는 닉네임을 자유게시판에서 쓰기도 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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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19:40:18Z</updated>
    <published>2026-09-18T15:19:52Z</published>
    <summary type="html">닉네임은 고정되기 때문이다.   ​고정된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시선에 포착된다는 것이자 나는 이런 이름의 노예란 것이다. 기존의 내가 지은 닉네임이 나와 유리된다 느낄수록 나를 위한 나와 타인을 위한 나의 거리는 멀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잘 지은 닉이나, 아무리 잘 지은 이름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고정되었을 때 내가 바라는 나와 보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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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예는 왜 주인보다 위대한가 - 야매로 코제브식 헤겔 철학 스케치하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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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19:40:18Z</updated>
    <published>2026-09-16T14:03:48Z</published>
    <summary type="html">1. 위대한 노예 타인의 시선에 고정된 당신은 그 순간 이미 노예상태이다. 하지만 노예 상태라는 건 나쁜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그 노예 상태에서 자기를 노동으로 변형시켜 노예가 자기 자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행위가 사회발전으로 이어진 다보는 학자도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그 노동을 통해 내가 나 자신을 만드는 행위자체가 자기 형성이 아닐까 생각</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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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 어느 시간과 공간에서든 나여야한다. - 내가 만난 악플러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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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3T12:38:33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떤 공간에서의 나는 책임과 논증 없는 수많은 인신공격과 비토를 받았다. 하지만 모든 시공간에서 나는 나를 위한 존재가 되고자했다. 나아갈 뿐이다.    1. 악플러의 비판 해체  나: 경영철학자  익명1: 반지성주의 성향의 익명 유저       2. 나는 어느 시간과 공간에서든 나여야한다.  나는 나다.    젠장... 결국 나는 이 명제로 되돌아갈 수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s%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JHP%2Fimage%2FoIMs3TwyL7L9fbDJ2dUJoYINH8s"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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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회 속에서 인간의 삶은 왜 모순이며 비극인가 - 나를 억압하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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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3T12:28:24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간은 자기모순 속에 살아간다. 인간은 타인 위에 서서 주인이 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데, 그것이 사회 속 가식과 가면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일 단독자를 억압하는 약한 떼무리들이 만든 모든 도덕률 그리고 개인을 규율하는 윤리는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자유로운 사고를 억제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사회에서 자기모순을 평생</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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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회적, 언어적 맥락은 폭력이다. - 맥락이 개인을 압도할 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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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19:40:18Z</updated>
    <published>2026-09-12T14:57:42Z</published>
    <summary type="html">맥락이라는 것을 빌미로 보이지 않는 힘은 자유로운 사고를 억제하기도 한다.상황에 맞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여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여겨지는 상황이 있다는 건 다들 알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의 암묵적 요구라는 것이 또한 자유로운 개인에게 작동하는 억압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언어학적 화용론은 강압을 포장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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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 사회 속에서 제조된 인간과 저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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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1T15:27:34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디에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미시적 권력, 사회마다의 역사와 특수성에 따라 권력의 작동의 맥은 달라진다.그러니 그 미시권력이 형성한 규율과 윤리적 통제로부터 자기가 인정하거나 되길 원하지 않는 강요에서 벗어나내 삶 속에서 되길 원하는 나 자신의 규율을 지킨다면 그것이 곧 국지적인 저항이고 나를 배려하는 게 아닐까?개인을 주체로 삼아 끝없는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s%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JHP%2Fimage%2Fz5JHEL8ZKWKuHEgyGLFMeG9iCB4"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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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상에 홀로 던져진 나, 타인의 시선에 놓여진 나 - 나는 타인에게 고정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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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0T20:51:21Z</published>
    <summary type="html">언제나 상대방의 시선은 나를 노예로 고정할 뿐이다.  상대방의 비열한 시선에 의해 나의 자유로운 존재가 고정되어버린다는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 고정된 타인을 위한 나라는 존재에서 우리는 내가 바라는 나와는 또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며 절망한다.   타인의 시선은 언제나 나와 당신의 굴종을 요구하며, 그 자신의 인정을 위한 도구로 그 시선 하에 놓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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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간이란 단어가 아닌 나라는 존재를 응시하기 - 푸코의 인간 개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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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19:40:18Z</updated>
    <published>2026-09-10T10:54:11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미 인간존재라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 의해 형성되어져 버린것이며 최근에의 르네상스 때야 인간이란건 중세-근대 전환기 권력에 의해 급조된 개념이라 푸코는 봤다. 인간이란 것은 만들어진 개념이라 본 것이다.하지만 인간이란 개념이 있기전 고대 그리스에서도 그리스의 장인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고 자기만의 조각상이라는 예술을 만들어냈지 않았겠는가? 그리스 장&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s%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JHP%2Fimage%2Fc0-pTbYfbTyy9SSLyWTJ-GorppQ"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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