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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밤한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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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밤 한 톨에서 시작된 마음으로, 화과자를 짓습니다. 의정부에서 이아뜰리에를 꾸리며, 두 나라의 결을 손끝으로 잇는 중입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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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1-01T06:26:2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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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밤 한 톨에서 시작된 길 &amp;mdash; 화과자 역사 10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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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2T01:36:47Z</updated>
    <published>2026-10-12T01:36:47Z</published>
    <summary type="html">천 년 넘게 이어진 약속, 6월 16일 화과자의 역사를 따라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지금도 살아 있는 장면 하나는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6월 16일, '와가시의 날'입니다. 이날은 가쇼&amp;middot;가조(嘉祥) 원년인 848년 6월 16일, 닌묘 천황이 신탁에 따라 16이라는 수에 맞춘 과자와 떡을 신전에 바치고 역병이 물러가기를 빌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집</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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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설탕이 사라졌던 시절 &amp;mdash; 화과자 역사 9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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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0T11:51:39Z</updated>
    <published>2026-10-10T11:51:39Z</published>
    <summary type="html">배급표가 필요해진 단맛 1937년 중일전쟁이 길어지며 군수품 생산이 우선되자, 생활필수품 생산이 압박을 받았고 설탕과 성냥 같은 물자가 배급표 제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940년(쇼와 15년)부터 설탕과 성냥이 배급제가 되었고, 그해 안에 전국으로 확대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청일전쟁 이후 대만에서 조당을 생산하고 본토에서 정제하는 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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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에모토에서 노렌분점까지 &amp;mdash; 화과자 역사 8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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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9T00:29:30Z</updated>
    <published>2026-10-09T00:29:30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에모토라는 말이 생기기까지 일본의 다도, 꽃꽂이, 노(能) 같은 전통 예능에는 유파(流派)가 있고, 그 정점에 이에모토(家元)가 있습니다. 이에모토는 유파의 정통을 잇는 가문이자 그 당주를 가리키는 말로, 일반적으로 무로마치 시대에 시작되어 에도시대에 널리 퍼졌다고 설명됩니다.  흥미로운 건 '이에모토'라는 말이 문헌에 처음 보이는 것이 1757년의 『江</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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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차 한 잔이 영지 하나의 값이었던 시절 &amp;mdash; 번외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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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7T16:01:47Z</updated>
    <published>2026-10-07T16:01:47Z</published>
    <summary type="html">영토 대신 다도구를 7편에서 센노리큐가 어떻게 천하제일의 다인이 되었는지 이야기했는데, 그 과정에는 꽤 냉정한 정치 논리가 깔려 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전국시대의 패자였지만, 일본이라는 땅은 좁았습니다. 공을 세운 가신들에게 나눠줄 영토가 늘 부족했습니다.  노부나가는 여기서 다도구를 해법으로 삼았습니다. 1568년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상락을 계기로 명</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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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밀가루 하나로 완성한 절제 &amp;mdash; 화과자 역사 7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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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7T00:12:14Z</updated>
    <published>2026-10-07T00:12:14Z</published>
    <summary type="html">천하제일의 다인이 올린 과자 센노리큐는 1522년 사카이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두를 지내며 천하제일의 다인이라 불렸습니다. 1585년 황금 다실을 설계하고 1587년 기타노 대다회를 주관할 만큼 권세의 정점에 섰던 그가 완성한 것은 다름 아닌 소박한 초암의 차, 와비차였습니다. 저는 리큐를 공부하며 이 모순에 늘 마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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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름이 생겨야 했던 이유 &amp;mdash; 화과자 역사 6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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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5T12:43:51Z</updated>
    <published>2026-10-05T12:43:51Z</published>
    <summary type="html">서양 과자가 몰려온 메이지유신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의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였습니다. 정치와 제도만이 아니라 먹는 것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케이크, 캐러멜, 푸딩, 아이스크림 같은 낯선 서양 과자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습니다.     이름이 필요해진 순간  흥미로운 건 그전까지 일본에는 그냥 '과자(菓子)'만 있었다는 점입니다. 비교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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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민의 상에 과자가 오르다 &amp;mdash; 화과자 역사 5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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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4T12:07:39Z</updated>
    <published>2026-10-04T12:07:39Z</published>
    <summary type="html">설탕의 길, 슈거로드 4편에서 남만무역을 통해 설탕이 전해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에도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설탕은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를 통해 수입되어, 나가사키 가도를 따라 고쿠라까지, 그리고 다시 교토와 오사카, 에도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유럽의 물자와 기술, 문화가 일본 각지로 흘러간 이 길을 지금은 '슈거로드'라고 부릅니다.  제가 화과자를 본격적</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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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설탕이 약이었던 시절 &amp;mdash; 화과자 역사 4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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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3T14:52:49Z</updated>
    <published>2026-10-03T14:52:49Z</published>
    <summary type="html">낯선 배가 가져온 것 16세기 중반,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총포와 그리스도교가 함께 들어온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배에는 식문화도 실려 있었습니다. 이때 전해진 과자들을 통틀어 남만과자(南蛮菓子)라고 부릅니다. 유럽을 가리키던 '남만'이라는 말이 과자 이름에 그대로 붙은 것입니다. 카스텔라, 콘페이토(金平糖), 아리헤이토(有平糖)</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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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도가 화과자를 바꾸어놓다 &amp;mdash; 화과자 역사 3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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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2T13:02:11Z</updated>
    <published>2026-10-02T13:02:11Z</published>
    <summary type="html">차, 일본에 처음 들어오다 2편에서 이야기했듯, 가마쿠라~무로마치 시대에 중국으로 유학 간 선승들은 만주와 양갱만 가져온 게 아니었습니다. 이보다 조금 앞서, 임제종의 개조인 에이사이(栄西)가 1191년 중국에서 돌아오며 차씨와 마시는 법을 함께 가져왔습니다. 그는 『끽다양생기』라는 책을 지어 차가 몸에 좋다는 것을 알리려 했는데, 당시 장군 미나모토노 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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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낯선 것을 소화해내는 시간 &amp;mdash; 화과자 역사 2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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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1T13:28:24Z</updated>
    <published>2026-10-01T13:28:24Z</published>
    <summary type="html">1편에서 말씀드렸듯, 제가 처음 만난 화과자는 아빠의 출장 가방 속 오미야게였습니다. 상자를 열면 늘 처음 보는 모양의 과자가 들어 있었지요. 어른이 되어 공부해 보니, 그 낯선 과자들의 뿌리는 상당수가 바다 건너 중국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보려 합니다.    기름에 튀긴 반죽, 화과자의 첫 외래어 견당사 시대에 일본으로 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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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받은 것과 만든 것 사이 &amp;mdash; 화과자 역사 1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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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30T12:39:15Z</updated>
    <published>2026-09-30T12:39:15Z</published>
    <summary type="html">과자라는 말이 원래 가리키던 것 내가 처음 화과자를 만난 건, 아빠의 출장 가방 속에서였습니다. 아빠가 며칠씩 집을 비우고 돌아오는 날이면, 늘 손에 무언가를 들고 계셨습니다. 오미야게. 나와 동생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건 아빠의 긴 부재에 대한 일종의 보상 같은 것이기도 했고, 동시에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맛과 모양의 과자이기도 했습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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