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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젤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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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SHEMA &amp;mdash; 듣고, 묵상하고, 기록합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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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0-04T08:16:0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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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저자의 말 - 되새김질하려면 먼저 먹어야 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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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04T13:47:01Z</updated>
    <published>2026-08-04T13:47: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처음 성경을 읽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내 손에 들어온 것은 매일 한 구절을 붙들고 묵상하도록 돕는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따라 하루에 한 구절씩 오래 바라보았다. 짧은 말씀 앞에 멈추고, 그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묻는 시간은 소중했다. 그 훈련은 성경을 빨리 지나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성경을 읽고 난 뒤, 깊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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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터진 웅덩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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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2T00:19:30Z</updated>
    <published>2026-07-12T00:19:30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0712) 성경을 읽다가 가끔 예상치 못한 구절에서 멈출 때가 있다. 예레미야 2장 13절이 그랬다.  &amp;ldquo;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amp;rdquo; (예레미야 2:13)  첫 번째 악은 납득이 되었다.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 그것은 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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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발병난 발을 담당하신 주님 - 아리랑과 로마서를 겹쳐 읽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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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9T21:46:19Z</updated>
    <published>2026-07-09T14:33:49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0709) 발병나야 할 발은 떠난 우리의 발이었다.      그 발을 주님이 가져가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나는 이 노래를 배운 기억이 없다. 그냥 알고 있었다.       버림받은 적 없는 어린 나도 이 구슬픔을 알았다.       겪지 않은 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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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한민국을 위한 기도 - 2026년 7월 7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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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7T03:39:12Z</updated>
    <published>2026-07-07T03:39:12Z</published>
    <summary type="html">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를 주님 앞에 올려 드립니다.  정부와 경제를, 미디어와 교육을, 그리고 이 땅의 가정들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제가 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행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포하는 대신 구합니다.  이 나라의 교회가 높은 자리에 오르기 전에 먼저 엎드리게 하소서.  말이 많아지기 전에 먼저 듣게 하소서.  주님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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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가복음 9장, &amp;ldquo;이런 류&amp;rdquo;를 다시 읽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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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7T03:29:38Z</updated>
    <published>2026-07-07T03:29:38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0707)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내려오셨다. 신성한 영광의 자리에서 현실의 자리로. 그 첫 장면이 논쟁과 실패였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고, 서기관들은 그것을 빌미로 변론하고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흔들린 채로 서 있었고, 무리는 그 실패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장면 전체를 향해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amp;ldquo;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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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에필로그-하나님의 레시피 안으로 - 하나님의 레시피 시리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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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6T08:48:03Z</updated>
    <published>2026-07-06T08:47:29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 시리즈를 쓰면서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남았다.  나는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가.  드리고 있지만 내 방식으로, 내 기준으로 드리는 가인의 자리인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그 안에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내 판단이 먼저 들어가 있는 사울의 자리인가.  기도하고 있지만 그 기도가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자신을 향하고 있는 바리새인의 자리인가.  아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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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스러기에서 잔치까지 - 모든 음식물이 깨끗하다면, 부스러기도 깨끗합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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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4T14:36:21Z</updated>
    <published>2026-07-04T05:59:00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049)  사도행전을 읽다가 눈길이 멈추었다.       &amp;ldquo;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amp;rdquo; (사도행전 10:15)       베드로가 본 것은 음식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 그 안에 담긴 여러 짐승들.       그런데 음식은 레위기 11장에서  정결 음식으로 나뉘는데 부정한 음식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이 문장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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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응답 없는 세월, 계산하지 않은 믿음 - 우리가 하나님을 붙든 것 같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셨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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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0T04:51:31Z</updated>
    <published>2026-07-04T04:41:29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0704)  오래 응답이 없는 시간을  지나온 분들을 생각합니다.       10년을 기다린 사람들. 20년을 붙들어 온 사람들.       응답이 더뎌도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계산하지 않은 사람들. 타협하지 않은 사람들.       &amp;ldquo;이만큼 했으니 이제는 되어야 합니다&amp;rdquo;라고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은 사람들.       &amp;ldquo;이래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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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라를 지킨 바다의 증언 - 통제영에서 양관으로, 그리고 백두산함까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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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4T04:35:07Z</updated>
    <published>2026-07-03T03:56:09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0703) [1] 1597년 9월, 명량의 물살이 우는 밤이었다. 배는 열두 척, 적선은 백삼십 척. 살아 돌아올 계산이 서지 않는 바다 앞에서 한 장군이 장병들을 모았다. 그는 문과를 준비하다 붓 대신 칼을 쥔 사람이었고,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일기를 쓰던 사람이었다. 그가 오래 읽은 책 속의 한 문장이 그날 밤 살아 있는 말이 되어 나왔다. &amp;ldquo;죽</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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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호남 800조 투자 발표 이후 - 조건부 약속, 미리 읽어 보는 미래 소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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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9T14:43:32Z</updated>
    <published>2026-06-29T11:53:44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0629) 오늘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에 80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4기를 건설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동시에 정부는 전력망 구축, 용수 공급, 교통망 확충, 정주 여건, 인력 양성까지 함께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습니다.  언뜻 보면 매우 희망적인 뉴스입니다. 그런데 기사를 읽는 내내 이상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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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엎드리지 않은 자와 직접 완성하신 하나님 - 하나님의 레시피 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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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8T16:08:23Z</updated>
    <published>2026-06-28T16:08:23Z</published>
    <summary type="html">한 세대가 약속의 땅 앞에 섰다. 정탐하고 돌아온 자들은 거인을 말했고, 회중은 밤새 울며 부르짖었다.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돌아가자고 했다. 그 자리에서 모세와 아론은 엎드렸다. 그러나 회중은 엎드리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밤새 울고 불평했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다. 들으셨다.  &amp;ldquo;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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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요나 양육 이야기 - 요나는 니느웨 변화를 위해 부름받았지만, 하나님은 요나를 변화시키고 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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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7T08:38:24Z</updated>
    <published>2026-06-27T08:36:19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나 이야기를 읽으면 하나님의 사람과 이방인이 뒤바뀐 느낌을 받는다. 소위 아이러니 기법이 보인다.  하나님의 명령에 바르게 반응한 것은 선지자 요나가 아니었다. 폭풍을 만난 이방 뱃사람들은 두려워하며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패역한 이방인 도성 니느웨는 회개하였다. 큰 물고기는 예비하신 뜻대로 요나를 삼켰고, 박넝쿨은 자랐으며, 벌레는 갉아먹었고, 뜨거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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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금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말씀 - 욥은 어떻게 고난을 견디었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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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7T02:28:03Z</updated>
    <published>2026-06-27T02:23:23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0627)&amp;nbsp;욥기 23장에는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12절이 지금 나에게 가장 도전이 된다. 욥기 23장 10절 말씀은 찬양으로도 나오고 널리 사랑받고 있다.  &amp;ldquo;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amp;rdquo; (욥기 23:10) 이 말씀은 욥기의 가장 큰 긴장을 한 문장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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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엇이 우리 마음에 울림을 주는가 - 그리스도인이 세상 광고 카피를 받아들이는 방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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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4T05:58:56Z</updated>
    <published>2026-06-24T05:58:20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0624)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문장을 듣는다. 뉴스, 드라마, 강의, 강연, 광고의 문장.  그중 어떤 문장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요즘 월드컵 시즌이 되면서 한 광고 문장을 자주 보게 된다.  Rip the script. (각본을 찢어라)  나이키가 이번 여름 내건 카피다.  아, 같은 브랜드가 오래 외쳐 온 또 다른 구호가 겹쳐 떠오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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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엎드림의 방식: 말이 끊길 때 - 하나님의 레시피 7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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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3T14:52:20Z</updated>
    <published>2026-06-23T14:52:20Z</published>
    <summary type="html">민수기 14장에는 말이 넘친다. 두려움의 말,&amp;nbsp;불평의 말,&amp;nbsp;죽겠다는 말,&amp;nbsp;돌아가자는 말.  그 말들 한가운데서말을 멈춘 두 사람이 있었다. 모세와 아론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밤새 울었다. 거인을 보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말 이후&amp;nbsp;회중 전체가 무너졌다.  &amp;ldquo;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amp;rdquo; &amp;nbsp;(민수기 14:1) 그리고 원망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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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르짖지 않은 시대: ʃibbolet/sibbolet - 사사기 12장을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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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7T03:19:40Z</updated>
    <published>2026-06-17T03:18:39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0617) 사사기 12장을 읽으면 사사 입다가 암몬을 치고 승리한 이후 예상치 못한 장면이 나온다. 형제가 형제를 죽인다. 그것도 발음 하나로 죽인다.  히브리어로는 שִׁבֹּלֶת(쉽볼렛). [에브라임 발음으로는 סִבֹּלֶת(십볼렛)] 이 말은 곡식의 이삭을 뜻하기도 하고, 흐르는 물줄기나 급류, 곧 강의 흐름을 뜻하기도 하는 평범한 단어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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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열왕기상 20장을 읽고 소설을 구상해 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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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6T05:52:12Z</updated>
    <published>2026-06-16T05:52:12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0616) 열왕기상 20장을 읽다가 문득 소설 한 편이 떠올랐다.  먼저 본문을 보자.  아람 왕 벤하닷은 북이스라엘에 사신을 보낸다. 처음 요구는 굴욕적이지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다.  &amp;ldquo;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amp;rdquo; (열왕기상 20:3)  놀랍게도 아합은 곧바로 대답한다.  &amp;ldquo;내 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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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인과 폭풍: 해석의 기준 - 하나님의 레시피 6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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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6T04:48:57Z</updated>
    <published>2026-06-16T04:48:57Z</published>
    <summary type="html">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은 이미 길이 된다. 그러나 사람은 길보다 중간에 만나는 장애물을 먼저 본다. 하나님의 기준은 인간의 기준과 다르다. 그렇다면 현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재는 기준이 내 규빗인가, 하나님의 규빗인가. 민수기 13-14장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사람들은 거인을 보았다.  공관복음에서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오른 제자들은 폭풍</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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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세벨의 땅에 먼저 비추신 빛</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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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1T14:04:01Z</updated>
    <published>2026-06-11T03:20:47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60617)  수백 년 전, 시돈에서 한 여인이 건너왔다. 그녀의 이름은 이세벨이었다. 바알도 함께 들어왔다. 우상도 함께 들어왔다. 그리고 많은 피가 흘렀다. 수백 년 뒤, 예수님은 그 길을 거슬러 걸어가셨다.  처음 공관복음을 읽었을 때 낯선 지역의 이름들이 많이 나와서 그냥 지나치듯 읽고 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로, 시돈은  이상하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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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에스겔의 줄자: 기준이 다르다 - 하나님의 레시피 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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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8T14:51:31Z</updated>
    <published>2026-06-08T14:51:31Z</published>
    <summary type="html">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 있더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지어다 하더라(에스겔 40:3-4) 에스겔은 재지 않았다. 그는 보았고, 전하라는 말을 들었다. 규빗을 정하는 것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기준 자체가 하나님의 기준과 같은가? 에스겔서는 그 질문에 시각적으로 답</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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