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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철학자이자 작가. 『존재의 수평성과 실존의 수직성』개념을 중심으로, 존재론과 실존철학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수행해왔다. 일상의 틈에서 존재의 진실을 포착하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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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5T04:44:06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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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언어의 무게에 대하여 - 자신의 신념이나 책임의 무게가 빠진 언어의 외주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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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2T01:43:27Z</updated>
    <published>2026-08-12T01:35:49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말을 뱉은 자의 삶을 따져 묻기보다, 그 말이 얼마나 잘 포장되어 유통되는지에만 관대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 언어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무게와 책임감이 자본과 기술에 의해 유예 되어 버리는 시스템 속에서, 이제 우리의 언어는 인격의 고백이 아니라 단순한 거래용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선거철 거리를 가득 메운 정제된 현수막 구호들, 법정에 제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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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행복에 대하여 - 항복은 진정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가'를 묻는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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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5T01:46:52Z</updated>
    <published>2026-06-05T01:46:52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제 행복은 우리가 숭배하는 가장 거대하고 타락한 종교가 되어버렸다. 과거에 그것은 삶의 부산물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반드시 증명해내야 할 '실적'으로 전락했다. 행복하지 못한 상태를 질병이나 패배로 간주해버리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마저 검열하는 서글픈 감시자가 된것이다. 행복해야 한다는 이 강박은 우리를 삶의 고난으로 부터 구원하는 것이 아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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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후회에 대하여 - 후회는 우리의 남아있는 길을 위한 등불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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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9T10:08:17Z</updated>
    <published>2026-05-19T10:08:17Z</published>
    <summary type="html">후회 없이 살라는 말은 달콤한 응원이지만, 때로 삶의 입체성을 지우는 일상적 평균성의 명령이기도 하다. 존재론적 삶의  문법에서 후회는 결함이 아니며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 타인의 삶과 세계에 남긴 흔적을 기어이 책임지려는 자에게만 허락된 &amp;lsquo;성숙한 통증&amp;rsquo;이다.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어쩌면 단 한 번도 진심을 다해 자신을 던져보지 않았거나, 자신의 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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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사나워진 양들에 대하여 - 사나워진 양들은 존엄을 잃어버린 사회가 배출한 부산물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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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3T04:48:32Z</updated>
    <published>2026-05-13T04:48:32Z</published>
    <summary type="html">최근 방영된 개그우먼 이수지의 역할극이 불러일으킨 폭발적인 공감은 우리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화면 속 그녀가 재연하는 갑질의 언어들은 과장된 코미디가 아니라, 누군가에겐 피눈물 나는 다큐멘터리였다. 간호사는 웃음 끝에 마스크를 고쳐 쓰며 울었고, 어린이집 교사는 그 희화화된 표정 속에서 자신의 어제를 보았다. 생명을 다루는 손길 위로 욕설이 쏟아지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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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정의로움에 대하여 - 정의는 기득권에 의한 피지배층의 순치 전략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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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1T02:26:16Z</updated>
    <published>2026-05-10T05:38:44Z</published>
    <summary type="html">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은 기만인가? 진정 선의가 보상받고 악의가 응징당한다는 이 단순한 논리는 눈속임일 뿐인가?  인간에게 정의는 기득권이 피지배층을 순치하기 위해 주입한 가장 달콤한 마취제에 불과해보인다. 현실은 단 한 번도 그 당위에 복종한 적이 없다. 오히려 세상은 원칙을 지키는 자의 살점을 뜯어 먹으며 그 비대함을 유지해 왔다.우리삶에서 역사적</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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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콜로세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 우리의 욕망은 인간적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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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0T05:05:21Z</updated>
    <published>2026-05-08T11:26:10Z</published>
    <summary type="html">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은 함성과 열광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검투사가 쓰러지고, 맹수와 인간 혹은 인간과 인간이 맞붙는 장면 앞에서 관중은 흥분했으며, 그 잔혹한 광경은 제국이 승인한 오락으로 소비되었다. 경기가 끝나면 지배자는 손가락으로 패자의 운명을 결정했다. 엄지를 아래로 내리면 죽음이었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분명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이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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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복제된 행복의 시대 - 당신의 욕망은 누구의 것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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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0T05:05:04Z</updated>
    <published>2026-03-13T08: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삶의 여정을 기록한다는 이유로표준화된 삶의 문법속에 갇혀버린것인가? 우리의 기록은 삶을 위함인가, 기록을 위함인가이제 우리의 일상은 &amp;lsquo;경험&amp;rsquo;보다 &amp;lsquo;기록&amp;rsquo;이 선행하는 기이한 풍경 속에 놓여 있다. 식당에 들어서면 음식이 뿜어내는 고유한 향기와 그 수고로움, 생명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기도 전에 스마트폰 렌즈가 선점한다.  장엄한 풍경 앞에서도 우리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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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사유가 면제된  사회 - ㅡ 우리의 권리와 확신은 어떻게 주체가 되었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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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0T05:04:45Z</updated>
    <published>2026-02-08T03:05:49Z</published>
    <summary type="html">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익숙하면서도 불안한 장면들이 반복된다. 특정 집회에서 역사적 사실이 공개적으로 부정되고,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이 신념처럼 유통되며, 종교적 언어가 정치적 판단을 대신한다. 그 과정에서 발언은 점점 거칠어지지만, 설명은 사라지고 질문은 환영받지 못한다. 무엇이 옳은지를 둘러싼 논쟁은 넘쳐나지만, 왜 그렇게 말하는지에 대한 사유의 흔적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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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SNS는 기록이 아니라 기준이 되었다 - SNS에는 특별한 일이 올라오지 않는다. 특별해 보이는 형식이 반복될 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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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1T02:26:37Z</updated>
    <published>2026-02-02T14:49:55Z</published>
    <summary type="html">처음에 SNS는 기록이었다.하루의 일부를 남기고, 지나간 순간을 저장하는 공간이었다. 무엇을 올릴지는 개인의 선택이었고, 올리지 않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지금의 SNS는 다르게 작동한다.무엇을 했는지를 남기기보다,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데 먼저 개입한다. 일상은 지나간 뒤에 정리되지 않고, 시작하기 전부터 한 번 더 생각된다. 우리는 경험하기 전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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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폭로와 감정소비 사회 - 기술문명 시대, 대화의 존재론적 위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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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7-28T06:14:39Z</updated>
    <published>2025-07-25T23:00:18Z</published>
    <summary type="html">감정은 사이버 공간에서 맥락 없이 소비되고, 이해와 공명은 사라져버렸다. 우리의 생활환경속에서 인터넷과 SNS는 이전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통의 장을 열어주었다. 이러한 발전은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되고, 또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건강한 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대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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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영웅'의 슬픔&amp;nbsp; - 반복되는 희생과 은폐의 구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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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7-21T07:50:07Z</updated>
    <published>2025-07-20T06:41: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영웅의 출현은 우리 공동체가 실패했다는 뜻이다 올해의 유난스러운 무더위에 이어 뒤늦은 폭우가 내렸다. 재난문자가 계속 쌓여가고 비극적인 소식이 미디어를 통해 전해졌다. 불안한 마음과 함께 우리가 매년 &amp;lsquo;영웅의 죽음&amp;rsquo;을 대면한다는 것이 기억났다. 위기상황에서 누군가는 우리 모두가 회피한 위험을 감당했고 그 와중에 불행히도 희생되었다는 그 뉴스 말이다.  그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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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귀엽다'라는 말이 금지된 사회 - 우리 공동체의 신뢰는 회복가능한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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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07T11:01:00Z</updated>
    <published>2025-07-16T22:00:18Z</published>
    <summary type="html">진정 우리는 이웃의 아이에게 &amp;ldquo;귀엽다&amp;rdquo;는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사회에서 그 불신의 공기를 일상의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도 괜찮은 것인가?     요즘 주변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이 유독 귀여워 보인다. 엘리베이터나 놀이터, 길가에서 스쳐가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눈에 비치는 세상의 경이로움에 대한 호기심은 삶의 활기로 가득하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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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가스라이팅 담론 - 나를 속이는 것은 누구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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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7-14T01:33:21Z</updated>
    <published>2025-07-13T08:14:19Z</published>
    <summary type="html">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amp;nbsp;그 말이 말해짐과 동시에&amp;nbsp;우리의 사유능력이 가 닿지 못하도록 생략된 것은 무엇인가? &amp;lsquo;가스라이팅(Gaslighting)&amp;rsquo;이란 단어는 타인의 현실 인식 그 자체를 교란하는 심리적 폭력의 한 방식을 의미한다. 그것은 권력관계의 불균형 속에서, 지속적이고 치밀한 방식으로 한 개인의 자아 감각 그 자체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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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나는 장례식에 가지 않는다 - 죽은 이에 대한 진정한 애도와 추모를 생각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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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7-14T06:58:17Z</updated>
    <published>2025-07-09T11:33:33Z</published>
    <summary type="html">내 죽음 이후, 애도와 추모는 장례식이 아니라 일상에서 잠시 멈추는 것, 그리고 나와의 기억에 잠시 머무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장례 문화는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의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삶의 종결로서의 죽음 앞에서 혼란과 상실을 극복하면서도, 질서를 회복하고 남은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류는 장례를 발명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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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노땅'이라는 말은 누구를 지우는가? - 시간의 쓸모와 존재의 폭력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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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7-08T08:04:00Z</updated>
    <published>2025-07-05T08:4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노땅'이라는 호칭을 통해서 그 시간의 깊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배제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amp;lsquo;노땅&amp;rsquo;이라는 말은 나이 많은 사람을 조롱하는 표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단어는 훨씬 더 깊은 폭력을 품고 있다. 그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쓸모없음으로 선언하는 말에 다름 아닌 것이다. 또한 그 쓰임새의 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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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낭떠러지 앞에 선 아이 - 부모의 교훈과 자녀의 &amp;lsquo;나 다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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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7T08:29:41Z</updated>
    <published>2025-06-26T05:19: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해는&amp;nbsp;전통과 해석의 지평이 충돌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부모는 인생에서 낭떠러지의 위험을 안다. 어느 때는 미끄러지기도 했고 또 어느 때는 가까스로 피해 가기도 하면서 그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얻은 교훈은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자녀들이 다치거나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좀 더 편하고, 안전하길 &amp;nbsp;소망하는 마음으로부터 발원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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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심심함'을 허용하지 않는 시대 - 깊은 심심함의 상실과 나 자신으로부터의 도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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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5T10:53:37Z</updated>
    <published>2025-06-24T00:23: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제 &amp;lsquo;심심함&amp;rsquo;은 게으름과 동의어가 되어 부끄러운 일이 되었고, 내면으로의 침잠이 가능한 &amp;lsquo;고독&amp;rsquo;은 실패의 낙인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이제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좀 더 정확히는 심심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게 되었다. 지하철, 횡단보도는 물론 심지어 산책길마저도 우리는 &amp;lsquo;이어폰&amp;rsquo;과 끊임없는 &amp;lsquo;스크롤&amp;rsquo;로 삶의 빈 공간을 메우고 있다. 단지 아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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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어른이 된다는 것 - 부유하는 삶에서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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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4T03:02:01Z</updated>
    <published>2025-06-21T12:48:08Z</published>
    <summary type="html">보살핌에서 책임으로의 무게중심의 이동, 나의 삶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 우리는 누구나 바닥으로부터 뜬 상태로 시작한다.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을 비롯해 모든 것을 챙겨주는 손들이 있어서 무게를 줄여주었고, 그래서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품 안에서 떠다니며 부유(浮游)할 수 있었다.   그 부력으로 우리는 다치지 않고,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다. 고요히 물 위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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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디지털 세대가 양산한 쓰레기들 - '죽음'의 소비자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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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4T03:02:58Z</updated>
    <published>2025-06-21T08:01:57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이제 타인의 죽음 마저 &amp;lsquo;실시간 콘텐츠&amp;rsquo;로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몇년 전 영국 가디언 紙는  &amp;ldquo;최초의 소셜 미디어 자살&amp;rdquo;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 청소년이 기찻길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장면을 실시간 동영상 플랫폼에 생중계한 충격적인 사건을 다뤘다.       영상은 곧 바로 SNS를 통해 급속히 퍼졌고, 실시간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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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길: 공자의 근원적 사유 - 법과 규칙 너머의 실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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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4T03:03:51Z</updated>
    <published>2025-06-18T08:48:43Z</published>
    <summary type="html">논어 &amp;lsquo;위정&amp;rsquo; 편에 한 군주가 공자에게 질문하는 장면이 있다. &amp;ldquo;우리 마을에서는 아들이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고발합니다.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amp;rdquo;라고 묻는다. 이 질문을 마주한 공자는 법의 보편성 측면에서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amp;ldquo;우리 마을에서는 아버지는 아들을 감싸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감싸줍니다.&amp;rdquo;라고 답한다. 공자의 깊은 사유를 엿볼 수 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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