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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KaeM</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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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kaem1121</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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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남자가 타국에서 살아남는 작은 이야기와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을 안겨준 한 여자의 이야기를 기록하려합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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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01T11:10:33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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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발버둥[2] - 하면 다 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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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8-14T21:03:56Z</updated>
    <published>2024-08-14T21:03:56Z</published>
    <summary type="html">내가 계약한 집은 소위 &amp;lsquo;깡통집&amp;rsquo;이었다. 가구는 당연히 없었고 화장실 부엌도 사실 내가 스스로 설치했어야 했다. 다행히도 전 세입자가 부엌은 그대로 놓고 가는 바람에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나는 꽤 오랜 기간 싱글 사이즈 침대보다 큰 곳에서 자본 일이 없었다. 이십 대 후반쯤 독일에 와서도 항상 룸메이트랑 살다가 드디어 혼자 살 집을 구했을 때쯤 나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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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발버둥[1] - &amp;lsquo;스스로&amp;rsquo;라는 것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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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8-03T12:19:33Z</updated>
    <published>2024-08-03T12:19:33Z</published>
    <summary type="html">독일에서 첫 인연과의 끝남은 많은 걸 바꾸게 했다. 그녀는 이별 후 여러 번 찾아와 다시 만날 것을 청했지만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다시 만나게 되면 안 그래도 위축되어 있는 나의 삶이 그녀의 아래 완전히 종속되어 버릴 것만 같았으니.  집을 자주 비우는 사이 내 룸메이트이자 오랜 친구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 그의 여자친구는 비어있는 나의 공간을 채워줬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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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첫 인연 - 쭈그려 있으면 모든 것이 크게 보인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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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8-01T23:39:17Z</updated>
    <published>2024-08-01T21:18:56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렇게 아르바이트와 독일어 공부, 내 전공 연습을 병행하며 바쁘게 살았다. 같이 일하면서 친분이 생긴 새로운 친구들과 가끔의 여유 시간에 만나 서로 얘기도 나누며 일하는 곳이 같기에 할 수 있는 &amp;lsquo;뒷담화&amp;rsquo;도 나누며 급격하게 친해졌다.  그러다 한 누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나랑은 달리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이었는데, 연출 공부를 하러 왔단다. 삶 자체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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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홀파트(3) - 구렁텅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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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17T21:59:36Z</updated>
    <published>2024-07-17T21:59:36Z</published>
    <summary type="html">한 동양 아저씨가 건넨 명함엔 Ryotei-893이라는 이름과 개인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퇴근 후 찾아본 그곳은 퓨전 일식당이었는데, 올라온 사진만 봐도 굉장히 고급스럽고 음식가격도 꽤 나갔었다. 당시에 나는 내 본업인 성악에 굉장히 위축이 많이 된 상태에 매일 같이 소리 지르는 사장의 타박에 스스로에게 자신이 별로 없었다. &amp;lsquo;독일어도 아직 잘 못하는 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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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실 전 성악하러 독일에 왔어요 - 내 눈을 사로잡는 게 너무 많았던 학창 시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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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12T00:19:59Z</updated>
    <published>2024-07-12T00:19:59Z</published>
    <summary type="html">주구장창 식당 아르바이트 얘기만 썼기에 잊고 계신 독자분들이 계시겠지만, 나는 독일에 성악을 더 공부하기 위해 나왔다. 아니, 사실 도피 유학이라고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헛바람이 들어서 춤만 춰댔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남학생으로 산다는 것, 그것도 인싸로 사는 것은 정해져 있다. 재밌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싸움을 잘하거나, 차은우 배우처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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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홀파트(2) - 이것은 기회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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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11T21:36:09Z</updated>
    <published>2024-07-11T21:36: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장에 대한 동료들의 분노는 생각보다 깊이 박혀있었다. 나도 사장을 비난하는 생각이 커졌고 그래도 내가 열심히 해서 얻어낸 팁인데 홀랑 다 빼앗길 순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장이 홀에 나와서 직원들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하는 행태가 무슨 음지에 숨어 양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뒷골목 조직 보스 같았다. 실상은 한&amp;bull;중 드라마 전부를 섭렵하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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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홀 파트 (1) - 계약서가 없다는 것은 자유롭지만 그만큼 부당한 것도 많다는 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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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10T15:12:33Z</updated>
    <published>2024-07-10T15:12:33Z</published>
    <summary type="html">식당 홀 서빙에서의 독일과 한국의 차이라면 자세의 높낮이 차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amp;lsquo;손님이 왕&amp;rsquo;이라는 모토가 오랜 세월 당연하게 자리 잡았고 서버도 고객도 그에 맞는 태도와 거리를 맞춘다. 독일은 고객도 사람, 서버도 사람이라는 의지에서 시작할 수 있다. 나의 업무가 당신에게 주문을 받고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지만 굳이 저자세를 고수할 이유는 없다는 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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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에이스 - 홀과 주방을 이해한 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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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10T09:35:56Z</updated>
    <published>2024-07-10T08:39:36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주방에서 제대로 일해 본 것은 이곳이 처음이라 홀서빙 아르바이트 할 시절에는 언제나 주방의 업무 수행 능력을 비난하곤 했다. &amp;lsquo;음식은 왜 늦게 나오지&amp;rsquo; &amp;lsquo;왜 추가 요청사항대로 조리를 안 한 거지&amp;rsquo; &amp;lsquo;손님 응대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고작 자기 일만 잘하면 되는 걸 그리 못하나&amp;rsquo; 등등.  그러나 주방에서 일을 시작하니 홀파트가 어쩜 그렇게 한량같이 보였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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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집에 가서 쉬어라 - 주방은 나에겐 지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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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10T00:34:42Z</updated>
    <published>2024-07-10T00:34:42Z</published>
    <summary type="html">한국에서 나의 요식업 아르바이트 경력은 대부분 &amp;lsquo;홀 서빙&amp;rsquo;이었다. 주방 보조라 해봤자 무거운 식자재 이동과 무한에 가까운 설거지의 연속이었기에 재료 손질, 조리 등 요리사의 영역에서 나는 무경력자라 할 수 있겠다.  독일 한식당, 그것도 조선족 사장 밑에 중국 주방장, 베트남 부주방장 그리고 나. 이런 재밌는 구조에선 주방 보조의 영역이 훨씬 넓었다. 총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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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 단지 살아남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을 누린다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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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10T02:45:47Z</updated>
    <published>2024-07-09T22:09:42Z</published>
    <summary type="html">해외 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단연코 &amp;lsquo;현지 언어&amp;rsquo;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용어인 영어를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많은 나라에서 살 수 있지만, 공용어라는 것은 현지를 적응하는 데에 필수적 언어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영어권 나라, 관광지에 특화된 일부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각 나라의 &amp;lsquo;현지 언어&amp;rsquo; 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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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긍정적 그리고 부정적 - 삶의 색깔은 본인이 정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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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04T21:12:04Z</updated>
    <published>2024-07-04T21:12:04Z</published>
    <summary type="html">독일에 소재한 한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꼭 &amp;lsquo;유학생&amp;rsquo;만이 해외에 나와 타향살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누구는 단지 한국의 삶이 싫어서 도피로 나왔고, 누구는 더 큰 꿈을 꾸고자 유학 목적으로 나왔지만 학교 합격의 문턱을 못 넘어 있었고, 누구는 단지 헬조선을 외치며 외국에서의 &amp;sbquo;dream comes true&amp;lsquo;를 품고 살고 있더라.  사람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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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간절함은 상대적인 것 -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해왔던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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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04T10:20:18Z</updated>
    <published>2024-07-04T10:20:18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squo;니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amp;rsquo;  이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거렸다. 사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건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돌아갈 집이 있고, 어지간히 큰 문제가 아닌 이상 나라에서 &amp;lsquo;퇴출&amp;rsquo;당한 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사장이 그만 나오라 말한다? 에이, 재수 없네. 하고 다른 자리를 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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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학을 빙자한 일자리 찾기(3) - 이상한 조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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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03T23:07:00Z</updated>
    <published>2024-07-03T23:07:00Z</published>
    <summary type="html">한식당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있는 주방에는 한국인이 나뿐이었다. 한국인을 싫어하지만 한식을 파는 조선족 사장. 한국을 가본 적이 없는 중국인 총 주방장. 10남매를 먹여 살리려 혼자 독일에 넘어온 베트남 청년. 이 사람들을 보조해줘야 하는 나.  아이러니 한 건 이들 중 대화가 통하는 건 사장뿐이었다. 총주방장은 중국어만 할 줄 알고, 베트남 친구는 독어만 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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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학을 빙자한 일자리 찾기(2) - 목적의 상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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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03T16:25:00Z</updated>
    <published>2024-07-03T16:25:00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살아왔었다.  내가 독일에 나와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기 전 까지는. 학생일 때까지는 그들은 부모의 그늘이 어디까지 뻗쳐져 있는지 깨닫지를 못한다. 그러나 생각 외로 우리의 부모님들은 사소한 많은 것까지 책임을 지워주고 계셨고, 나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부모님도 여러 차례의 사업 실패로 인해 더 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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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학을 빙자한 일자리 찾기 - 내가 그곳에 있는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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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03T15:35:26Z</updated>
    <published>2024-07-03T15:35:26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람이 살면서 요식업에 관련하여 일을 하는 건 흔할 수 있는 경험이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였지만, 집안의 반대로 인해 이렇다 할 경제적 지원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그동안 해온 것이 아까워서 &amp;lsquo;독일로의 유학&amp;rsquo;을 생각했던 것인데, 유학을 가기로 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은 순간 내가 찾아본 것은 &amp;lsquo;현지 아르바이트 자리&amp;rsquo;였다. 보통은 홀 서빙을 지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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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동양 남자의 독일 생존기 - 이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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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03T09:13:48Z</updated>
    <published>2024-07-03T09:13:48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사실 성악 석사를 위해 독일로 넘어왔다.  하지만 성악을 포기한 나는 할 줄 아는 것도, 돈도 없었기에 앞으로 뭘 먹고살아야 하나 앞이 깜깜했고, 그나마 독일어는 열심히 했기에 나는 Restaurantfachmann(요식업 중 서비스 분야)이라는 아우스 빌둥(직업 교육)을 선택했다.(보통 동양인들은 요리 쪽으로 많이 간다)  나를 받아준 곳은 베를린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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