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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프제K</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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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익숙한 풍경 뒤에 숨은 질문들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 너머를 생각하는 기록이 되고 싶습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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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09T13:09:3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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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넓게 파야 깊이 판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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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20T11:53:56Z</updated>
    <published>2026-07-20T11:49:56Z</published>
    <summary type="html">삽으로 땅을 파 본 사람은 좁게 파기 시작한 구멍이 결코 깊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삽 하나 겨우 들어갈 만큼만 파고 내려가면 얼마 못 가서 벽이 무너지고, 팔을 휘두를 공간이 없어지고, 파낸 흙을 밖으로 올릴 자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은 땅일수록 땅 위의 입구가 넓다. 멋을 부리려고 넓게 판 것이 아니라, 넓지 않으면 깊이 내려갈 수가 없</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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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시 보게 되기까지 - 어린 왕자와 준비되지 않은 눈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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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1T07:18:28Z</updated>
    <published>2026-07-11T07:09:32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느 날 아침, 마당의 화분에 물을 주다가 이파리 하나가 내가 미처 알지 못한 방향으로 이미 한참이나 자라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화분은 지난 한 해 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고, 나는 거의 매일 그 앞을 지나며 물을 주었다. 셀 수 없이 바라보았을 그 화분이었지만, 그 아침 햇빛이 이파리의 잔털을 비추기 전까지 나는 그것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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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말로 다 표현이 안 된다는 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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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8T06:47:25Z</updated>
    <published>2026-07-08T06:47: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이 말을 자주 한다. 저녁 하늘의 색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을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에서 이전에 없던 그늘을 읽었을 때, 어떤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설명해 보려다 이내 포기하며 말한다.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돼. 이 문장은 겸손하게 들리고, 어떤 순간에는 제법 시적으로 들려서, 마치 우리 안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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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 아이는 빈 그릇이 아니었다 - 받아쓰기를 배우는 동안, 아이가 조용히 내려놓은 것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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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1T14:46:35Z</updated>
    <published>2026-07-01T14:46:35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주 오래전, 한 번 만나보라는 지인의 부탁으로 한국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한 8살 아이 하나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제 나라 말로는 긴 이야기를 막힘없이 풀어놓았고, 노래도 여러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 불렀다. 그런데 한글 받아쓰기 앞에만 앉으면 자꾸 틀렸고, 그럴 때마다 몸이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나는 사실, 아이의 한국어 실력을 걱정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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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완벽하게 쓰려다 한 줄도 못썼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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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30T14:33:16Z</updated>
    <published>2026-06-30T11:35:16Z</published>
    <summary type="html">빈 화면을 마주한 채로 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커서는 같은 자리에서 깜빡이고 있었고, 나는 첫 문장을 끝내 쓰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쓸 수가 없었는데, 머릿속에는 이미 완성된 글의 모습이 또렷하게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독자의 마음을 단번에 붙들고, 중간에서 한 뼘쯤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가고, 마지막에 이르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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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가 쓴 글은 언제나 절반쯤 타인의 것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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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7T12:21:29Z</updated>
    <published>2026-06-27T12:21:29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이를 혼내다가 문득 멈칫한 적이 있는가. 방금 내 입에서 튀어나온 그 말이, 오래전 부모님이 내게 똑같이 하시던 말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분명 내 입으로 한 말인데, 그 말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글도 똑같다. 오래 다듬은 문장 하나를 완성하고 뿌듯해하다가도, 어딘가 낯익다는 느낌이 슬그머니 끼어든다. 이 표현을, 이 리듬을 나는 분명 어디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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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가능이 의미하는 것은 불가능을 시도하는 것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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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7T09:08:09Z</updated>
    <published>2026-06-27T09:08:09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그건 불가능해.&amp;quot; 살면서 이 말을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말이 맞기 때문이다. 더 갈 수 없으니 돌아서라는 신호로, 그 일을 거두라는 정중한 권유로. 어떻게 보면, 이 말은 꽤 친절한 얼굴을 하고 있다. &amp;quot;괜히 고생하지 마&amp;quot;, &amp;quot;현실적으로 생각해&amp;quot;, &amp;quot;다 너 위해서 하는 말이야.&amp;quot; 그렇</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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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과거를 물어보는 진짜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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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6T08:24:20Z</updated>
    <published>2026-06-26T08:24:20Z</published>
    <summary type="html">누군가의 이름을 처음 들을 때 우리가 거의 반사적으로 던지는 질문이 있다. &amp;quot;그 사람, 어떤 사람이에요?&amp;quot; 말은 둥근데, 그 둥근 표면 아래에는 뾰족한 의도가 숨어 있다. 우리가 정말 듣고 싶은 것은 그가 어떤 선을 행했는가가 아니라, 혹시 그에게 무슨 일이 있지는 않았는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평판은 한 귀로 흘려보내면서도, &amp;quot;그런데 예전에&amp;quot;로 시작</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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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시, 그 아침으로 - 보이는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 14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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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7:09:14Z</updated>
    <published>2026-06-25T06:58:50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제 처음의 그 아침으로 돌아가자. 글을 열며 우리가 함께 보았던 장면, 침대에서 손을 뻗어 알람을 끄려다 무심코 알림을 쓸어내리던 그 아침으로. 거기 그 문장이 있었다. 오늘 미세먼지 농도 나쁨, 야외활동을 자제하세요. 우리는 그것을 2초도 안 되어 읽고 잊었으며, 마스크를 챙길 생각도 없이 평소와 똑같은 차림으로 문을 열고 나섰다. 그때 우리는 그 장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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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 보이는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 13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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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7:09:14Z</updated>
    <published>2026-06-25T06:56:46Z</published>
    <summary type="html">앞 장까지 우리는 공포의 편식이 어디서 오는지를 다 들여다보았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새겨진 오래된 성향에서 오고, 동시에 그 성향을 읽어 이용하는 바깥의 손길에서도 온다는 것을 보았다. 원인을 아는 일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원인을 아는 것과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다른 일이고, 이 책이 진단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이제 마지막 물음으로 건너가야 한다. 알았으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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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누가 공포를 설계하는가 - 보이는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 12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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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7:09:14Z</updated>
    <published>2026-06-25T06:54:54Z</published>
    <summary type="html">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위험을 골라 두려워하는 이 일을 마치 우리 마음이 저절로 빠지는 함정인 것처럼 이야기해 왔다. 보이는 것에 곤두서고 익숙한 것에 무뎌지며 얼굴 없는 것을 흘려보내는 그 모든 기울어짐이, 인간이라는 존재에 새겨진 오래된 성향에서 나온 것처럼 말해왔다. 그리고 그 말의 절반은 옳다. 그러나 절반일 뿐이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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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쩔 수 없다는 말 - 보이는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 11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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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7:09:14Z</updated>
    <published>2026-06-25T06:53:14Z</published>
    <summary type="html">앞의 두 장에서 우리는 책임이 빠져나가는 두 갈래 길을 보았다. 가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빠져나가는 길과, 피해자가 선택했다고 여겨져 빠져나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 두 길의 끝에는 같은 종착지가 있다. 거기에 이르면 위험은 더 이상 누구의 탓도 아니게 되고, 그저 그렇게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그 종착지를 가리키는 말이 있다. 어쩔 수 없다는 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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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quot;네가 선택했잖아&amp;quot; - 보이는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 10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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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7:09:13Z</updated>
    <published>2026-06-25T06:51:29Z</published>
    <summary type="html">앞 장에서 우리는 얼굴 없는 가해가 어떻게 책임을 빠져나가는지를 보았다. 탓할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분노가 일어서지 못하고, 분노가 없으면 책임도 규제도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책임을 빠져나가는 길은 얼굴을 감추는 것 하나만이 아니다. 가해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는데도, 아니 피해자의 얼굴까지 또렷이 보이는데도, 우리가 기꺼이 책임을 묻지 않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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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범인이 있어야 분노한다 - 보이는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 9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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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7:09:13Z</updated>
    <published>2026-06-25T06:49:45Z</published>
    <summary type="html">여기까지 우리는 우리 안의 일을 들여다보았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흘려보내는지, 그 다섯 갈래의 식성이 모두 우리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위험은 한 사람의 마음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위험은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 안에서 누군가의 탓이 되고 누군가의 책임이 되며, 바로 그 지점에서 전혀 새로운 문제가 자라난다. 우리가 위험을 가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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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천히 오는 것은 위험하지 않다는 착각 - 보이는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 8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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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7:09:13Z</updated>
    <published>2026-06-25T06:48:19Z</published>
    <summary type="html">앞 장에서 우리는 얼굴 없는 위험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빠져나가는지를 보았다. 그런데 위험이 우리를 잠재우는 길은 그것 하나만이 아니다. 똑같은 크기의 위험이라도 그것이 다가오는 속도에 따라 우리의 마음은 곤두서기도 하고 잠들기도 한다. 갑자기 닥치는 것에는 온몸이 곤두서지만, 천천히 스며드는 것 앞에서는 좀처럼 경보가 울리지 않는다. 마지막 눈금에는 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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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숫자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 보이는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 7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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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7:09:13Z</updated>
    <published>2026-06-25T06:46:13Z</published>
    <summary type="html">지금까지 우리는 위험이 우리의 감각을 어떻게 빠져나가는지를 보았다. 보이지 않아서, 주인이 없어서, 너무 익숙해서 위험이 위험으로 느껴지지 않는 그 세 가지 길을 따라왔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까다로운 경우가 남아 있다. 위험이 이 모든 관문을 통과해 마침내 우리 앞에 또렷한 사실로 제시되었는데도, 곧 그것이 해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는지가 분명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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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익숙해지면 사라진다 - 보이는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 6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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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7:09:13Z</updated>
    <published>2026-06-25T06:43:49Z</published>
    <summary type="html">앞의 두 장에서 우리는 공포의 자에 새겨진 두 눈금을 읽었다. 보이는 것이라야 두렵고 주인이 있어야 역겹다는 그 눈금들이었다. 그런데 어떤 위험은 이 두 관문을 모두 통과한다. 또렷이 보이고 출처도 분명해서 처음에는 두려움과 역겨움을 함께 일으키는 위험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런 위험조차 끝내 우리 눈에서 사라지고 마는데, 그것을 지우는 것은 보이지 않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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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냄새의 주인을 찾아서 - 보이는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 5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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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7:09:13Z</updated>
    <published>2026-06-25T06:41:56Z</published>
    <summary type="html">앞 장에서 우리는 공포의 자에 새겨진 첫 번째 눈금을 읽었다. 보이는 것은 무섭고 보이지 않는 것은 무섭지 않다는 그 눈금이었다. 그런데 그 자에는 눈금이 하나만 새겨져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데도 우리의 마음을 격렬하게 흔드는 것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은 눈이 아니라 코를 통해, 정확히는 역겨움이라는 또 다른 통로를 통해 들어온다. 두 번째 눈금에는 이렇</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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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이니까 무섭다 - 보이는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 4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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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7:09:13Z</updated>
    <published>2026-06-25T06:40:27Z</published>
    <summary type="html">앞 장에서 우리는 자 하나를 손에 쥐었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흘려보낼지를 가르는 그 보이지 않는 자, 인간이 불을 길들이던 까마득한 옛날에 이미 눈금이 새겨졌다던 그 자다. 이제 그 자를 눈앞에 바짝 들고 첫 번째 눈금부터 읽어볼 차례인데, 가장 굵게 새겨진 그 첫 눈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보이는 것. 우리의 공포는 무엇보다 먼저 보이는 것에 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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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을 길들인 자의 그림자 - 보이는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 3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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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7:09:13Z</updated>
    <published>2026-06-25T06:36:42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제 그 자의 눈금을 하나씩 들여다보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 어긋남은 언제 생겨났는가. 그것은 현대의 어떤 사정이 만들어낸 최근의 문제인가, 아니면 인간이라는 존재 가운데 처음부터 새겨져 있던 오래된 습성인가. 이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뜻밖에도 인간이 인간이 된 바로 그 출발점, 곧 불 앞에 다다르게 된다.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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