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title>민해경</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 />
  <author>
    <name>mhk614</name>
  </author>
  <subtitle>역사의 브레이크를 당기기 위해 공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인간과 생명, 그리고 생태의 비동일성을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철학과 경제학을 공부합니다.</subtitle>
  <id>https://brunch.co.kr/@@fm62</id>
  <updated>2023-04-23T14:57:11Z</updated>
  <entry>
    <title>여러가지 조각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101" />
    <id>https://brunch.co.kr/@@fm62/101</id>
    <updated>2026-10-10T03:00:09Z</updated>
    <published>2026-10-10T03:0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성매매란 것이 '옳지 못한' 행위임은 자명하다. 성매매는 부정되어야 하며,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이유는, 어떠한 고결하고 존귀한 도덕주의적 심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성매매라는 것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적 도덕법칙에, 상품물신의 법칙에 놀랍도록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성매매는, 자본주의적이지 못하기에 옳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이기</summary>
  </entry>
  <entry>
    <title>실천. 수단과 폭력성이라는 문제 - 폭력을 위한 폭력과 수단과 목적의 관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100" />
    <id>https://brunch.co.kr/@@fm62/100</id>
    <updated>2026-10-07T03:00:05Z</updated>
    <published>2026-10-07T03:00:05Z</published>
    <summary type="html">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의 마지막 테제에서 관조적 철학을 비판하며 변혁적 태도를 요구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그 이전 철학이 사유로조차 비판을 행위하지 않았던 점, 철학이 현실에 순응하고 존재하는 대상을 이성으로 곡해하는 동일성의 노예로 전락해버린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사유에 대해 실천의 무조건적인 우선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올바</summary>
  </entry>
  <entry>
    <title>신학적 유물론. - 비판 이성의 유물론은 가장 인간적인 신학과 다름없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99" />
    <id>https://brunch.co.kr/@@fm62/99</id>
    <updated>2026-10-03T03:00:07Z</updated>
    <published>2026-10-03T03: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번 글에 들어가기 앞서, 여기서 다루는 종교라는 것은 어떠한 특정 종교가 아니라, 종교라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전제들-'절대자에 대한 믿음, 보편적 긍정에 대한 상정 등'에 해당한다. 즉 이 글은 무신론적 청사진도 아니며, 동시에 유신론에 대한 맹목적 긍정도 아니다. 이 글은 신의 존재, 초월적인 외재자가 존재하는 지에 대해 다루는 글이 아니며,</summary>
  </entry>
  <entry>
    <title>아포리즘들 - 자유, 변증법, 이성에 관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98" />
    <id>https://brunch.co.kr/@@fm62/98</id>
    <updated>2026-09-30T03:00:11Z</updated>
    <published>2026-09-30T03:00:11Z</published>
    <summary type="html">꼭두각시가 있다. 손과 발이, 머리와 다리가 줄에 묶여 자유를 상실하고 의지를 박탈당한 꼭두각시가 있다. 꼭두각시는 그저 인형사에 의해, 인형사로 인해 움직일 뿐이다. 어느 날, 그 인형사는 다른 인형을 가져왔고, 그 꼭두각시의 줄을 가위로 끊어버렸다. 줄이 끊긴 꼭두각시는 잠시 자유를 만끽하는 듯 했으나 이내 그 육체를 지탱하지 못하고 줄이 끊어짐과 함께</summary>
  </entry>
  <entry>
    <title>몇 가지 테제들 - 이성, 자유, 역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97" />
    <id>https://brunch.co.kr/@@fm62/97</id>
    <updated>2026-09-26T03:00:08Z</updated>
    <published>2026-09-26T03: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성은 굶주림을 탓하지 않는다. 이성은 질병을 종언시키지 못한다. 이성은 외로움을 비난하지 않는다. 이성적인 시대에도, 이성적인 사유 속에서도 그 누군가는 배고플 것이며, 그 누군가는 아플 것이며, 그 누군가는 고독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성적인 시대는 굶주림을, 질병을, 외로움을 소비거리로 전락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모순은 비(悲)의 존재가</summary>
  </entry>
  <entry>
    <title>AI와 인간 - 사수가 아닌 구제를 위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96" />
    <id>https://brunch.co.kr/@@fm62/96</id>
    <updated>2026-09-23T03:00:14Z</updated>
    <published>2026-09-23T03:00:14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기술이자 논쟁의 대상이 되는 분야는 바로 AI일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정보화와 기술에 급격한 발전은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는 변화를 가져왔고, AI는 그 중심에 서있다. AI가 그 본질은 단순한 기술이며, 일반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논쟁 대상으로 부상하고 끊임없이 중심이 되는 이유는 AI</summary>
  </entry>
  <entry>
    <title>사랑이라는 이성 - 로맨스의 시대에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95" />
    <id>https://brunch.co.kr/@@fm62/95</id>
    <updated>2026-09-19T03:00:09Z</updated>
    <published>2026-09-19T03:0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비판적 이성을 사유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큰 난제는 결국 현실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난제는 결국 부정적 철학이 내재한 것-구체화된 실증성에 대한 전면적 거부와 어떠한 형상과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비판의 대상 내부에서 침잠한 상태로 비판의 사유를 구성하는-에서 비롯되며, 그 내재하는 것이 비판철학에 있어 필연적이기에 이 난제는 비판철학의 운명일 것이다.</summary>
  </entry>
  <entry>
    <title>사회화에 대하여 - 억압과 재생산의 의도 속에서 피어오르는 계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94" />
    <id>https://brunch.co.kr/@@fm62/94</id>
    <updated>2026-09-16T03:00:09Z</updated>
    <published>2026-09-16T03:0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현실에 대한 비판을 추구함에 있어, 그 비판을 통해 이성을 바로세우려는 사유를 갈구하는 자에 입장에서 '사회화'라는 개념은 중요성을 지닌다. 사회화라는 것이 내재하고 있는 성격-한 사회가 상식과 보편으로 간주하는 개념 하에 사물들을 고정시키고 따르게 하는 것은 비동일성의 변증법, 고정된 개념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이성적 사유를 추구하는 비판철학의 입장과 강하</summary>
  </entry>
  <entry>
    <title>기록과 기억의 역사 - 역사주의에서 역사주체의 역사철학으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93" />
    <id>https://brunch.co.kr/@@fm62/93</id>
    <updated>2026-09-12T03:00:06Z</updated>
    <published>2026-09-12T03: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역사, 이는 단언할 수 없고 몇 가지의 개념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 개념에게 자명한 것은 인류라는 보편과, 인간이라는 특수 모두에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 뿐일 것이다. 그 사실은 무엇인가? 역사는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의 과정이며, 무엇을 그 본질로 하는가?  역사를 규명하는 것, 역사를 사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나열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역</summary>
  </entry>
  <entry>
    <title>경험의 빈곤, 여행의 빈곤 - 여행이 관광으로, 쉼이 휴양으로 전락해버린 것에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90" />
    <id>https://brunch.co.kr/@@fm62/90</id>
    <updated>2026-09-09T03:00:10Z</updated>
    <published>2026-09-09T03:00:10Z</published>
    <summary type="html">실천은 이성적인 사유에 기반해야 이성과 매개되며, 사유는 실천에서 비롯되어야 이성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포이어바하에 관한 테제]에 대한 부정변증법적 귀결이며, 사유와 실천의 비동일적 화해, 온전한 통일일 것이다. 사유 없는 실천은 숭배이며, 실천 없는 사유는 허영일 뿐이다.  사유와 실천의 화해라는 이성적 귀결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경험일 것이다</summary>
  </entry>
  <entry>
    <title>이성이 불가능해진 시대 - 이성은 더 이상 이성이 아니다. 사유는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88" />
    <id>https://brunch.co.kr/@@fm62/88</id>
    <updated>2026-09-05T23:55:23Z</updated>
    <published>2026-09-05T03: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근대 철학의 업적 중 하나는 지금까지 신, '초월적 존재'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던 진리에 대한 권리와 그 권한을 인간이란 주체에게 부여한 것이다. 주체는 진리의 꼭두각시를 넘어 진리의 행위자로, 동시에 진리의 중심으로 우뚝 섰으며 철학은 이를 이성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이성은 주체를 해방시켰으나 동시에 종속의 길로, 억압의 길로 이끌고 들어갔다. 주체는 이</summary>
  </entry>
  <entry>
    <title>몇 가지 사유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52" />
    <id>https://brunch.co.kr/@@fm62/52</id>
    <updated>2025-11-19T01:50:41Z</updated>
    <published>2025-10-29T09:00: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수많은 학파개념들은 그 무언가에 기초한다. 그 학파개념은 사회과학부터 공학, 자연과학까지 현존하는 학문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며, 인간에 의해 절대적이지 않은 것으로 규정된 개념이기에 학문은 생존한다. 철학은 지금까지 그 학파개념들의 토대, 즉 세계개념이라는 지위를 스스로 부여했다. 불행히도, 그 세계개념은 그 지위를 스스로 포기했으며, 그 스스로를 제외하고</summary>
  </entry>
  <entry>
    <title>공동체와 개인에 대하여 - 노트 초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54" />
    <id>https://brunch.co.kr/@@fm62/54</id>
    <updated>2025-11-19T01:50:41Z</updated>
    <published>2025-10-22T03:00:17Z</published>
    <summary type="html">공동체란 단어는 독일어로 Gemeinschaft와 동일하다. 이 어원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음과 같다.  &amp;quot;ge-&amp;quot;: '적합한'의 뜻을 가진 접두사 &amp;quot;Mein&amp;quot;: '나의' &amp;quot;Schast&amp;quot;: '전체'의 뜻을 가진 접미사  즉, 공동체는 '나'라는 존재들. 각 개체Sache들의 합을 뜻한다. 이 개체들은 공통된 무언가를 가지며, 그 무언가가 집합을 이뤄 전체를&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fm62%2Fimage%2FN14esJsj_1HqZ5YOsUpwFFIDF0M.jp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개념에 대한 간략한 노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50" />
    <id>https://brunch.co.kr/@@fm62/50</id>
    <updated>2025-11-19T01:50:41Z</updated>
    <published>2025-10-15T03:00:24Z</published>
    <summary type="html">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흔히 어떠한 개념은 그 개념이 포괄하는 무언가들을 의미하는, 언어적으로 함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개념은 공통 분모를 의미하며, 그 공통 분모의 동일성이 곧 개념이라는 동일한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념은 그 자체로 동일성의 의미이다. 개념에 포괄된 것들은 곧 그 옆 자리의 승객과 동일한 공통분모를 갖게 되며-그 승객의</summary>
  </entry>
  <entry>
    <title>&amp;quot;그럼에도 불구하고&amp;quot; - 개인의 부정변증법, 부정과 삶에 대하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48" />
    <id>https://brunch.co.kr/@@fm62/48</id>
    <updated>2025-11-19T01:50:41Z</updated>
    <published>2025-10-01T03: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지금까지 나의 글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온, 일종의 부정의 사유로 대표되는 철학은 앞선 세대의 철학자-아도르노와 벤야민으로 대표되는-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인간과 소외, 더 나아가 자연 개념에 대해 일방적 권위에 해체, 자유 개념의 현실적 급진화 등 그 부정의 사유는 인간이란 지평을 개인에서 사회로 넓혀 사회 속에 개인을 비동일자의 상태로 보존하려</summary>
  </entry>
  <entry>
    <title>예술의 정치성과 참여예술</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42" />
    <id>https://brunch.co.kr/@@fm62/42</id>
    <updated>2025-11-19T01:50:41Z</updated>
    <published>2025-09-24T12: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벤야민에게 있어 이미지는 변증법적이며, 동시에 해방의 잠재력을 가진 혁명적 사물이다. 좁은 의미에서 이미지로 칭해지는 특정 예술이나 여타 작품들을 넘어 일상적으로 파악하고 감각할 수 있는 이미지 모두가 벤야민에게 있어서는 혁명성을 지니는 이미지이다. 그러므로 예술을 넘어 일상적으로 접하는 대중문화 등 모두 벤야민의 입장에선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며, 순수예술이</summary>
  </entry>
  <entry>
    <title>민족주의에 대한 고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44" />
    <id>https://brunch.co.kr/@@fm62/44</id>
    <updated>2025-11-19T01:50:41Z</updated>
    <published>2025-09-17T06: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한민국은 그 역사적 특수성과 지리적 위치로 인해, 민족에 대한 공동체 의식이 특히 높은 국가에 속한다. 민족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연 없는 타자도 같은 민족이라 하면 동질감을 가질 정도로 '민족'이란 개념은 대한민국에서 일상 속에 자리잡아있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 문화적 형태로도 나타난다. 한국과 관련된 것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을 때 앞에</summary>
  </entry>
  <entry>
    <title>문화와 예술의 자유를 옹호하며 - 혁명적 문화는 또 다른 판타즈마고리아에 불과하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39" />
    <id>https://brunch.co.kr/@@fm62/39</id>
    <updated>2025-11-19T01:50:41Z</updated>
    <published>2025-09-10T06: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예술은 그 사회를 표현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예술작품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예술의 성격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문화를 보는 시각을 만들어냈다. 이는 현대 사회에도 유사하게 전달되어, 문화예술 분야에서 정치비평의 형식으로 현 체제와 예술작품을 연결시켜 비판하는 형태도 족족 보인다.  예술이</summary>
  </entry>
  <entry>
    <title>무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45" />
    <id>https://brunch.co.kr/@@fm62/45</id>
    <updated>2025-11-19T01:50:41Z</updated>
    <published>2025-08-20T03:00:10Z</published>
    <summary type="html">개인과 집단은 종종 대립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근대 부르주아 혁명 이후 봉건적 집단주의에 종말은 이 대립의 불을 지폈으며, 무엇이 우선하느냐에 관한 논쟁은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갈등이기도 하다. 인류가 문명을 구축한 이후, 인류는 그들이 자연의 지배자가 된 방식-사회와 집단적 활동-을 지속적으로 고수해왔다. 가족이란 소규모 공동체부터 국가라는</summary>
  </entry>
  <entry>
    <title>아우라적 '개인'에 대하여 - 선형적인 시간관으로부터 프롤레테리아를 해방시키는 혁명</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fm62/43" />
    <id>https://brunch.co.kr/@@fm62/43</id>
    <updated>2025-11-19T01:50:41Z</updated>
    <published>2025-08-06T03: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사유 자체가 일단 소여에 대한 지체 없는 부정성이다.&amp;quot; -부정변증법 강의-. T.Adorno, Trans. 이순애   철학은 인간에 대한, 아니 잡히지 않는 진리에 대한 학문이다. 그 진리를 위해 철학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영역으로 그 발을 넓히고, 순수한 개인의 감각이 아닌 진리를 구성하는 법칙에 대해 연구한다. 그러나, 이 모든 명제는 결국 '한 ei&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fm62%2Fimage%2F-fgSnBzKQ_iUz05uk6AYXnnHKzM.jpg" width="500" /&gt;</summary>
  </entry>
</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