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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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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Lietzsche | 현대 철학과 정신 분석, 글쓰기를 취미로 하는 개발자.</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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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1-24T12:37:36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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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맥락맹의 논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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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09:33:38Z</updated>
    <published>2026-09-29T09:33:38Z</published>
    <summary type="html">_저기 저 십계명은 신의 질투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혹자의 학설과 같이, 인간의 근원에 질투(경쟁심)가 자리하는 까닭이라면 신은 인간의 투사체가 되는 셈이다. 더 많은 사례가 있겠으나 신의 저 양상은 크게 둘로 나뉠 것이다. 이른바, 안과 밖, 그러니까 리비도와 공격성이라 칭하지 않더라도, 분리불안과 지배욕은 익숙할 모양인데. 요컨대, 버려질까 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f3n1%2Fimage%2Fe5jT-oDoJ_3EEG-ABU2FzwjKJ3I"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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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즉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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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14T10:18:55Z</updated>
    <published>2026-09-14T10:18:55Z</published>
    <summary type="html">_언제나 '현재'는 인지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에 현현하기 위하여서는, 조각조각 섞여 들어오는 '감각'들을 매번 엮어 재현해야 하겠거니와, 그 순간 감각들은 곧장 느껴지는 중인 현재적 그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감각에 대한 '기억'에 불과하다. 소위 '파지'조차도 기억의 일종 아니던가. 그러므로 추론이 아닌, 그리 경험되었다고 주장되는 바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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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신의 논리 - 영화 '오디세이' 리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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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14T09:46:17Z</updated>
    <published>2026-09-14T09:46:17Z</published>
    <summary type="html">_신의 법은, 신을 보증인 삼고, 또한 바로 그 신을 담보로 내건다.인간이 나그네를 환영해야만 하는 건, 저기 저 나그네가 변장한 신일 수도 있는 까닭이라나? 저기 저 불확실성의, 가히 선역사적 시대의 마법이 동작하는 방식은 실로 고통스럽다. 원인에서 결론으로 나아가기엔 자료가 너무나 없어서, 결론이 원인을 소급하다 보니, 가히 마법이 도래한 모양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f3n1%2Fimage%2FE_inz0vFqhx9qMw8KVwwcoe9bYc"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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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개연성의 논리 - 영화 '호프' 리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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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08T11:56:51Z</updated>
    <published>2026-09-08T11:56:43Z</published>
    <summary type="html">_소위 '수학'의 문제에 공식들을 대입하면, 일단 처음엔 답을 모르지만, 매 순간의 개연성을 따라 다음 단계를 순차적으로 거치면 '필연적'인 답이 나온다. 이를 '전개'라고 한다.어떤 '구조'에 대한 논박이 나름의 '구조'를 다시 형성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만큼, 바로 이 '메타' 구조는 기성 구조에 의존하는 셈이다.이를테면, '영화'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f3n1%2Fimage%2FyLdYQsPvTlRqHuUeD0A3geDSJ0Q"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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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투쟁의 논리 - 영화 '협녀, 칼의 기억' 리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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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3T09:47:57Z</updated>
    <published>2026-07-13T09:47:57Z</published>
    <summary type="html">_생에의 의지는 그토록 무의미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적이 있다. 이른바, 자기 삶을 오로지 '투쟁'으로 점철하는 자들. 항거를 끝낼 수 없는 자들. 그러므로, 끝끝내 목적을 이루면 기쁘게 행동을 마치리라 의기양양하고 섣부르게 '정의'를 부르짖던 무수한 시위는 저기 저 낭만적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문화 자체가 되기도 한다. 혹, 어쩌면 간혹은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f3n1%2Fimage%2Fj05z8wXSJlbXlaqivzswH5HOhUA"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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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속임수의 논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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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6T23:58:17Z</updated>
    <published>2026-06-26T23:58:17Z</published>
    <summary type="html">_그가 카드 패를 만지작거린다. 다음엔 무슨 카드가 나올까? 그 다음엔? 또 다음엔? 그리고...주사위를 던지고 던지고 또 던지는데 계속해서 같은 수가 나온다. 그는 의심한다. 속임수인가? 우리는 얼마간 예상하기로, 던진 주사위 눈은 매번 어느 정도는 달라야 한다. 계속해서 같은 눈을 보면 필히 의심스러울 것이다. 수도 없이 던지면 끝끝내 각 눈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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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달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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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12:51:13Z</updated>
    <published>2026-06-13T12:51:13Z</published>
    <summary type="html">_할 수 없는 자는 가르친다. 할 수 있는 자는 행한다 / 조지 버나드 쇼_말하자면, '달리기'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달려야 한다. 논증으로 치자면, 궤변을 감수하고 낯선 논증들을 끊임없이 발명하며 검증해야 한다. 철학은 낯선 논증을 발명하는 일이고, 궤변인지 아닌지를 영역과 범위를 도외시하며 검증하면서야 비로소 나아갈 수 있을 테니. 왜 궤변인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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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명함 - 파롤과 랑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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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4T22:50:41Z</updated>
    <published>2026-05-24T09:05:44Z</published>
    <summary type="html">_이를테면, '명함'은 나를 타인에게 소개하는 수단이다.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서술이 '외부'를 향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소개'가 될 수 있다. 말하자면 '파롤'이 자기 자신만 사용하는 언어(그가 침대를 시계라고 스스로와의 소통에서만 부른다면 누가 그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면, 이제 그것이 '랑그'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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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념의 기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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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9T03:38:55Z</updated>
    <published>2026-05-14T00:00:18Z</published>
    <summary type="html">_혹자는 달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증명하였다 하기로, 이를테면 그는 인간이 달에 다다를 수 없는 까닭에 어떻게 달을 볼 수 있는지 이야기하였다 할 수도 있으리라. 요컨대 초점은 달에 대한 이야기에서, 달에 대한 감각에 대한 이야기로 후퇴한 셈이다.그에 따르면 우리는 사과 그 자체를 알 순 없고 사과의 향과 맛과 모양과 빛깔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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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유지의 논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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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07:52:30Z</updated>
    <published>2026-04-17T07:52:30Z</published>
    <summary type="html">_#감각어느 대학교에 볼일이 생겨 운전을 해 들어간 적이 있다. 정문에는, 후문으로 나가면 요금을 부과하지만 정문으로 다시 돌아와 나오면 요금을 부과하지 않는다고 적혀있었다. 여기 이 랜드마크는 스스로 '목적지'가 아닌 '경유지' 취급을 당한다면 비용을 부과하겠다고 천명하는 셈이다. 그는 자기 자신이 오롯이 '목적'이기를 바라며, 말하자면 스스로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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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 테크노포비아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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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8T08:19:44Z</updated>
    <published>2026-04-08T08:19:44Z</published>
    <summary type="html">_  &amp;hellip;  물론 현실 미래에서 AI가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은 가능성의 영역이 아니라 필연성의 영역처럼 보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AI의 능력을 그가 가지고 있었다면 지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AI를 그저 기술이 아닌 또 다른 자기 자신으로 &amp;lsquo;이입/동일시&amp;rsquo;해 감지하는 순간, 그는 자기 자신이었다면 남 위에 올라서고 싶은 유아적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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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 테크노포비아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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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1T08:09:33Z</updated>
    <published>2026-04-01T08:09:33Z</published>
    <summary type="html">_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한계로부터 인간을 &amp;lsquo;탈출&amp;rsquo;하게 할지, 혹은 인간의 한계로 인해 인간을 &amp;lsquo;지배&amp;rsquo;하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바로 이 &amp;lsquo;탈출&amp;rsquo; 혹은 &amp;lsquo;지배&amp;rsquo;라는 뉘앙스가 함의하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한계로부터의 &amp;lsquo;탈출&amp;rsquo;은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낙관론이며, 한계로 인한 &amp;lsquo;피지배&amp;rsquo;는 기술이 인간이 원하는 모든 희소한 욕망의 대상을 선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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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 공간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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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5T09:11:01Z</updated>
    <published>2026-03-25T09:11:01Z</published>
    <summary type="html">_  &amp;hellip;  기실, 그의 &amp;lsquo;이입&amp;rsquo;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이입이 아니긴 한데, 소위 일반적인 이입은 &amp;lsquo;자아&amp;rsquo;라는 내부와 외부, 경계를 감지한 상태에서 다른 &amp;lsquo;내부&amp;rsquo; 혹은 경계를 따라나서며 동일시하는 현상을 뜻하는 까닭이다. 그에겐 &amp;lsquo;내부&amp;rsquo;도 &amp;lsquo;외부&amp;rsquo;도 없는, 희미하고 불투명한 일종의 &amp;lsquo;통일장&amp;rsquo;이라는 유아 상태밖엔 없고, 거기서 발견하는 모든 &amp;lsquo;다른&amp;rsquo; 내부나 외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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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 공간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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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8T08:36:44Z</updated>
    <published>2026-03-18T08:36:44Z</published>
    <summary type="html">_  &amp;hellip;  마찬가지로, 혹자가 다른 이에게 자아를 의탁한다면, 저 다른 이의 &amp;lsquo;자아&amp;rsquo;는 &amp;lsquo;타자&amp;rsquo;의 &amp;lsquo;자아&amp;rsquo;인 동시에 그의 &amp;lsquo;자아&amp;rsquo;이기도 한 셈이다. 소위 &amp;lsquo;이입&amp;rsquo;으로 치자면, 집단의 &amp;lsquo;이입&amp;rsquo;은 국가의 위상에 자기 &amp;lsquo;자아&amp;rsquo;들의 위상을 걸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다음의 아이러니가 있다. &amp;lsquo;독립된 자아&amp;rsquo;로서의 &amp;lsquo;내부&amp;rsquo;를 상정하는 것은 아울러 &amp;lsquo;외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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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 공간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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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1T10:08:27Z</updated>
    <published>2026-03-11T09:58:52Z</published>
    <summary type="html">_  제 3자로써의 타자를 발견하는 건 &amp;lsquo;자아&amp;rsquo;의 바깥을 상정한다는 뜻이며, 따라서 그와 아울러 &amp;lsquo;자아&amp;rsquo;를 한계 지어진 &amp;lsquo;내부&amp;rsquo;로 상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허나, 점이 면이 아닌 이상 내부를 상정할 수는 없다. 요는 스스로의 &amp;lsquo;내부&amp;rsquo;를 정의하는 순간 다른 이의 &amp;lsquo;내부&amp;rsquo; 또한 정의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있다. 밖과 안을 상정하고, 주체와 대상을 상정하는 순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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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 짤막한 선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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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4T12:25:53Z</updated>
    <published>2026-03-04T12:25:53Z</published>
    <summary type="html">_  &amp;hellip;  이 악화일로의 역사는 시간과 아울러 누적되며, 그리 최초를 숭앙하는 그는 기실 그 숭앙의 역사 속에서 점차 그 숭앙의 출발점이 제 3자로서의 &amp;lsquo;타인&amp;rsquo;을 인식하기 싫어서 그랬다는 걸 잊어간다. 그는 믿기 시작한다. 그 자신의 모순은 그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amp;lt;일시적인 논리의 도약&amp;gt;이며, 그가 그의 사명을 일단 관철해 두면 후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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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 짤막한 선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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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5T02:49:33Z</updated>
    <published>2026-02-25T02:49:33Z</published>
    <summary type="html">_  &amp;hellip;  따라서, 아이의 저 &amp;lsquo;발달&amp;rsquo;에의 역사에서 제 3자는 &amp;lsquo;필연적&amp;rsquo;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이미 있던 현실을 &amp;lsquo;발견&amp;rsquo;하지 않고자 노력할 뿐 아니라, 기실 그것이 &amp;lsquo;발명&amp;rsquo;이라고 끌어내리려는 자의적이고도 인지부조화적인 정치적 시도에는 그저 제 3자에게 &amp;lsquo;자아&amp;rsquo;가 침해받으리라는, 그러니까 자기 거짓말이 마침내 어디선가 검증받으리라는 거짓말쟁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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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 짤막한 선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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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8T09:58:34Z</updated>
    <published>2026-02-18T09:17:06Z</published>
    <summary type="html">_  다시, &amp;lsquo;최초의 인식&amp;rsquo;은 기억에 자신을 기록할 여력이 없다. 그는 &amp;lsquo;기억&amp;rsquo;도 &amp;lsquo;기록&amp;rsquo;도 &amp;lsquo;자신&amp;rsquo;도 모르는 까닭이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된다손 친다면, 최초의 점은 기실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한 까닭에 그저 점에 불과하지 않던가. 그 점은 그 순간 하나의 세계이며 모든 세계에 다름 아니지 않겠나. 완전히 통일된 세계로서의 비대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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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 인간성의 탄생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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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1T08:46:05Z</updated>
    <published>2026-02-11T08:46:05Z</published>
    <summary type="html">_  &amp;hellip;  저 익숙한 &amp;lsquo;자아&amp;rsquo;의 탄생 이후, &amp;lsquo;자아&amp;rsquo; 바깥은 다 미지의 세계인가? 얼마나 미지의 세계인가? 문제는 &amp;lsquo;자아&amp;rsquo;의 탄생 여부가 아니라 &amp;lsquo;자아&amp;rsquo; 바깥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는 태도를 그 누가 강화하는가다. 그야말로 듣기 좋은 소리. &amp;lt;당신의 &amp;lsquo;무의식&amp;rsquo;은 이미 알고 있다&amp;gt;고 말하는 목소리는, 곧장 &amp;ldquo;그러니까, 외부의 지식을 습득하거나 적응하려는 노력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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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 인간성의 탄생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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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04T08:52:45Z</updated>
    <published>2026-02-04T08:52:45Z</published>
    <summary type="html">_  &amp;hellip;  그러나 슬프게도 저 논거들은 그의 내면에서 스스로 솟아나지 않았다. 저기 저 내면 마케팅은 외부에서 왔다. 저기 저 머나먼 외부로부터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amp;ldquo;내면을 보라, 오직 거기에만 답이 있다!&amp;rdquo; 하는 식으로.  그의 무의식은 이미 알고 있다는 주장 자체는 그의 무의식으로부터 오지도 않았고, 그의 의식으로부터 오지도 않았으므로, 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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