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title>uidan</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 />
  <author>
    <name>uidan</name>
  </author>
  <subtitle>의단</subtitle>
  <id>https://brunch.co.kr/@@eRhT</id>
  <updated>2022-11-30T04:51:06Z</updated>
  <entry>
    <title>사실과 당위(3) - 사실의 교체와 평온한 판단자의 탄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33" />
    <id>https://brunch.co.kr/@@eRhT/133</id>
    <updated>2026-05-10T07:40:57Z</updated>
    <published>2026-05-10T07:40:57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사실과 인간이라는 변수를 결합하여 당위라는 삼각형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익이 사회적 필터링을 거쳐 정당성을 얻는 과정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당위는 다시 우리 눈앞의 현실, 즉 사실과 어떻게 마주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판단의 완성은 머릿속의 논리가 현실의 영토를 실제로 점유할 때 비로소 이루어</summary>
  </entry>
  <entry>
    <title>사실과 당위(2) - 규범적 이익의 출현과 사회적 필터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32" />
    <id>https://brunch.co.kr/@@eRhT/132</id>
    <updated>2026-05-10T07:39:24Z</updated>
    <published>2026-05-10T07:39:24Z</published>
    <summary type="html">1부에서 우리는 사실과 인간이라는 두 점이 만나 이익과 당위라는 정점을 찍는 삼각형의 역학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삼각형은 주관적인 욕망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영토로 진출합니다. 이때부터 이 삼각형의 정점은 규범적 이익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며, 타인에게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거나 자신의 상태를 존중해달라고 외칠 수 있는 주장 가능성을 획득합니다. 하</summary>
  </entry>
  <entry>
    <title>사실과 당위(1) - 사실과 인간, 그리고 당위의 삼각측량</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31" />
    <id>https://brunch.co.kr/@@eRhT/131</id>
    <updated>2026-05-10T07:37:51Z</updated>
    <published>2026-05-10T07:37:51Z</published>
    <summary type="html">철학의 역사에는 넘지 못할 거대한 절벽이 하나 서 있습니다. 이른바 흄의 법칙이라 불리는, 사실(Is)에서 당위(Ought)를 도출할 수 없다는 서늘한 이분법입니다.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빵을 훔쳐도 된다는 당위를 보증하지 않는다는 이 논리는 수백 년간 인간의 판단을 파편화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삶의 현장은 이토록 결벽증적인 분리를</summary>
  </entry>
  <entry>
    <title>법학_민법_제3자(2) - 무효/취소와 추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29" />
    <id>https://brunch.co.kr/@@eRhT/129</id>
    <updated>2026-04-17T02:00:47Z</updated>
    <published>2026-04-17T02:00:47Z</published>
    <summary type="html">법률관계에서 발생하는 충돌을 해결하는 핵심 기준은 각 행위가 가진 '에너지의 체급'이다. 민법상의 여러 조문은 각기 다른 명칭을 사용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하위 차원의 에너지가 상위 차원의 실체를 물리칠 수 없다는 위계질서를 공유한다. 이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사표시의 하자(무효&amp;middot;취소)와 의사의 합치(추인), 그리고 현실화된 권리(제3자의 취득)</summary>
  </entry>
  <entry>
    <title>법학_민법_입증책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28" />
    <id>https://brunch.co.kr/@@eRhT/128</id>
    <updated>2026-04-16T14:27:53Z</updated>
    <published>2026-04-16T14:06:05Z</published>
    <summary type="html">법의 세계에서 모든 사건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기차와 같습니다. 계약이 체결되었다면 이행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관성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법이 설계한 기본값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이 기차를 멈춰 세우려는 시도가 등장합니다. 무효나 취소라는 강력한 제동 장치를 걸어, 원래의 흐름을 '꺾으려는' 판단들입니다.  이때 입증책임이라는 짐은 명확합니다. 평온하</summary>
  </entry>
  <entry>
    <title>법학_민법_제3자 - 의사표시와 권리, 의사와 인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27" />
    <id>https://brunch.co.kr/@@eRhT/127</id>
    <updated>2026-04-16T08:51:26Z</updated>
    <published>2026-04-16T08:51:26Z</published>
    <summary type="html">법은 차가운 글자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내밀한 마음과 권리의 위계에 관한 아주 정교한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내가 아닌 남, 즉 제3자가 등장하는 순간 법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그때 무엇을 알고 있었으며, 당신이 쥐고 있는 것은 단순한 믿음입니까 아니면 단단한 권리입니까.  우리는 흔히 선의의 제3자에</summary>
  </entry>
  <entry>
    <title>판단의 구조* - 헤어짐의 삼각형</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26" />
    <id>https://brunch.co.kr/@@eRhT/126</id>
    <updated>2026-03-19T01:07:40Z</updated>
    <published>2026-03-19T01:07:40Z</published>
    <summary type="html">연애는 감정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복되는 판단의 구조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구조가 흔들릴 때, 우리는 흔히 &amp;ldquo;마음이 식었다&amp;rdquo;거나 &amp;ldquo;힘들다&amp;rdquo;는 말로 그것을 표현한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변화는 막연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삼각형이 무너지는 과정처럼 보인다. 나는 이것을 &amp;lsquo;헤어짐의 삼각형&amp;rsquo;이라고 부르고 싶다.  첫 번째</summary>
  </entry>
  <entry>
    <title>판단의 구조* - or와 and, 충분과 필요의 언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24" />
    <id>https://brunch.co.kr/@@eRhT/124</id>
    <updated>2026-02-27T05:48:28Z</updated>
    <published>2026-02-27T05:48:28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mdash; 조문을 읽는다는 것  법조문에서 &amp;ldquo;또는&amp;rdquo;과 &amp;ldquo;그리고&amp;rdquo;는 단순한 접속사가 아니다. 이는 충분과 필요를 배열하는 기술이다. &amp;ldquo;A 또는 B&amp;rdquo;는 각각이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충분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amp;ldquo;A 그리고 B&amp;rdquo;는 둘 모두를 통과해야만 성립하는 필요의 구조를 뜻한다. 접속사는 곧 판단의 설계도다.  그러나 조문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or와</summary>
  </entry>
  <entry>
    <title>판단의 구조* - 그냥의 충분학</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22" />
    <id>https://brunch.co.kr/@@eRhT/122</id>
    <updated>2026-02-22T14:40:04Z</updated>
    <published>2026-02-22T14:4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그냥 했어. 그냥 좋았어. 그냥 싫었어. 그냥 계속하게 되더라.  이 &amp;ldquo;그냥&amp;rdquo;은 대개 설명을 포기하는 말처럼 들린다.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 생각 없이 했다는 말, 혹은 말하기 귀찮다는 말처럼 취급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amp;ldquo;그냥&amp;rdquo;은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이 너무 많이 지나간 뒤에 남은 말이다.  처음에는</summary>
  </entry>
  <entry>
    <title>판단의 구조* - 선과 악, 충분과 필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21" />
    <id>https://brunch.co.kr/@@eRhT/121</id>
    <updated>2026-02-22T01:38:56Z</updated>
    <published>2026-02-22T01:38:56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선과 악을 말할 때, 먼저 논리학의 교과서에서 잠시 물러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충분조건과 필요조건은 형식논리의 정확한 정의를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사람을 보고 마음을 읽고 어떤 행동을 평가할 때 실제로 어떻게 판단하는가, 그 생활 속의 구조를 붙잡아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법정의 판결문도 아니고, 종교적 교리도 아니다. 내가 살아오</summary>
  </entry>
  <entry>
    <title>판단의 구조* - 반사실조건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20" />
    <id>https://brunch.co.kr/@@eRhT/120</id>
    <updated>2026-02-18T08:34:48Z</updated>
    <published>2026-02-18T05:02:10Z</published>
    <summary type="html">⸻  부정은 길이 아니라 경고등이다  우리는 논증을 할 때 자주 &amp;ldquo;만약 ~가 아니었다면&amp;rdquo;으로 들어간다. 반사실적 조건문이다. 이 문장은 강하다. 한 번에 구조를 드러내는 것 같고, 상대의 주장에 균열을 내는 데도 유용하다. 그런데 이 방식이 글의 중심이 되는 순간, 논증은 이상하게도 멈춘다. 정교해질수록 건조해지고, 정확해질수록 움직임이 사라진다.  반사실</summary>
  </entry>
  <entry>
    <title>판단의 구조* - 구조의 끝자락에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19" />
    <id>https://brunch.co.kr/@@eRhT/119</id>
    <updated>2026-02-18T02:50:34Z</updated>
    <published>2026-02-16T17:00:00Z</published>
    <summary type="html">흐름이 새로운 곳에 닿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느낀다. 그 순간에는 늘 압박과 불안, 긴장과 두려움이 함께 따라온다. 그런데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은 그 감각을 &amp;ldquo;버텨야 할 비용&amp;rdquo;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비용을 즐긴다. 자기 세계의 경계를 직접 확장하는 즐거움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amp;ldquo;자유의 현기증&amp;rdquo;이라 불리기도 한다. 절벽 가장자</summary>
  </entry>
  <entry>
    <title>틈의 자유(10) - 종장</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80" />
    <id>https://brunch.co.kr/@@eRhT/80</id>
    <updated>2026-02-16T04:00:03Z</updated>
    <published>2026-02-16T04: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 책은 자유를 선언적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대신 자유가 어떤 지점에서 발생하고, 어떻게 멈추며, 다시 어떤 방식으로 호출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왔을 뿐이다.  자유는 선택의 순간에 갑자기 탄생하는 마법이 아니다. 불일치에서 의식이 깨어나고, 그 의식의 지속 속에서 욕구가 태동하며, 마침내 견고한 구조와 어긋나는 그 틈새에서 자유라는 이름의 흐름은 비로소 감</summary>
  </entry>
  <entry>
    <title>틈의 자유(9) - 경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79" />
    <id>https://brunch.co.kr/@@eRhT/79</id>
    <updated>2026-02-16T04:00:03Z</updated>
    <published>2026-02-16T04: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욕망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 그것은 더 이상 선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반복된 판단은 익숙함이 되고, 익숙함은 자연스러움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이때 판단은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배경이 된다. 우리는 여전히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이미 견고하게 굳어진 방향 위에서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상태를 경직이라 부를 수 있다.</summary>
  </entry>
  <entry>
    <title>판단의 구조* - 결론은 기준이, 과정은 판단이 내린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17" />
    <id>https://brunch.co.kr/@@eRhT/117</id>
    <updated>2026-02-15T23:00:24Z</updated>
    <published>2026-02-15T23:00:24Z</published>
    <summary type="html">결론은 기준이, 과정은 판단이 내린다  우리는 종종 &amp;ldquo;결정은 내가 했다&amp;rdquo;고 말한다. 그런데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amp;lsquo;내가&amp;rsquo;는 두 겹으로 나뉜다. 하나는 결론을 먼저 알고 있는 나, 다른 하나는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경로를 설계하는 나다. 전자가 기준이고, 후자가 판단이다. 내가 무엇을 옳다고 느끼는지, 무엇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지, 무엇이</summary>
  </entry>
  <entry>
    <title>판단의 구조* - 충분의 원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07" />
    <id>https://brunch.co.kr/@@eRhT/107</id>
    <updated>2026-02-15T05:00:03Z</updated>
    <published>2026-02-15T05: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공부에서 충분(充分)은 &amp;lsquo;대충&amp;rsquo;이 아니라 &amp;lsquo;원석(原石)&amp;rsquo;이다. 원석이라는 말에는 중요한 함의가 하나 있다. 대략의 정답이 이미 들어 있다는 것. 우리는 문제를 풀기 전에, 혹은 지문을 읽기 전에, 종종 &amp;ldquo;과정은 모르겠는데 결론은 이쪽일 것 같다&amp;rdquo;는 감각을 먼저 얻는다. 이것은 찍기가 아니라 충분의 형성이다. 충분은 방법의 지식이 아니라 도착점의 지식에 가깝</summary>
  </entry>
  <entry>
    <title>틈의 자유(8) - 욕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78" />
    <id>https://brunch.co.kr/@@eRhT/78</id>
    <updated>2026-02-15T04:00:02Z</updated>
    <published>2026-02-15T04: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판단이 반복되면 그 방향은 점점 단단하게 굳어진다. 처음에는 우연한 하나의 선택이었을 뿐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것은 나의 성향이 되고 나의 기준이 되며 마침내 나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가 된다. 이때 비로소 자유는 이름을 획득한다. 우리는 그것을 욕망이라 부른다.  욕망은 욕구와 엄밀히 다르다. 욕구가 아직 언어로 번역되지 않은 날것의 기울기였다면, 욕망은</summary>
  </entry>
  <entry>
    <title>판단의 구조* - 절약</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18" />
    <id>https://brunch.co.kr/@@eRhT/118</id>
    <updated>2026-02-14T21:00:09Z</updated>
    <published>2026-02-14T21:0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끼는 행위가 도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변수를 줄이고, 한 변수에 의존하고, 비용을 깎아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태도. &amp;ldquo;나는 흔들리지 않는다&amp;rdquo;는 감각이 생기고, 그 감각은 이상하게도 도전할 때의 쾌감과 닮아 있다. 둘 다 결국 불확실한 세계를 한 줄로 단순화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도전은 &amp;ldquo;이 한 줄만 잡으면 뚫린다&amp;rdquo;는 쾌감이고, 절약은 &amp;ldquo;이 한 줄만</summary>
  </entry>
  <entry>
    <title>틈의 자유(7) - 판단</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77" />
    <id>https://brunch.co.kr/@@eRhT/77</id>
    <updated>2026-02-14T04:00:02Z</updated>
    <published>2026-02-14T04: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자유는 흐른다. 그러나 이 흐름은 언젠가 멈춘다. 틈에서 새어 나온 자유는 결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그 무한한 가능성을 방치하기보다는 어느 한쪽으로 정리하려 한다. 이때 발생하는 사건이 바로 판단이다. 판단은 자유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창조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흐르고 있던 자유를 단 하나의 방향으로 고정하는 행위다. 가능성으로 존재하던 여러 갈래</summary>
  </entry>
  <entry>
    <title>실생활 속 LEET_밸런스게임(1)_최대와 최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www.fishingproductfr.com/@@eRhT/1" />
    <id>https://brunch.co.kr/@@eRhT/1</id>
    <updated>2026-02-13T04:50:02Z</updated>
    <published>2026-02-13T04:5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밸런스게임은 가치의 우열을 가리는 게임이다.  우리가 사용할 도구는 최대와 최소이다.  (1) 최소를 따져봄으로써 필수적인 가치를 알 수 있다.  (2) 최대를 따져봄으로써 충분한 형태를 가늠해볼 수 있다.  (3) 최소를 따져봄으로써 출발점을 알 수 있으며 (4) 최대를 따져봄으로써 도착지를 알 수 있다.  중간은 현실이다.   (1) 행복한 결혼을 하기</summary>
  </entry>
</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