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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레인메이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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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자주 쓰는 말보다, 끝내 쓰지 못한 문장에 더 오래 머뭅니다. 이 글들은 그 흔적입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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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11-16T12:20:25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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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4화. 박리(剝離), 도금된 생의 종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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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01T11:03:30Z</published>
    <summary type="html">90년대의 황혼은 찬란하기보다 가팔랐다.   거리마다 &amp;lsquo;세계화&amp;rsquo;를 외치던 구호들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빌딩 숲 사이를 떠돌았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자들의 숙취는 이제 고통스러운 두통이 되어 그들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만조 시장의 가로등은 전력이 불안정한 듯 수시로 점멸하며, 도금된 시대가 곧 꺼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명주는 전당포의 쇠창살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s_7N0T0SfXdOPWX7qD8QeifMqh4"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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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너에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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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7-04T14:56:16Z</published>
    <summary type="html">마른나무가 오래 마르면 마침내 결이 살아난다고 한다. 켜켜이 쌓인 시간이 만들어낸 무늬. 너를 보면 종종 그 결이 떠오른다.유독 겨울이 길던 해가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서늘한 소리가 부서지던 그런 계절.  그런데 그 겨울을 다 지나온 너의 손등에는 이상하게도 흉터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마음에 오래 남았다. 아픔을 안으로만 삼키는 사&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_BlW32SSPAgoyMJTVkQxhoZccBE"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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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3화. 다정한 올가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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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6T04:33:30Z</updated>
    <published>2026-06-16T04:33:30Z</published>
    <summary type="html">만조 시장의 복구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골목에는 비릿한 물비린내 대신 값싼 도배풀 냄새와 새 가구의 독한 휘발성 향이 진동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amp;lsquo;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amp;rsquo;는 말을 덕담처럼 주고받았다. 고난이 지나간 자리에 핀 온정주의는 특유의 끈적한 정과 뒤섞여 시장 전체를 유토피아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명주는 알고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vJf0VMrhpqWZJpfUlfT1kZfTRg4"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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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2화. 소금기 섞인 돈의 맛</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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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4T03:47:31Z</updated>
    <published>2026-06-04T03:47:31Z</published>
    <summary type="html">만조 시장 위로 쏟아지는 정오의 뙤약볕은 자비가 없었다.  며칠 전 시장을 집어삼켰던 물기는 이제 거친 소금기가 되어 모든 사물의 표면 위로 하얗게 박락되었다.  물에 젖었던 가구들은 뒤틀리며 비명을 질렀고, 뻘 속에 박혀 있던 온갖 잡동사니들은 바싹 마르며 고약한 먼지를 피워 올렸다.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킬 때마다 혀끝에 닿는 비릿한 염분기 때문에 헛&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2o19ur9YryHXI56CPlVkmp3hSIk"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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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1화. 뻘 속에 뿌리내린 갈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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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8T03:38:13Z</updated>
    <published>2026-05-28T03:38:13Z</published>
    <summary type="html">물이 빠져나간 만조 시장은 거대한 짐승의 사체처럼 괴괴했다. 한때 사람들의 욕망으로 들끓던 골목마다 허연 배를 뒤집은 채 죽어버린 가전제품과 썩어가는 식료품들이 진흙 속에 반쯤 박혀 기괴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찬란한 금빛 미래는 간데없고, 시장 바닥에는 오직 끈적하고 비릿한 뻘물만이 퇴적되어 인간의 발목을 붙잡았다. 사람들은 빗자루와 삽을 들고 나와 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uB_qKqrjqWti94cNbfVh71adyzI"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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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화. 만조(滿潮), 물이 차오르는 시장 골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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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9T16:42:09Z</updated>
    <published>2026-05-19T16:42:09Z</published>
    <summary type="html">하늘이 무너진 듯 쏟아지던 장마는 안일한 낙관론을 비웃으며 만조 시장의 가장 낮은 곳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시장 앞을 흐르던 개천은 이미 제 그릇을 잊은 채 누런 흙탕물을 토해내고 있었고, 시장의 혈관과도 같았던 하수도는 인간들이 버린 욕망의 찌꺼기에 막혀 시퍼런 오물을 역류시켰다.  바다의 수위가 높아져 육지를 압박하듯, 시대의 부채가 임계점을 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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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화. 아비의 빚을 상속받는 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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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4T10:00:06Z</updated>
    <published>2026-05-14T10: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만조 시장의 밤은 가혹하리만큼 성실하게 가난의 계보를 기록해 나갔다. 번영은 모두에게 평등한 햇살을 약속하는 듯했으나, 그 빛의 각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는 예외 없이 누군가의 자식들에게 가닿았다.  부채는 죽음으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비료 삼아 다음 세대의 토양 속으로 뿌리를 내리는 끈질긴 기생수였다. 명주는 전당포&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IvzqA_h2wcj2-c-6C-GDWO8RMDY"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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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화. 복리(複利)라는 이름의 괴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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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1T10:56:15Z</updated>
    <published>2026-05-11T10:56:15Z</published>
    <summary type="html">만조 시장의 심야는 전당포 금고 속에 갇힌 숫자들이 기지개를 켜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잠이 들면 부채의 무게를 잠시 잊을 수 있다고 믿었으나, 명주의 장부 속에 기입된 이자들은 결코 눈을 붙이는 법이 없었다.  특히 &amp;lsquo;복리&amp;rsquo;라는 이름의 기생체는 숙주의 호흡이 가빠질수록 더욱 비대하게 몸집을 불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도 잔인한 포식자였다. 그것은&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f1X2ekZZg2c7YFBYzTUtDoH71ws"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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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화. 도금(鍍金)된 인간의 얼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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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03T15:00:30Z</updated>
    <published>2026-05-03T15:00:30Z</published>
    <summary type="html">90년대 중반은 정교하게 도금된 거대한 무대와 같았다. 샴페인 잔 속에서 터지는 탄산의 기포처럼 사람들의 욕망은 가볍게 부풀어 올랐고, 거리의 전광판은 실체 없는 번영을 쉼 없이 점멸하며 대중의 눈을 멀게 했다.  만조 시장의 어귀에도 그 기만적인 빛은 스며들었다. 백화점의 화려한 쇼핑백을 들고 시장 골목을 누비는 이들이 늘어났으나, 정작 그들의 등 뒤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VMOdtgaT4TeKY-cZlGOPoP17X8U"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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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화. 시장의 아가리 속으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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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30T03:00:35Z</updated>
    <published>2026-04-30T03:00:35Z</published>
    <summary type="html">만조 시장의 정오는 태양의 빛조차 탐욕스럽게 집어삼키는 거대한 식도와 같았다. 뜨거운 열기가 시장의 슬레이트 지붕 위로 쏟아져 내리면, 그 아래 숨죽이고 있던 온갖 비릿한 것들이 일제히 생의 마지막 발악처럼 고약한 증기를 내뿜었다.  그것은 생선 썩는 내와 찌든 기름때, 그리고 수천 명의 시장 상인이 내뱉는 가쁜 숨결이 뒤섞인 비정(非情)의 냄새였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LsvRaVPDrvGYTo1I6m4_5GgX-tA"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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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화. 친절이라는 이름의 고리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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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6T15:00:12Z</updated>
    <published>2026-04-26T15:00:12Z</published>
    <summary type="html">90년대 중반의 봄은 유독 가증스러울 만큼 찬란했다. 거리마다 '신경제'라는 미명 아래 화려한 조화들이 만발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세련된 포장지로 감싸 안은 채 세기말의 불안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주에게 봄은 그저 장부 속 이자가 부풀어 오르기 딱 좋은, 습하고 끈적한 계절에 불과했다. 그녀는 오늘, 장부의 가장 깊은 갈피에 유폐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0QlFLbDTqsm2wInB10j1QMsCuDQ"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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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화. 벼랑 끝에서 마시는 뜨거운 국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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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1T00:00:22Z</updated>
    <published>2026-04-21T00:00:22Z</published>
    <summary type="html">만조 시장의 새벽은, 자본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토해낸 숙취를 미처 수습하지 못한 채 눅눅하게 시작되었다.  비가 그친 자리에는 어김없이 안개가 피어올랐고, 그것은 시장 곳곳에 널린 오물과 뒤섞여 인간의 품격을 가장 저급한 형태로 환원시키는 악취의 수의(壽衣)가 되었다.   명주는 전당포의 철제 금고문을 닫고, 그 서늘한 감각을 채 씻어내기도 전에 시장 입&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zbJiWnuewAiElg9UoPZz9g0vy74"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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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화. 담보 잡힌 이름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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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9T16:00:04Z</updated>
    <published>2026-04-19T16:0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90년대 초입의 공기는 유난히 달콤하고도 매캐했다. 거리마다 '세계화'라는 구호가 범람했고, 사람들은 내일의 부(富)를 오늘의 빚으로 가불(假拂)해 쓰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만조 시장 입구에 새로 들어선 가전 매장에서는 온종일 화려한 색채의 텔레비전이 신기루 같은 번영을 송출해댔으나, 그 빛이 닿지 않는 명주의 전당포 안쪽은 여전히 습&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gr-ciGFoXkbmByiG0ew68izyBSk"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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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화. 젖은 지폐에서 나는 냄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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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5T17:24:53Z</updated>
    <published>2026-04-15T16:00:05Z</published>
    <summary type="html">비는 그쳤으나 하늘은 여전히 낮은 채로 시장의 지붕을 짓눌렀다. 어둠이 물러간 자리에는 정화되지 못한 습기가 눅진하게 달라붙어, 만조 시장의 골목마다 썩은 내를 머금은 안개를 피워 올렸다. 햇살은 구름의 틈새를 뚫지 못한 채 가물거렸고, 젖은 노면 위로 부유하는 기름띠만이 기괴한 무채색의 무지개를 그리며 생의 비루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명주는 가게 안쪽&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sy3u4uopwa8DP0_e8ZA0nVAEzk0"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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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화. 핏줄보다 진한 잉크, 장부의 시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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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2T16:00:03Z</updated>
    <published>2026-04-12T16: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만조(滿潮) 시장의 밤은 비명보다 먼저 습기로 차올랐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는 비탈진 골목을 거대한 아귀의 식도로 탈바꿈시켰고, 하늘에서 낙하하는 수직의 물줄기들은 지상에 닿는 족족 낮은 곳에 고인 것들의 치부를 건드려 비릿한 악취를 길어 올렸다. 가게 앞, 비가 들이치는 평상 위에는 낡은 장부 한 권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눅눅하게 절어 있었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eTPEtMwqqqCr-RGTAbEYZHurM0c"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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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롤로그] 잉크의 탄생: 첫 번째 낙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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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2T04:57:09Z</updated>
    <published>2026-04-12T04:57: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세상에는 두 종류의 피가 흐른다. 하나는 심장을 뛰게 하는 붉은 피요, 다른 하나는 인간의 운명을 옥죄는 검은 잉크다. ​만조 시장의 지하, 습기가 가득한 그곳에 전당포의 문이 처음 열리던 날, 명주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새하얀 장부를 펼쳤다. 그것은 단순한 기록장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절망이 숫자로 치환되고, 누군가의 자존심이 금붙이의 무게로 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VmsytiAfmY2uIQ04IJr4EQGQefM"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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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두려운 것은 몸이 아니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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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1T13:02:10Z</updated>
    <published>2026-04-11T13:02:10Z</published>
    <summary type="html">옷이 무겁다고 느꼈다.정확히는,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무게가 갑자기 느껴졌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셔츠 깃이 목에 닿는 감각, 바지가 허리를 조이는 감각. 그것들이 그날따라 유독 선명하게 의식되었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으면서 나는 잠깐 멈칫했다.  오늘 하루 동안 나는 두 번 옷을 벗었다.  한 번은 그 자리에서, 한 번은 지금. 그런데&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9ARCu2YNEqrmGMmjtOVhxpRB3os"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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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누디즘이라는 낯선 경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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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31T11:08:54Z</updated>
    <published>2026-03-31T11:08:54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 자리에 가기로 한 것이 용기였는지, 아니면 그냥 질문을 더 이상 머릿속에만 두기 싫었던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장소는 도심에서 꽤 벗어난 곳이었다.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가는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날씨 생각을 했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공기는 가을 끝자락 특유의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그 서늘함에 집중하는 것이 다른 생각들을 잠시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EN7i3ybeL50HV_5AZgfsPJSlFZA"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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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처음으로 몸을 의식하지 않았던 순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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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6T13:26:01Z</updated>
    <published>2026-03-23T15:00:26Z</published>
    <summary type="html">확인해 보기로 했다고는 했지만, 막상 그 방향이 어디인지는 한동안 알지 못했다.다만 단서처럼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몸을 잊었던 순간들. 정확히는, 몸이 그냥 몸이었던 순간들.  보이거나 가늠되거나 다듬어지기 이전의 몸,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만 남아 숨 쉬던 그런 순간들.오래 달린 뒤가 그랬다.  숨이 헐떡이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그 순간에는&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MifEmiO5Nzl0aTbj2Wgj5dqnfSA"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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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는 몸보다 시선을 먼저 입는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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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7T11:28:42Z</updated>
    <published>2026-03-17T11:28:42Z</published>
    <summary type="html">정확히는 아무 생각 없다고 느끼면서 사실은 꽤 많은 것을 생각한다. 오늘 어디를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인상을 남기고 싶은지.  그 판단들은 너무 빠르게 이루어져서 우리는 그것을 생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옷장 앞에서 보내는 몇 분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편집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대부분 의식하지 않은 채로 매일 반복한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kH4%2Fimage%2FvJwbNi9kZ0fF2rVKifToF2Q34RQ"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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