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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상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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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12대를 이어 고향을 지키며 친환경 농업으로 땅을 살리고 들풀과 곤충도 함께 살며 무농약 농산물로 사람도 살릴수있는 농사를하며 40년동안 일기를 쓰고있는  75세의 농부 입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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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19T06:07:00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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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산이 7번 변한 세월 (21) - 42권의 일기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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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3T22:49:01Z</updated>
    <published>2026-09-23T12:45:38Z</published>
    <summary type="html">1984년부터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영농일기를 써 왔다. 농사를 막 시작하던 젊은 시절에는 작은 수첩에 그날의 일을 간단히 메모하는 정도였다. 밭일에 쫓기다 보면 기록을 남길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적어 두었던 메모들은 세월 속에 하나둘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1984년부터 두꺼운 노트에그날의 일을 제대로 남기기로 했다. 날씨는 어땠는지, 어떤 농사를 지었&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UGh%2Fimage%2F-9ofTombmMFN8Qj6ZBSreNgSkrc"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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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0년대의 농촌(강산이 7번 변한 세월  20) - 양옥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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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19T22:39:55Z</updated>
    <published>2026-09-14T12:18:55Z</published>
    <summary type="html">80년대에 들어서자 농촌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허름한 옛집을 헐고 양옥집을 짓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우리 집은 6.25 전쟁이 끝난 뒤 아버님이 지으신 초가집이었다. 흙벽은 얇았고, 종이를 바른 문틈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한겨울이면 방 안에 있는 걸래가  얼 정도로 추운 집이었다.  가끔 춘천 시내에 사는 친척집에 가면,  주방</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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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0년대의 농촌(,강산이 7번 변한 세월  (19) - 암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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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01T04:16:03Z</updated>
    <published>2026-09-01T03:19:28Z</published>
    <summary type="html">80년대까지 집집마다 꼭 한두 마리씩 소를 키웠다.  그 시절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논밭을 갈기 위한 큰 일꾼이었고, 한 집안의  목돈을 만들 수 있는 든든한 재산이었다. 어린 송아지를 사서 삼 년만 정성껏 키워 팔면, 집안에 필요한 세간을 들일 수 있었고, 자식들 혼수나 결혼 자금에도 보탤 수 있었다.  그래서 외양간은 ,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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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0년대 농촌(강산이 7번 변한 세월  18) - 경운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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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8T22:23:11Z</updated>
    <published>2026-08-28T22:10:10Z</published>
    <summary type="html">1983년 봄, 우리 집에 큰 일꾼이 들어왔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였다.  10마력  국제경운기.  스타칭을 두 손으로 힘껏 쥐고 팔뚝에 힘을 주어 당기면, &amp;ldquo;팡팡팡팡―&amp;rdquo;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렸다. 마당에 울려 퍼지던 그 소리는, 가난했던 농가에 새 희망이 도착했다는 신호 같았다.  10마력,( 말 열 마리가 끄는 힘)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나는 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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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0년대의 농촌(강산이  7번 변한 세월  17) - 전화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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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4T12:44:17Z</updated>
    <published>2026-08-23T12:40:35Z</published>
    <summary type="html">전기가 들어온 이듬해 1983년. 우리 집에도 마침내 전화가 개통되었다.  작은 전화기 하나가 세상과 우리 집을 이어 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방 한쪽에 자리 잡은 전화기. 수화기를 들면 &amp;ldquo;뚜―&amp;rdquo; 하는 낮은 신호음이 흘러나왔고, 둥그런 다이얼에 손가락을 끼워 번호를 맞춰 천천히 돌리면 &amp;ldquo;지르르륵&amp;rdquo;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서울에 살고 있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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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0년대의  농촌 (강산이 7번 변한 세월 16) - 전기밥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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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0T23:16:23Z</updated>
    <published>2026-08-20T23:16:23Z</published>
    <summary type="html">전기가 들어온 뒤, 제일  먼저 사 온 것은 전기밥솥이었다. 작은  전기밥솥 하나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수십 년 동안  식구들을 위해, 추운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는  날이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식구들을 위해, 아침저녁 아궁이에 불 때서 무쇠솥에 밥 하시던 어머니가  부엌아궁이에서 해방되신 것이었다.  처음 우리 집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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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0년대의 농촌(강산이 7번 변한 세월 15) - 전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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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4T12:39:16Z</updated>
    <published>2026-08-17T11:41:01Z</published>
    <summary type="html">1982년 봄, 우리 마을에도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다.  전주를 세울 자리에 깊은 구덩이를 파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내며 흙을 퍼 올렸다. 전봇대 하나가 들어설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땅은 단단했고, 돌은 많았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 누구 하나 빠지지 않았다.!  &amp;ldquo;마을에서 도와주면 공사비를 깎아준다&amp;rdquo;는 말 한마디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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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산이 7번 변한 세월 (14) - 70년대의 겨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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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08T03:42:40Z</updated>
    <published>2026-08-08T03:42:40Z</published>
    <summary type="html">70년대의 농촌은 모두 초가집에  온돌방이었다.  추수와  타작도  끝낸 겨울을 농한기라고 했다. 농사일은 끝났지만 겨울에도 편하게 쉴 수가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야 무쇠솥에 밥을 하고 국 끓이고, 따뜻한 방에서 식구들이 잠을 잘 수 있으니  매일 지게 지고 산에 가서 땔나무를 했다.  눈이 오는 날만 쉬는 날이었다. 추운 겨울날 장갑도 없</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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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0년대 농촌의 가을(강산이 7번 변한세월 13) - 쌀 한 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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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21T22:15:29Z</updated>
    <published>2026-07-21T22:15:29Z</published>
    <summary type="html">가을 타작이 끝나고 방앗간에서 갓 찧어온 햅쌀로 밥을 지으면, 부엌 안에 퍼지는 냄새부터가 달랐다.  솥뚜껑을 여는 순간, 구수한 냄새가 풍기고 한 숟갈 떠 입에 넣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 나왔다. 반찬이 없어도, 김치 한 조각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 밥 한 그릇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농부는 이른 봄부터 서리 오는 늦가을까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며 정</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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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0년대 농촌의 가을(강산이 7번 변한 세월 12) - 초가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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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20T02:02:15Z</updated>
    <published>2026-07-20T02:02:15Z</published>
    <summary type="html">70년대의 가을 1970년대 중반까지도 우리 마을은 모두 초가집이었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나면, 겨울이 오기 전에 꼭 해야 할 큰일이 초가지붕을 새로 이는 일이었다.  벼타작을 마친 뒤 쌓아둔 볏짚은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집의  포근한 지붕이 되었다.  볏짚을 골라 가지런히 펴고, 한 줌씩 모아 이영을 엮었다. 정성껏 엮은 이영을 돌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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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0년대 농촌의 가을(강산이 7번 변한 세월 11) - 벼타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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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6T14:05:51Z</updated>
    <published>2026-07-14T23:20:05Z</published>
    <summary type="html">가을 해는 짧다. 서리가 오기 전에  고구마도 캐야 되고, 콩 팥도 다 뽑아서 말려야  한다, 몸도 바쁘고 마음도 바쁘다 그중에 제일 큰일이 벼베기다. 벼베기도 동네사람들이 모여 품앗이로 했다. 정해진 날짜에  모여 한포키 두 포기씩 낫으로 베어  논바닥에 가지런히 널어놓았다. 날씨가 좋은 날은 3~4일 이면 잘 마른다. 다 마르면  쪼그려 앉아서 서너 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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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0년대 농촌의 여름(강산이 7번 변한 세월 10) - 김 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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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0T10:06:46Z</updated>
    <published>2026-07-02T22:38:22Z</published>
    <summary type="html">1970년대 농촌의 여름 모내기를 끝내고 나면 어느새 6월이 되었다. 그때부터는 김매기의 시간이었다. 논도 밭도 숨 돌릴 틈이 없었다. 4월에 심어 두었던 감자와 옥수수는 한 뼘씩 자라 있었고, 작물만큼이나 풀도 부지런히 자랐다. 콩밭과 팥밭도 마찬가지였다. 작물보다 풀이 더 빨리 자랐고, 농부들은 오직 맨손에 쥔 호미 하나로 김매기를 했다.  그 시절 농</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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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0년대 농촌의 봄(강산이 7번 변한세월  9) - 모내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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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0T06:03:45Z</updated>
    <published>2026-06-20T00:57:45Z</published>
    <summary type="html">70년대 농촌의 봄 70년대 농촌의 봄은  새벽 공기 속에서 하루를 열었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겨릿소를 앞세웠다.  스무날 남짓, 우리 논밭과 이웃집 밭까지 함께 갈아주었다. 오늘은 우리 집, 내일은 저 집. 그렇게 마을의 밭들은 차례로 봄을 맞았다. 콩을 심고, 팥을 심고, 옥수수 씨앗을 뿌렸다.  씨앗을 다 심고 나면 모내기가 시작되었다. 모내기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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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0년대 봄(강산이 7번 변한세윌  8) - 겨릿소 쟁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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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31T23:42:01Z</updated>
    <published>2026-05-28T05:29:08Z</published>
    <summary type="html">농사일 시작하고 4년 후.열아홉 살, 나는 처음으로 밭갈이를 배웠다.겨릿소 두 마리를 끌고 무쇠버섭을 끼운 쟁기를  지고  밭으로 향했다. 지게에 무거운 결이 쟁기를 지고, 힘센 소를 끌고 가는 길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소들도 성질이 제각각이었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놈이 있는가 하면, 멍에 메우기를 거부하며 심술을 부리는 놈도 있었다. 밭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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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산이 7번 변한 세월(7) - 석유곤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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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0T23:10:19Z</updated>
    <published>2026-05-20T23:10:19Z</published>
    <summary type="html">60년대 농촌의 부엌은 늘 불과 함께 하루를 열고 닫았다. 아침이면 어머니는 먼저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다. 장작이 타들어가며 내는 타닥타닥 소리, 연기가 굴뚝을 따라 오르던 냄새가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인 뒤, 남은 불은 화로에 옮겨 담아 찌개를 데워 먹었다.  그 시절의 밥상은 언제나 그렇게 천천히, 불의 속도에 맞추어 차려졌다.  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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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산이 7번 변한 세월(6) - 온돌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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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22T10:32:08Z</updated>
    <published>2026-05-18T05:52:29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14살에 소년가장이 되었다. 83세의 할머니와, 43세의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어린 동생들 4명을 책임지는 호주가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열여섯 살 농부가 되었다.  연필을 쥐던 손엔 호미를 잡았고, 책가방 메던 어깨엔 무거운 지게를 지었다.  60 년대의 겨울은 길고 깊었다 눈도 많이 내렸고  바람은 살을 파고들 듯 매서웠다. 그 시절 시골집</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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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등잔불 - 강산이 7번 변한 세윌(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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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7T12:21:54Z</updated>
    <published>2026-05-15T11:56:10Z</published>
    <summary type="html">저녁이 되면 하얀 사기등잔을 꺼냈다. 병에 담아둔 석유를 조심스레 등잔에 채우고, 성냥을 그어 심지 끝에 불을 붙였다. 파르르 떨리며 살아나는 작은 불꽃. 그 작은 불빛이 우리 집 밤을 밝혔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에서 어머니는 구멍 난 양말을 꿰매셨다. 낮에 밭에서 흙을 밟고 뛰어다닌 동생들의 양말은 늘 뒤꿈치가 먼저 닳았다. 어머니의 바늘 끝은 어둠 속</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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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춘천중학교  - 강산이 7번 변한세월(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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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05T21:31:22Z</updated>
    <published>2026-05-05T21:31:22Z</published>
    <summary type="html">1963년 봄, 춘천중학교에 입학했다. 춘천중학교는 강원도에서 최고의 중학교라고 했다. 춘 중 합격소식을  들으시며 좋아하시던 부모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춘천중학교는 집에서 25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아버지가 쌀을 넉넉히  갔다 주신 친척집에서 나는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는 한 학년이 8반까지 있었다. 월요일마다 아침 조회시간엔 넓은 운동장을 전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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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촌국민학교  - 강산이 7번 변한 세월(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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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6T21:09:32Z</updated>
    <published>2026-04-05T22:01:29Z</published>
    <summary type="html">3학년까지 보자기에 책을 싸서 어깨에 메고 다녔다. 여자 아이들은 책보자기를 허리에 묶고 다녔다. 멀리서 책보를 멘 모습만 보아도 남자아인지  여자 아인지  알 수  있었다. 보릿고개  넘기 어려웠던 그 시절 점심도시락을 못싸오는 친구들도 열댓 명 정도 있었다. 나는 같은 책상에서 공부하는 짜쿵과 자주 도시락을 같이 먹었다. 보리밥에 김치 아니면 고추장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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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촌국민학교 - 강산이 7번 변한 세월(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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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1T07:31:57Z</updated>
    <published>2026-03-30T11:44:50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제부터 쓰는 글은 강산이 7번 변하는 동안, 내가 살아온 이야기이고  우리 농촌의 이야기입니다.  휴전되고 5년 후였으니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1958년 3월 지촌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윗저고리 왼쪽 가슴엔 콧수건을 달고, 어머니를 따라 2.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학교에 갔다. 넓은 운동장엔 나와 비슷한 차림의 아이들이 초봄의 찬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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