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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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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가정폭력 속에서 자란 사회복지사. 엄마의 딸이지만, 엄마의 엄마로 살아온 나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모든 딸들에 담담한 위로를 건네고자 한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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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8T06:43:2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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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5. 이번에는 내가 어른이니까 - 세상의 모든 어른아이들에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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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0:06Z</updated>
    <published>2026-09-20T23:00:18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오랫동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amp;lsquo;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amp;rsquo; &amp;lsquo;내가 엄마에게 이혼하자고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amp;rsquo; &amp;lsquo;엄마가 그 집에서 계속 살았다면 지금보다 덜 아팠을까.&amp;rsquo;  답이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가 아플 때마다 나는 자꾸 그곳으로 돌아갔다. 내가 엄마의 인생을 바꿔놓았다는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그런 내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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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4. 엄마를 완벽하게 미워하지 못하는 이유 - 좋은기억과 나쁜기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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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40:51Z</updated>
    <published>2026-09-17T23:00:28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엄마를 미워하는 기억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다.  엄마는 일이 없는 날이면 내가 다니던 학교에 찾아오곤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내가 교실 청소를 할 때면 옆에서 함께 빗자루를 들었다. 친구들의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 시간이 좋았던 것 같다. 엄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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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3. 그럼에도 살아간다. - 주어진 삶을 따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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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40:15Z</updated>
    <published>2026-09-16T23:00:22Z</published>
    <summary type="html">결국 우리는 증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서울대학교병원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에게는 척수공동증이라는 희귀 질환이 있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 자주 넘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균형감각이 떨어지고 보행이 불안정해진 것도 병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두증과 뇌동맥류까지 발견되었다. 병명을 듣는 순간, 지나온 시간들이 조금씩 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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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2. 사랑하고 원망한다. - 이토록 사랑하지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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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9:37Z</updated>
    <published>2026-09-15T23:00:27Z</published>
    <summary type="html">엄마와 함께 살기 시작한 뒤, 우리는 참 많이도 여행을 다녔다. 강원도, 거제도, 경주, 제주도, 일본&amp;hellip;&amp;hellip;. 어쩌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서로에게 증명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평생 제주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3년 전, 처음으로 엄마와 제주도에 갔다. 그리고 올해 다시 제주도를 찾았다.  바다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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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1. 엄마도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했다. - 내가 지켜줘야할 사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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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8:45Z</updated>
    <published>2026-09-14T23:00:22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아마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다만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엄마의 이혼으로 우리 집에서 남편과 함께 살게 된 지 10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amp;ldquo;어머니, 조금 더딘 분인 것 같아.&amp;rdquo;  그 말을 듣는 순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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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 10년 만에 같이 살게 된 모녀 - 엄마의 보호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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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8:19Z</updated>
    <published>2026-09-13T23:00:12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느 날 눈이 펑펑 내렸다. 엄마가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계속 전화를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amp;ldquo;내가 장모님 댁에 다녀올게.&amp;rdquo;  엄마가 사는 곳까지는 차로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는데 남편을 그 먼 곳까지 운전하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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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 아이가 태어났다. - 엄마가 되어보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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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8:01Z</updated>
    <published>2026-09-10T23:00:20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 시기 나는 임신 6개월이었는데,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원에 실려 갔다. &amp;ldquo;지금 아이가 태어나면 생존 확률은 50%입니다. 절대 안정하셔야 해요.&amp;rdquo;  병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온갖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그 지옥에서 꺼내는 데 성공했는데, 왜 그 대가는 이렇게 가혹한 걸까.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마음은 허탈했다.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았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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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 28년의 결혼생활 끝에 남은 것 - 이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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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7:38Z</updated>
    <published>2026-09-09T23:00:19Z</published>
    <summary type="html">엄마가 집을 나온 뒤에도 내 삶은 한가할 틈이 없었다. 남편과 결혼한 뒤 나는 법인 산하 기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했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잠은 쏟아졌지만, 일도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엄마의 이혼소송까지 내가 맡고 있었다. 소장을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수없이 많은 사례기록을 작성했지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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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 너 때문이라는 지독한 굴레 - 변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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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7:14Z</updated>
    <published>2026-09-08T22:00:29Z</published>
    <summary type="html">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내가 원하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다정한 남편이 있었고, 안정적인 직장도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얹혀 있었다. 지옥 같은 그 집에 여전히 홀로 남겨진 엄마였다. 엄마의 삶은 내가 떠나온 십수 년 전 그 자리에 그대로 고여 있었다. 아니, 고이다 못해 썩어가고 있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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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 너는 네 아버지와 다르다. - 미움과 사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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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5:44Z</updated>
    <published>2026-09-07T22:00: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말이 있다. 나는 부모의 무엇을 보며 자랐을까?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부모가 되기에도 미성숙했고,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젊을 때는 공부하기 싫어 도망 다녔다고 했다. 사람들과 자주 싸웠고, 오토바이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 적도 있다고 했다. 그 사고 이후 성격이 많이 괴팍해졌다는 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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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 네 편인 어른이 되고 싶었다. - 괜찮다고 말해줄 어른이 한 명 이라도 있다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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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3:32Z</updated>
    <published>2026-09-06T22:00:19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두 번의 실습 모두 장애인시설에서 했다. 실습 평가는 꽤 좋았다. 매 학기 장학금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학교생활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좋은 평점으로 학교를 졸업했고,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과 운전면허 1종을 취득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사회복지학과 학생이라면 운전면허를 반드시 취득해야 졸업할 수 있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운전은 사실상 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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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 살아 남기 위해 일했다. - 내가 만들고 싶은 삶</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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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3:00Z</updated>
    <published>2026-09-04T01:10:15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학 생활은 낭만이 아니라 생존의 연속이었다. 월세와 공과금, 식비를 감당하려면 매달 70만 원 이상이 필요했다.  집에서 나올 때 손에 쥔 돈은 고작 50만 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한 달 용돈으로도 부족할 돈이었지만, 내게는 당장 살아가기 위해 가진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돈이 필요하면 일했다.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갔다.  낮에는 일을 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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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 그 아이는 웃었다. - 어떻게 살 것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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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2:27Z</updated>
    <published>2026-09-02T22:00: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었다. 친구와 함께 장애인영아시설에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마음대로 일어날 수도, 뛰어다닐 수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는 웃고 있었다. 계속 웃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아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그 아이가 어떤 마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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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 엄마가 웃지 못하는 이유 - 가난 보다 더 아팠던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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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1:59Z</updated>
    <published>2026-09-01T22:00:26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 집에는 5천 원이 없었다. 나는 새 옷을 사 입어본 기억보다, 엄마와 함께 공장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들의 딸들이 입던 옷을 물려 입었던 기억이 더 많다. 그마저도 없으면 일주일 내내 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가야 했다.  엄마는 단돈 5천 원이 없어 시장에서 파는 3천 원짜리 백구두를 신었다. 자신의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신발이었다. 건강보험료가 2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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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부부의 불행을 자녀의 탓으로 돌리는 이유 - 어른 아이가 되어버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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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6:36:28Z</updated>
    <published>2026-09-01T06:30:18Z</published>
    <summary type="html">부부의 불행을 자녀의 탓으로 돌리는 이유 나는 엄마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런데 엄마를 구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엄마의 딸이지, 엄마의 보호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흔하디 흔한 이야기처럼, 어릴 적 우리 집은 가난했다. 잦은 고장으로 말썽을 부리던 오토바이 한 대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낡고 폐허처럼 변해버린 집 한 채, 그리고 농사를 짓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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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5. 나는 엄마의 엄마였다. - 15화. 이번에는 내가 어른이니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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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01T13:34:47Z</updated>
    <published>2026-08-31T12:44:36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오랫동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amp;lsquo;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amp;rsquo; &amp;lsquo;내가 엄마에게 이혼하자고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amp;rsquo; &amp;lsquo;엄마가 그 집에서 계속 살았다면 지금보다 덜 아팠을까.&amp;rsquo;  답이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가 아플 때마다 나는 자꾸 그곳으로 돌아갔다. 내가 엄마의 인생을 바꿔놓았다는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그런 내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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