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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해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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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소박한 연구자, 침착한 강의자 ㅣ 집필 및 강의 문의 환영 ㅣ 글이 좋다면 팔로우 해주세요 :-)</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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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6-05T14:06:3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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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키에르케고르: 신 앞에서의 진정한 개인에 대한 숙고  - 실존주의 시리즈 3/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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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3T14:09:47Z</updated>
    <published>2026-08-09T00:51:14Z</published>
    <summary type="html">현대 실존주의의 포문을 연 사람은 쇠렌 키에르케고르(1813-1855, 덴마크)입니다. 앞의 글에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amp;lsquo;신을 일단 배제한 실존&amp;rsquo;을 추구한다는 것을 앞서 보았습니다. 이에 반해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은 &amp;lsquo;신 앞에 선 실존&amp;rsquo;입니다. 그런데 키에르케고르(19세기)는 사르트르(20세기)보다 한 세기 앞선 사람입니다. 그러니 실존주의의 출발은 신과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8eN0HUKoHBn55UoHkyEDsrq1CrY.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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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 폴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 - 실존주의 시리즈 2/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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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23T14:49:43Z</updated>
    <published>2026-07-23T14:49: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지난 글에서 실존주의를 &amp;lsquo;실존&amp;rsquo;과 &amp;lsquo;본질&amp;rsquo;을 대비하면서 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보고자 합니다. 그는 종종 &amp;lsquo;무신론적 실존주의&amp;rsquo;로 분류되거나 언급됩니다.  우리가 &amp;lsquo;무신론적 실존주의&amp;rsquo;라고 했을 때, 먼저 여기서 &amp;lsquo;무신론적&amp;rsquo;이라는 용어를 면밀함을 가지고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amp;lsquo;무신론적&amp;rsquo;이라는 말은 신의 존재가 &amp;lsquo;있다/없다&amp;rsquo;라&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A8cn3xAoFJHeX2lVmpXHw7T4JBw.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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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실존주의, 당신의 존재 그대로를 마주합니다. - 실존주의 시리즈 1/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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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9T14:59:06Z</updated>
    <published>2026-07-09T14:48:44Z</published>
    <summary type="html">실존주의(existentialism)는 말 그대로 &amp;lsquo;실존&amp;rsquo;을 중점적으로 탐구하는 분야입니다. 그렇다면 실 존은 무엇일까요?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실존은 사실상 실존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 존재입니다.  실존주의는 현재 살아가는 인간에 주목합니다. 인간의 실존을, 즉 인간의 삶 자체에 주목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 보면 실존주의가 &amp;lsquo;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kJtrlpaUIjCKOg-I8ZrMtkygIwU.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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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루터인가! &amp;ldquo;돌파를 감행했던 오직 한 사람&amp;rdquo; - 루터 이전에도 훌륭한 종교개혁자들이 분명 있었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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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2T14:04:32Z</updated>
    <published>2026-07-02T13:51:41Z</published>
    <summary type="html">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시작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amp;lt;95개조&amp;gt;를 붙이면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런데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루터 이전에도 분명히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이 교회개혁을 추진한 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얀 후스, 존 위클리프와 같은 위대한 인&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2FdrtMdlytiAkythPOOyxx8hgJU.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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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폴 틸리히가 통찰한 인간 실존의 &amp;lsquo;불안&amp;rsquo;과 &amp;lsquo;용기&amp;rsquo; - 존재의 용기는 어디서 오고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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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6T10:26:08Z</updated>
    <published>2026-06-25T11:25:44Z</published>
    <summary type="html">신학자 폴 틸리히는 현대인들의 불안과 절망의 문제에 깊이 천착한 학자입니다. 그는 20세기 나치당의 횡포와 세계대전의 참상을 삶으로 겪은 인물로, 근대가 가지고 있던 역사와 인간에 대한 낙관과 기대가 어떻게 처참하게 무너지는지 목도한 사람입니다. 그의 학문이 너무 철학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러나 그의 연구는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 가운데서 싹텄습니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uSUwJvpbWxYaTA-sIck7Vl5ERAY.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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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절박한 우리 삶에 반드시 있을 주의 감싸안으심  - 누가복음 8장 예수의 옷에 손 댄 여자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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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15:07:00Z</updated>
    <published>2026-06-24T10:52:40Z</published>
    <summary type="html">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무려 12년 간이나 혈루증을 앓았습니다. 그 시대에, 여자가, 혈을 12년 간이나 흘린다는 것이 얼마나 성가시고 비참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삶을 대체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암담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던 어느 날,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가 병든 자들을 고쳐준다는 소문이었습니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ImgSa_gpwCj_TnRGHbi4-SxKafo.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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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 숨겨진 보화는 무엇인가요 -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천국과 사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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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15:07:27Z</updated>
    <published>2026-06-08T11:56:02Z</published>
    <summary type="html">한 사람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길 옆에는 밭이 있어요. 걷다가 한 지점에서 그는 멈추어 섰습니다. 저기 밭 어디쯤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 보이는 듯 했거든요.  그곳으로 가보았습니다. 분명히 땅 밑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조심스레 땅을 파보았는데, 세상에나 그 곳에 너무나도 값진 보화가 묻혀 있었습니다.  그는 누가 볼세라 보화를 보이지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OXFYTlJHyxb3T5DqGT1gO3LIB2I.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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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울이 말한 자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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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15:08:00Z</updated>
    <published>2026-05-17T11:32:49Z</published>
    <summary type="html">예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왠걸. 이 자유는 대관절 어디에 있는가?  예수를 믿는 무리들이 모인 교회라는 곳에 가면 자유가 있는가?  아니, 교회 일원이 되는 순간 자유의 상당부분이 박탈당하는 것같은 느낌을 받을 뿐이다.  자유는 대관절 어디에 있는가.  신약성경 중 바울 사도가 쓴 '갈라디아서' 라는 책이 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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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의 지혜  - 고린도전서 2장 묵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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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15:08:26Z</updated>
    <published>2026-04-12T12:59:26Z</published>
    <summary type="html">하나님의 지혜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말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 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어떻게 나타났나  사랑, 믿음, 순종으로 나타났다  거리의 상한 자들을 두 손으로 보듬으시고  손가락질 받는 죄인 중의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다.  훗날 제자의 배반을 쓰리지만 받아들이고  겟세마네에서 피땀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aOL7L-prEJGtsW8M7BFsg5WHBmg.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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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의 형상  - 인생의 참담한 가운에서도 우리 안에서 빛나는 Imago Dei</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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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8T12:23:46Z</updated>
    <published>2026-04-12T12:52:24Z</published>
    <summary type="html">**마땅히 이번 글은 &amp;quot;삭개오의 마음의 감정, 그리고 슐라리어마허 (3)&amp;quot;이 되어야 하겠지만&amp;nbsp;문제는 지금 현생이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어&amp;nbsp;삭개오와 대화할 시간이 확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렇다고 열어놓은 브런치를 더이상 이렇게 방치해둘 수가 없어&amp;nbsp;메모장에 끄적여 놓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업데이트 해보고자 한다.이렇게 살다보면 다시 한번 삭개오에 집중&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xvavY8P6nMtCcE4H583LiXRalNU.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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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삭개오의 마음의 감정, 그리고 슐라리어마허 (2) - 세리 삭개오 이야기 ②</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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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8T12:24:12Z</updated>
    <published>2024-08-22T14:42:53Z</published>
    <summary type="html">3. 삭개오의 이야기 ②  나는 마태를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나는 마음을 먹어야만 했다. 나는 분명 마태보다 잘 나가는 세리였다. 나는 세리장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마태를 볼 때마다 뭔가 모를 자격지심 비슷한 감정이 일어 내심 그가 불편했다. 그는 땅달만 한 나보다 멋진 몸을 가졌고, 무엇보다도 그는 나만큼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았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Mj6Lx8qmjnENRKc0J4wmxJWg0Zc.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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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삭개오의 마음의 감정, 그리고 슐라리어마허 (1) &amp;nbsp; - 세리 삭개오 이야기 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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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4-08-21T14:43:42Z</published>
    <summary type="html">1 . 삭개오의 이야기는 내가 가장 애정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삭개오는 세리였다.&amp;nbsp;세리는 세금징수자다.  세금징수자 자체는 별 문제가 안된다. 그런데 당시 유대민족은 로마제국의 식민통치 아래 있었다. 그리고 세리는 동족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하여 로마에 바쳤다. 당시 유대인들이 로마에 내야 했던 세금은 적지 않았는데, 세리들은 같은 동족이라고 봐주기는커녕,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e5NgXb0yUdfYpJSCNOQ-tQQdNhQ.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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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헬레니즘 로고스와 요한복음 로고스 : 사람이 되었다고? - 요한복음서 기자의 통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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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8T12:25:18Z</updated>
    <published>2024-08-19T15:08:32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한복음서는 철학적이다. 시작부터가 그렇다.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는데, 그 로고스가 하나님 되심이라고 하였다. 한/영 번역에는 둘 다 단순하게 the Word was God(말씀이 곧 하나님이다)라고 되어 있지만, 여하튼 원문은 그렇게 단순한 정의로 쓰여지지 않았다.  여하튼 오늘은 1장 1절 보다 1장 중간쯤 나오는 부분을 택했다. 요한복음 전체에서 우리&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oePCGtP3B2DFFCxbfrHQMkb2QeY.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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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의 빈곤과 오병이어의 기적: 상징인가 실재 사건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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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8T12:25:36Z</updated>
    <published>2024-08-17T12:21:30Z</published>
    <summary type="html">성경의 기적 이야기를 해석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기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상징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사복음서 즉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권의 책 모두에 기록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떡 다섯 덩이와 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_2zcdpcWlN0W-x9zMC4OUEMUqqA.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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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르트르와 아브라함 : 내가 당신 안에서! - 사탄의 소리인가 천사의 소리인가 /자유연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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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8T12:25:51Z</updated>
    <published>2024-08-15T09:19:03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표적인 실존주의자를 꼽으라고 하면, 키에르케고르 다음으로 아마도 사르트르를 꼽을 것 같습니다. 물론 키에르케고르와 사르트르의 결은 많이 다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신과의 관계 안에서의 실존을, 사르트르는 인간 홀로로서의 실존을 다루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사르트르가 신을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간 그 자체에 집중한 것이죠.  이러한 사르트르가 아브라&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yLbxnzA2l5VPTze33HWrPQCouVU.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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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키에르케고르와 아브라함(2): 차라리 벼락이 내려 - 차라리 벼락이 내려 우리 둘 다 죽게 하소서 /자유연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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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8T12:26:08Z</updated>
    <published>2024-08-14T11:26:13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나무를 벌여 놓고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단 나무 위에 놓고  아! 이 얼마나 비극적인 장면인가. 아브라함은 결국 모리아산에 가서, 신이 지시하였던 그곳에 이르렀다. 이까지 오는 길에, 속으로 얼마나 많이 외치며 물었는지 모른다. 이것이 정녕 당신의 뜻입니까? 정말 이것이 맞습니까?  침묵 속에 제단을 만들어 장작을 올려놓았다. 신&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4c5Y0yTHoCr86JNoVc2pW3QkVHs.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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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키에르케고르와 아브라함(1) : 이삭을 바치라는 소리 - /자유연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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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15:06:18Z</updated>
    <published>2024-08-14T09:36:38Z</published>
    <summary type="html">키에르케고르는 그의 《공포와 전율》(Fear and Trembling)에서 아브라함 사건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  아브라함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이다. 그는 구약의 신 하나님과 '약속'을 맺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신은 그에게 당시 시대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주셨고, 100살 때 독생자 이삭도 주셨다. 그런데 얼마 후에 아브라함은 그 귀한 아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xMN%2Fimage%2FCwRw9WNrzkltEGVQ-s0U8u9fJgg.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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